> 기획
한국 성씨의 뿌리를 찾아서/①담양 국씨(潭陽 鞠氏)
담양인신문  |  webmaster@wdy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7.25  15:26:1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국창근 담양국씨 대종회장

현재 한국의 성씨(姓氏)는 280여개가 있다. 이 중 인구가 1000명 이상인 본관(本貫)은 860여개로 전체인구의 97.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후반기부터 담양人신문에서는 본관을 담양으로 하는 담양 국씨(潭陽 鞠氏)를 시작으로 담양 전씨(潭陽 田氏)를 포함, 담양군에 상주하고 있는 군민에 비례하여 상주 인구 순서로 계보를 연재코자 한다. 전통적으로 효(孝)를 중시하며 살아 온 우리 모두가 이를 계기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편집자 주

담양 국씨(潭陽 鞠氏)의 시조인 국주(鞠周)는 송나라의 공경대부(公卿大夫)였는데, 금나라가 송나라의 황제였던 흠종(欽宗)을 납치해간 정란(政亂)이 발생하자 이 난을 피해 1128년(인종 6) 고려에 입국하여 귀화하였다.

국주는 고려에 입국하자마자 인종을 배알하고 군신의 예를 취하였는데, 인종이 크게 기뻐하면서 국주에게 감정관(監正官)을 제수(除授)하여 고려 조정에 출사(出仕)시켰다.

그리고 당시 중원(中原)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금나라에서 송나라를 제압하고 고려에게 군신의 관계로 대할 것과 많은 공물(貢物)을 요구하였는데, 인종은 국주를 금국봉사(金國奉使)로 임명하여 금나라의 요구에 외교적으로 대처하게 하였다.

국주는 왕명을 받고 여러 번 금나라에 왕래하면서 군신관계의 부당성을 주장하여 외교적으로 평등관계를 맺고 귀국하였다.

이에 인종은 국주에게 삼중대광(三重大匡) 추성군(秋城君)에 봉하고 담양(潭陽)을 본관으로 정해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담양 국씨는 원래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성씨로서 고려시대에는 명문 화족으로서 3세조 국영돈(鞠暎敦)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냈고, 5세조 호(虎)자 어른께서는 좌정승에 이르는 어른으로 부터 고려가 망하는시기까지 성윤(成允): 충청 안렴사, 량(樑)자: 병부상서, 파(播)자:형부상서, 유(襦)자:호부상서 겸 판의금 등 현달한 인물들이 많았으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씨조선 건국에 불복 두문동에 은거 순절하시니 이분이 9세조 유(襦)자 할아버지이시며 이후 조선조에서의 어려운 삶이 시작되었다.

전라남도 담양에 삼형제가 은거후 장자인 무(珷)자 어른은 장자로서 부친인 복애공의 유지를 받들어 농사로 생활하며 충절과 의리를 숭상하고 구휼을 배푸는 가풍으로 후손을 양육하고, 둘째 성(珹)자 어른은 손이 무하셨고, 셋째인 황(황)자 어른께서는 객지(완주 고산)로 나아가 후손들로 하여금 이조에 출사 벼슬케하고 집안을 현실적으로 일으키니 그 손들이 더욱 번성(남자만 7800여명)하게 되었으며, 고향에서 복애공 유자 할아버지의 유훈을 지켜온 큰집(長派)은 (남자만 1600여명)으로 상대적으로 손이 귀한편으로 크게 보면 두줄기로 이어져 살아왔다.

담양국씨는 죽계공파, 율동공파, 선전공파, 송동공파, 우수공파, 참판도성파 등 26개의 파(派)가 있다.

옛날엔 본관지인 담양과 고산이 집성촌이었으나 근자에는 수도권의 인구가 60%정도나 되며 문중의 구심체는 담양국씨 대종회가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사무실을 갖고 있으며 종원 19,000여명으로 위선(爲先), 숭조(崇祖) 현양사업과 종친회보 발간 등 활발한 문중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담양국씨 대종회는 제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국창근 회장을 보좌해 광주

대동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국형근 씨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담양국씨 역대 인물

· 국유(鞠襦) : 9세손. 호는 복애(伏崖). 병부상서(兵部尙書) 국량(鞠樑)의 아들이다.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의 탐라 정벌을 돕고, 곡주 지역의 반란군을 평정하는 등의 공으로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갔다. 슬하에 3남 국무(鞠珷)‧국성(鞠珹)‧국황(鞠徨)을 두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충절을 기려 자손을 담양 관리에 임명토록 하였다.

· 국경례(鞠經禮, 1428년 ~ ?) : 국황(鞠徨)의 현손. 1451년(문종 1)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장수현감을 거쳐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에 올랐다. 학문이 깊고 영민하여 문종이 친림한 자리에서 사서특강을 하는 등 어전에서 강론한 인재였다. 세조 때 사간으로서 왕의 난정을 직간하고 은퇴했다. 그 후 담양에 내려가 학문에만 전념했다. 세조가 대사간의 벼슬을 내리면서 불렀으나 불응하고, 후진들과 강론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의 아들 거경(居敬)· 화경(和敬)· 승경(承敬)· 장경(長敬)· 방경(邦敬)· 치경(致敬) 등 6형제 대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였다.

· 국감(鞠瑊, 1604년 ~ ?) :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 국경상(鞠景祥)의 아들. 1637년(인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전부장(前部將)을 지냈다.

국민(鞠旻, 1611년 ~ ?) : 자는 유원(悠遠). 1663년(현종 4) 식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1664년(현종 5) 사헌부 감찰(監察), 성환찰방(成歡察訪), 1669(현종 10) 성균관 전적(典籍)을 지내고, 1670년(현종 11) 적성현감(積城縣監)에 제수되었다.

· 국향규(鞠恒珪, 1813년 ~ ?) : 자는 이중(而仲), 호는 동계(東溪)이다. 1839년(헌종 9) 금성산수성별장(金城山守城別將)으로 재임 중일 때는 사비(私費)를 들여 성곽을 개수하는 동시에 병사들의 훈련 강화에도 힘썼다. 또 성곽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구휼했다. 담양에는 관방제림(官防堤林)이 있는데, 1854년(철종 6) 국항규는 부사(府使) 황종림(黃鍾林)과 함께 제방을 재축조하면서 사재를 털어 괴목(槐木) 수천 그루를 심었다. 관방제림은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있다.

· 국동완(鞠東完, 1867년 ∼ 1909년) : 자는 찬서(贊書)이다.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다. 1907년 한일신협약 체결 이후 항일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기삼연 의진(義陣)에 가담에 활동을 시작하였다. 1908년 1월부터는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일본군과 교전하고 군자금을 모으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1909년 9월 6일 체포되어 고창헌병대에 수감되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일제에 저항하였으며, 결국 전남의 영광헌병대로 이송되어 9월 10일 사형당했다. 1991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국채표(鞠採表, 1906년 ~ 1967년) : 기상학자. 제2대 중앙관상대장.

· 국양문(鞠良文, 1914년 ~ 1998년) : 중요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烙竹匠) 기능보유자.

· 국쾌남(鞠快男, 1922년 ~ 2007년) : 제4대 민의원. 세기상사 회장. 대한극장 설립자.

· 국종남(鞠鍾南, 1937년 ~ ) : 제14대 국회의원

· 국창근(鞠瑲根, 1939년 ~ ) : 제15대 국회의원, (사)고려역사선양회 6,7,8,9대 총재, 대한민국 헌정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5,6기), 담양국씨 대종회 회장

· 국경복(鞠慶福, 1956년 ~ ) : 제5대 국회예산정책처장

· 국민수(鞠敏秀, 1963년 ~ ) : 제56대 법무부 차관

· 국순호 : 전 담양향교 전교

· 국영종 : 전 전남의대 학장

· 국홍일 : 전 이화여대 교수, 전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

· 국훈 : 전 전남대화순병원장, 현 전남대의대어린이병원장

· 국혜정(鞠蕙汀, 1972년 ~ ) : KBS 아나운서, 국창근의 딸.

· 국승연(鞠承延, 1973년 ~ ) : EBS 성우

담양인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기자코너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담양군 담양읍 미리산길 28 별해리A 상가동 3층  |  대표전화 : 061)383-2772  |  팩스 : 061)383-9945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다 174호(2002.10.25)
대표이사·발행인 : 김동섭  |  편집인 부사장 : 김광찬  |  편집국장 : 정용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용택
Copyright © 2013 담양인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