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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지명 천년 기획/㊱월산면 월평(月平)·중월(中月)·화방(化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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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2  16: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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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산면 바심재 전몰경찰관 추모탑
     
▲ 월산면 화방리 마을 앞 도로 전경
     
▲ 월산면 바심재 전몰경찰관 추모비
   
▲ 월산면 웚평리 효자문
   
▲ 월산면 월평리 마을 전경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월평1리 월평마을

월평마을은 1666경 이웃 월선마을로 이주한 경주이씨 이석손의 후손 이경준이 마을 뒤편 서당골에 소나기가 자주 내리는 것을 보고 가뭄이 적을 것으로 생각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담양군이 산막곡면 또는 산면에 속하여 신평리로 부르다가 조선 말엽 월평리로 명했다. 월평마을 뒷산을 도마산이라 하는데 그 도마산 위에 국사봉이 높이 솟아 마을을 감싸주고 있다. 그리고 도마산 밑에 ‘도리시암’이라는 옹달샘이 있는데 약효가 있어 병든 사람이 공을 들이고 씻는 사람마다 병이 나았다 한다. 이 샘물은 석간수로 아무리 가물거나 비가 많이 와도 물 양이 일정하게 나오는 신비로운 약수이다. 10여년 전에 샘이 훼손되었으나 마을에서 뜻을 모아 복원하였다.

 

2)월평2리 신평(新坪)마을

선조 13년(1580)경 봉산면 연동에 살던 흥양이씨 이준길이 이곳에 와서 보니 북서편에 국사봉이 높이 솟아 비가 다른 곳에 비해 자주 내렸다. 이곳이 가뭄의 피해가 적고 주위의 토지가 기름져 자손만대에 복을 누릴 곳이라 여기에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처음에는 산막곡면 산막실로 불리다 현종 7년(1666) 월평마을이 생기면서 산면 신평리라 하였고, 그 후 옥천조씨가 들어왔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산면 월평리 신평마을이라 하였다. 1944년 일제 때 농지개량 사업으로 마을 뒤편에 저수지를 막아 월평제라 하였는데 통수관이 세워져 1952년 좋은 몽리답을 얻고 있다. 동편마을은 월평마을이고 남방으로 왕산마을이며 서편에 능재를 넘으면 홍암마을이다. 큰재와 작은재를 넘으면 용금마을이요, 독굴재를 넘으면 도동마을이 나온다.

 

3)월평3리 왕산(旺山)마을

왕산마을은 1590년경 경주이씨 이종엽이 이곳에 와 보니 서북방에 국수봉과 도마산이 마을을 감싸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마을 앞들이 기름지게 넉넉하게 펼쳐져 있고, 물이 부족하였던 농경시대에 지리적 조건으로 비가 많이 내리니 가뭄 걱정은 덜겠다고 생각하여 옥천조씨를 부인으로 맞아 터를 잡게 되었다. 이조 중엽 때 왕산으로 불러오던 것을 ‘왕(王)’자를 ‘왕(旺)’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마을 앞 널리 흐르는 냇물은 영산강의 상류인 중월천인데 옛날부터 ‘뱀내’라고 부른다. 왕산마을은 산으로 둘러막아져서 밭이 많았다. 그리고 왕산과 좀 떨어진 곳에 산막실이 있었다. 왕산과 산막실을 합쳐 ‘고래’라 불렀다. 그런데 고래는 고내(古川)의 변형으로 예전에 마을이 냇가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밭이 모두 논으로 바뀌었지만 땅을 파 보면 아직도 모래가 많이 나온다. 배암 냇갈은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내리며 마을 앞 들판을 모두 적셔 흐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중월1리 중방(中方)마을

중방마을은 약 600년 전 조선조 초에 대구 달성에 살던 대구배씨 세천이 이곳 동쪽의 새터라 부르는 곳에 정착하려 했으나 매년 사람이 한 명씩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므로 길 건너 ‘놋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곳은 유기 장수들이 많이 살아서 시끄러워 다시 ‘담재’라 부르는 곳으로 옮겨 정착하였다. 그러나 선조 때 후손들이 담재는 터가 좁아서 현재의 중방마을로 또 옮겼다고 한다. 조선조 때는 산막곡면 중방리와 산중방리라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새터’는 이제 농토로 바뀌었으며, ‘놋점’은 옛날은 유점리라 하여 유기그릇 장사가 50여호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유기 사용이 없어 지면서 점차 폐촌이 되었다. 지금은 그곳은 큰 대밭이 되어 놋점대밭이라 부른다. 마을 앞산 투구봉을 신랑봉, 뒷산 도마산을 옥녀봉이라 하며, 옥녀봉 앞에는 가을쪽산이 있는데 이를 신부의 필수품인 얼기빗등이라고 한다. 주변 지세가 신랑신부를 중매하여 화합을 시킨다는 형국이므로 이 마을을 ‘중방(中房)마을’이라 불렀다. 중방마을은 조선조에는 담양부 산막곡면이고, 담양군 때는 산면 지역인데 1914년 담양군과 창평면의 통폐합에 따라 중방리와 월곡리를 합하여 중월리(中月里)라 이름하였다.

 

5)중월2리 월곡(月谷)마을

월곡마을은 약 710년 전 고려 충렬왕 때 김해김씨, 남평문씨가 이 마을 뒷골 관징이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런데 밤마다 마을 앞 정자나무에 구렁이가 올라가 소리 내어 울어 대니 불길한 징조라 하여 조선조 초 약 1400년경에 새터를 잡아 현재의 마을로 옮겨 왔다. 그 때의 김씨, 문씨 후손들은 없고 전설로만 들려온다. 그 후 순조 약 1800~1834년경에 김해김씨, 밀양박씨, 남평문씨, 철원주씨, 동복오씨 등이 정착하였다 한다. 옛 기록에는 산막곡면 상중방리, 옹점리라는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 어느 곳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고, 마을 뒷등을 점등이라 부른다. 마을 뒷산 용구산에서 내려온 뒷등을 반달재라 하여 이 마을 터가 반월곡인데 반자를 떼고 월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6)화방1리 마산(馬山)마을

마산마을은 조선 영조 말엽 1700년경 평장동에 살던 광산김씨 김기종이 새로운 터를 찾아다니던 중, 이 마을 동북편 화방촌이란 곳에 처음 자리하여 차차 큰 마을이 되었다. 그 후 후손들이 화방촌에 살다가 현재의 마산마을이 화방촌보다 더 좋은 영주 행화지지라 생각하고 옮겨 정착하였다 한다. 그 후 장수황씨, 경주최씨, 전주이씨 등이 연이어 들어와 오늘에 이른다.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뒷산의 모습이 말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마산리라 하였다. 마을 뒤 시루산 중턱에 옛날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넓은 터만 있는데 그 밑 옹달샘에서 나온 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이곳을 ‘물통골’이라 부르는데 이 물을 삼개월 이상 마시면서 목욕하면 난치병 환자도 완치되었다고 한다.

 

7)화방2리 봉명(鳳鳴)마을

봉명마을은 강릉유씨 유업이 불교 신자로서 관음사를 찾아왔다가 이곳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보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 뒷산에 자그마한 관음사가 있으므로 그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관음촌이라 불렀다. 담양부 목산면으로 있을 때는 관음촌이라 하였고, 고가지면 또는 고면으로 있을 때는 봉명이라 하였다. 그러다 마을 안에 200년 전 귀목나무에 백학이 서식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울고 있어, 이를 봉이 운다하여 봉명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마을에 넓게 자리한 대밭 사이에 엄나무가 자라고 있었으며, 그 곳에 황새가 많았으므로 학의 날개 형국이라 하여 봉명이라 고쳐 불렀다고도 전한다. 봉명마을은 조선조 때 담양부 목산면의 일부요 담양군 때는 산면의 지역이다.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의 통폐합으로 송정리 봉명동 마산리와 광면의 장재동, 기룡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화방리라 하였다. 이 마을 동쪽은 담양읍이고, 남쪽에는 외다마을, 서북쪽에는 마산마을이 있고 뒤편 서쪽에는 시루산이 있다.

 

8)화방3리 송정(松亭)마을

송정마을은 1766년경 전북 남원에 살던 장수황씨 성웅이 전란을 피하여 안주할 곳을 찾다가 이곳에 와보니 시루산 기슭이 피란지가 되겠다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큰 마을로 번창되었는데, 시루산 중턱까지 인가가 있었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큰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장간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쇠정리라고 불리다가, 산도깨비가 많이 나온다 하여 괴정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앞 정자나무를 베어 버린 후 나무 밑둥에서 붉은 피가 솟아난 이후로 마을이 폐촌되고 지금은 대밭이 우거져 있으며, 마을 자리를 시루산 밑에서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조선시대 산막곡면 때는 이 마을 앞이 한양 가는 큰 길목으로 소나무 밭이었다. 소나무 밭에 쌍 정자가 있어 마을 이름을 송징, 송정으로 불렀으며, 글을 모르는 사람은 쇠정이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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