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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지명 천년 기획/㊲창평면 광덕(廣德)·삼천(三川)·오강(梧江)·외동(外洞)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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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0  16: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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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평면 외동리 마을 정자
   
▲ 창평면 오강리 마을 빨래터
   
▲ 창평면 삼천리 남극루(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
   
▲ 창평면 광덕리 마을 전경
   
▲ 창평 슬로시티 삼지내마을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광덕1리 조현(鳥峴)마을

조현마을은 지금부터 400여년 전(1580) 평산 신씨가 개척하였고, 그 후 한양조씨가 정착하며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면소재지에서 서북편으로 4km 지점에 있다. 영천산 줄기가 뻗어 내리다가 조현산이 주봉으로 된 이 마을은 광덕천이 마을을 휘돌아 내리면서 물길을 이루어 농사짓기에 적절하여 마을로 형성되었으며, 약 20여호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로 한 가족처럼 살아오고 있는 곳이다. 1945년 조현제와 신흥제가 축조되어 수리 이용도가 높다. 북쪽에는 신흥마을, 남쪽에는 기동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은 뒷산인 조현산의 지형이 새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새고개, 즉 조현이라 부른다. 조현마을은 새가 나는 땅 모양이라 해서 나온 이름이라 전해 오고 있다. 한편 새고개의 ‘새’는 땅이름에서 ‘사이’의 뜻을 지니는 경우가 많아 ‘사이고개’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얘기되기도 한다.

 

2)광덕2리 신흥(新興)마을

신흥마을은 지금은 38호 정도가 살고 있으나, 오래전 내천동의 전설에 의하면 1천여호가 살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것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 마을 앞산 암벽에 ‘영천산하 천동리’라 새겨져 있다. 김씨가 처음 마을에 입주하였고 그 후 지금부터 약 300년 전, 조선조 19대 숙종 때 해주최씨 유담이 마을을 다시 개척하였다. 개척 당시 새로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신흥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마을 뒤에 영천산에 이어 담주산이 높이 솟아 마을의 주봉이 되고 백호등 한 가닥이 감돌아 이 마을을 형성하였다. 1945년에 신흥제가 축조되어 수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1960년 25명으로 구성된 위친계와 1970년 20명으로 구성된 상부상조계가 있다. 마을 뒷산이 담주산인데 이 담주산이 한때 담주고을 도읍이어서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다.

 

3)광덕3리 현암(玄岩)마을

현암마을은 선조 25년(1592)에 전주이씨, 김해김씨, 경주정씨 세 성씨가 난을 피하여 이곳에 정착하여 개척하였다. 마을에 검은 바위가 많아 이름을 현암이라 불러왔으며 속명으로는 ‘감바우’라 한다. 현암마을은 전우좌우가 큰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북에는 금산이 솟아 있고 남에는 매봉이 솟아 있으며 서에는 영천산이 있어 담양에서도 벽지 마을로 불리고 있다. 현암은 검은 바위라는 뜻으로 마을에 검은 바위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풍습으로는 당산제와 칠월백중놀이가 있었으나 끊긴 지가 오래되어 현재 마을의 어르신들 기억에도 희미하게 잊혀져 가고 있다. 마을 밖 입구에 있는 당산이 할머니 당산이고 모정 옆에 있는 당산이 할아버지 당산이다. 할아버지 당산에는 1970년대 초까지 풍물놀이와 함께 정월 당산제와 칠월 백중놀이를 크게 지냈었다고 한다.

 

4)삼천리 삼지내마을

삼지내마을(삼천1리 하삼천, 삼천2리 상삼천)은 옛 월봉산의 한 맥이 주봉으로 되어 내려온 운암천, 용수리의 수복천, 용운천 세 물줄기가 삼지교 앞까지 흘러내려 보평 아래에서 합류되어 대수구(大水口)를 이루었다 하여 삼지내 또는 삼지천이라 한다. 땅속으로 1미터 20cm정도 파 보면 그 줄기로 좋은 모래가 나온다. 월봉산으로부터 절골이 있는 녹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봉우리가 병풍을 쳐 놓고 공손히 엎드리는 것 같은 형국이다. 삼천리는 1973년 현령 조광존이 창평현청을 동면 삼지천리로 이건함에 따라 이 마을에 살고 있던 금성나씨인 충좌가 삼지천리의 터를 비워주고 화순 동복으로 이주하였다. 그 뒤 장흥고씨의 한 파인 양진재가 입주하였다. 1879년 읍이 다시 옮기면서 일부는 읍내리로 정하고, 1910년 군현과 동리의 재개편으로 삼천리로 개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5)오강1리 양산(良山)마을

양산마을은 이조 중엽에 평강채씨 일석이 입주하였다고 전한다. 채씨의 입주 전에는 담양국씨가 이 마을에 정착해 살았다고 한다. 이 마을은 조선조 중엽에 작성한 창평지에 창평계 동면 득양산이라고 기록되었고 또 시리메라고도 불려왔다. 광대산의 산맥이 내려오다가 매봉이 솟아 주봉이 되고 녹갈재가 안산을 형성하며 평개등이 백호로 감아 돌아 전후좌우가 밭과 들로 되어 있다. 등밭은 이 고을의 최고 면화 생산지로 유명했다. 또 이마을의 평자등밭에서 생산된 콩은 그 콩잎이 임금님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평자등에 고분이 있었는데 그 고분에서 활과 칼이 발굴되었다. 이 마을 북쪽에 약 300년 전에 함양박씨에 의해 개척되었고 그 후 장흥고씨, 문화유씨 등이 입주하여 살았던 오산마을이 있었다. 선조 박광전이 절산마을에서 이주해 와 새터를 잡은 것이 시조가 되었고, 뒷산이 자라형국이라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산(鰲山)이라 칭하고, 그 후 오산(梧山)이라 개칭하여 불렀으며, 또한 오메라고도 불려 온 마을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 양산마을에 편입되었다.

 

6)오강2리 당곡(唐谷)마을

당곡마을은 1474년경 평강채씨가 터를 잡고 정착했다고 한다. 마을 지세는 해금 형국인데 창평에서 순천으로 가는 길이 해금을 연주하는 자루가 되고 북쪽에 있는 동산이 해금통이라 한다. 그런데 130년 전쯤 창평현이 없어지면서 창평으로 가는 길도 없어졌다. 해금을 켜는 자루가 없으면 악기를 연주할 수 없듯이 그 길이 없어 지면서 마을 청년 20여명이 죽는 불행을 겪고 마을이 폐촌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부촌으로 유명했으며 마을 앞에 하마석이 있다. 마을 지명은 당뫼에서 당산으로, 다시 당곡으로 변했다. 원래는 당곡(堂谷)이라고 했는데 후에 당곡(唐谷)이 되었다. 마을 지명으로는 동쪽에는 야산마을. 서쪽에는 강촌마을, 북쪽에는 오산마을이 있어 여기를 오강사리(梧江四里)라고 부른다. 시리메, 오메, 당골의 흐르는 시냇물이 합류하여 오강사리의 수구를 이룬다. 창평으로 가는 고개를 녹갈재라 했는데 그 양쪽으로 여관과 주막이 있었고 비석 5~6개가 있었는데 6.25 이후 없어졌다. 그 중 하나에는 ‘현령성후대영불망비’라고 쓰여 있었다 한다.

 

7)오강2리 강촌(江村)마을

강촌마을은 조선조 중엽에 평강채씨에 의해 개척되었고, 금녕김씨와 성주현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충신 현영징의 정려각이 마을 앞에 있는 것을 보면 현충신도 이 마을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이 마을은 한말의 창평지에 보면 마곡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후에는 강촌이라고 칭하였다. 강촌마을은 창평의 손룡 한 가닥이 뻗어 갈마봉 앞이 솟으면서 개국되어 마을이 이루어졌으며, 마을에 물이 없어 물이 많았으면 하는 염원으로 강촌으로 마을 이름을 칭하였다고 한다. 마을 지명이 강촌이면서도 늘 식수가 부족하였으나, 상수도가 개설되어 비로소 식수해결을 하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 충신인 현영징의 정려가 있으며 마을 건너편에는 효자인 채석징의 정려가 있다.

 

8)외동리 외동(外洞)마을

외동마을은 월봉산을 동쪽, 녹갈재를 서쪽에 두고 그 사이에 마을이 직사각형으로 뻗어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이다. 입향조는 약 800년 전에 편씨들에 의해 개척된 마을로 전해진다. 당초에는 창평면 군내면 땅으로 창평 읍내에서 보면 높은 산 밖에 외따로 떨어진 마을이라 하여 외동리라 부르고 담양군 남면에 편입하였다. 그 뒤로 청주한씨, 평산신씨, 경주정씨들이 차례로 입향하였다. 외동마을은 동쪽에는 대덕면의 입석마을, 서쪽으로는 고서면 고읍마을, 북쪽엔 창평면 유천마을과 인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창평군 군내면에도 속하였다가 창평의 동면 초여리에도 속하였다. 마을에 풀잎이 많고 먹을 것이 많다는 의미의 초여리로 불러오다가 1900년경에 외동(外東)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위 아랫마을 전체 약 13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위는 신씨, 아래는 정씨들이 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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