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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지명 천년 기획/㉟월산면 용흥(龍興)·월계(月溪)·월산(月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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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9  13: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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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산면 월계리 마을 입구 전경
   
▲ 천년고찰 월산면 용흥사
   
▲ 월산면 용흥리 용흥제
   
▲ 월산면 도개마을 표지석
   
▲ 월산면 소재지 월산리 마을 전경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용흥1리 도동(道洞)·월송정(月松亭)

도동마을은 조선시대에는 산막곡면 도동리라 부르다가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이 통합되면서 행정구역을 도동마을이라 개칭했다. 앞이 막아져서 깊고 외지다 하여 지금도 속명으로는 ‘독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 북쪽에 도마산이 높이 솟아 그 중턱에 오장내라는 안골이 있는데, 400년 전 임진왜란 후 손씨와 백씨가 터를 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1760년경 진원박씨 박몽주가 이 마을 위의 장군봉의 장군대좌 명당에 선조의 묘를 쓰기 위하여 마을 터를 현재 살고 있는 이곳으로 옮기고 ‘도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월송정마을은 1880년겅 광산김씨 김희현이 광주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 깃대봉과 장군봉의 사이에 아늑한 분지를 보고 앞으로 자손이 번성할 곳이라 하여 새터를 잡고 월송마을이라 불렀다. 가곡마을과 동북쪽에 있는 마을 뒤에 큰 소나무와 정자가 있어 달밤에는 경치가 좋아서 월송정이라 했다. 용흥리1구 도동마을에 속한 자연마을이다.

 

2)용흥2리 가곡(柯谷)마을

가곡마을은 지금부터 약 390년 전 임진왜란 때 순창군 유덕에 살던 옥천조씨 조명성이 피신처를 찾아다니다 이곳에 이르니 병풍산이 모든 재난을 막고 있으므로 좋은 피신처요, 자손만대의 행화지지라고 여겨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 이웃 죽림마을과 동구 마을이 성촌되어 많은 사람이 살았는데, 동구마을은 1940년까지 인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한 집도 없고, 죽림마을은 용흥제가 축조되면서 30여호가 수몰되어 지금은 마을터만 남았다. 옛날에는 창평군 장북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이 통폐합되면서 월산면 용흥리2구 죽림마을이라 하였다가 죽림동을 합하여 지금은 가곡마을만 남아 있다.

 

3)월계1리 복정(福亭)마을

복정마을은 약 300년전 숙종14년(1688) 장성 진원에 살던 진원박씨 박민창이 갑술옥사로 인해 유배당하자 아들 박상선이 마을 동쪽에 자리잡고 마을 이름을 관설리라 부르다가 제주양씨와 혼인을 하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후 인동장씨, 사천이씨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박상선은 입향 때 마을 중앙에 식수할 샘을 팠다 하는데 이 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은 좋은 샘이며 1915년경 후손들의 힘으로 보수했다 한다. 이 마을 천룡등을 와우터라 하고, 북쪽에는 구시등이 있고, 남쪽에는 마구대들이 있다. 소에 걸맞은 이름과 함께 복되게 산다는 복(福)자와 샘 정(井)자를 합쳐서 복정(福井)이라 불렀다. 복정 마을은 본래 담양부 광면의 지역으로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의 통폐합으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복정리 농암리 옥산리와 천면의 오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월계리와 함께 월산면에 편입하여 담양군 월계리라 하였다. 1961년 조례에 의하여 복정마을이 되었다.

 

4)월계2리 농암(籠岩)마을

농암마을은 추월산의 기슭 십리 밖 거칠뫼 아래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조 숙종 때 난이 일어났는데 나주에서 살던 평택임씨가 이 난에 협조하였다는 오해를 받아 이곳으로 피신해 왔다. 처음에는 복정마을에서 은거하다가 이곳에서 새터를 잡아 정착하였고 그 후 삭녕최씨가 들어왔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농(籠) 같은 큰 바위가 4개나 얹혀 있어 ‘농바위’라 부르다가 고종 32년(1895) 이전에는 담양부 십팔곡면 또는 광면 농암리로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산면 월계리 농암마을이 되었다.

 

5)월계2리 옥산(玉山)마을

옥산마을은 이웃 복정마을에 정착한 진원박씨 박상선의 아들 박재천이 1712년경 이곳에 자리잡았다. 사방이 널따란 평야로 둘러싸여 있고 용면에서 용천이 유유히 흘러 물 좋고 논이 비옥하여 농사짓기 적합한 마을이라 정착하였다고 한다. 옛날 십팔곡면 또는 광면에 속해 있는 옥산마을이라 하였는데 이는 기름진 옥토와 뒷동산을 가리켜 이름 하였다 한다.

 

6)월산1리 월산(月山)마을

월산마을은 경주이씨 이석손이 계유정란(단종1년, 1453) 때 벼슬을 그만두고 빙부 박연생 대호군과 같이 이곳에 내려와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그 후 박연생은 장성 황룡으로 떠났다고 한다. 또한 옛날에는 상주이씨가 이 마을을 중심으로 동산리 등 인근 마을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후손도 살지 않고 그 유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믈 주변 산야에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기라도 하듯 상주이씨들의 오래된 묘지들이 남아 있다. 월산마을은 조선조 때 담양부 산막곡면 또는 산면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반달처럼 생겨 월산이라 하였다 한다.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의 통폐합에 따라 동산리와 화방리, 왕산리 대례촌과 광면의 장재동 일부를 병합하여 월산리라 불렀다. 마을 뒤편에 가덕봉과 옥녀봉, 동편에 오장산과 서편에 국사봉이 마을을 감싸주고 있으며, 남으로 멀리 중월천이 바라 보인다.

 

7)월산2리 장재(長財)마을

장재마을은 조선시대에는 담양군과 광면에 속했으나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담양군 월산면 월산리 장재마을로 부른다. 약 800년 전 나주이씨와 경주이씨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 다니다가 추월산에서 지혈을 따라 주룡을 타고 내려와 보니 이곳이 문장과 재산이 끊이지 않울 곳이라 여겨 밀양박씨의 딸을 맞아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지형이 소형국인데 마을 앞으로 영산강 상류읮 중월천이 흐르고, 물구십리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 농암평야와 서쪽에 해화평야 등 기름진 옥토가 많으며 무등산이 노적봉처럼 아름답게 보여 재물이 끊이지 않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했다.

 

8)월산3리 동산(東山)마을

동산마을은 천여년 전 고려 경종왕 때에 상주이씨가 살았다고 하나 고증할 수 없고, 1453년경에 뒤편 마을인 월산마을에서 경주이씨 이석손의 손자 명서가 이곳 동산 밑에 터를 잡았다. 처음에는 가정 이명서의 호를 따서 가정촌이라 불렀다. 그리고 마을 동쪽을 ‘월고지리’라 하고 마을 중심부를 ‘동반월’이라 하였다. 그 뒤 1890년경 하동정씨 찬권이 입촌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 서편에 원형의 작은 동산이 있어 동산리라 칭하였다. 주로 경주이씨가 자작일촌하며 마을이 이루어졌다.

 

9)월산4리 도개(道開)마을

도개마을은 1900년까지는 황무지로 가시덩굴 밭이었는데 1905년경 곡성에서 살던 밀양박씨 준영이 월산면의 중앙에 위치한 이 마을이 평탄한 지형이라 살기 좋은 것이라 여겨 터를 잡고 한의원을 개업하며 살았다. 그리고 1915년경 보성선씨 행권이 보성에서 이곳으로 이사해 와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살았다. 1935년경 연안김씨 옥기가 들어와 양잠을 하려고 넓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뽕밭을 만들었으며, 1948년경 하동정씨 준기가 전원농촌으로 가꾸고자 밭에 집을 지어 살았다. 원래는 이웃 동산마을에 속해 있었으나 호수가 늘어나니 ‘또개샘’이 마을 중앙에 있는 것을 뜻삼아 마을 이름을 지었다. 또개샘은 마을 공동 빨래터였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도의심을 앙양하자는 도(道)자와 개척정신을 불러일으키자는 의미로 개(開)자를 합쳐 도개마을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도개마을은 현재 월산면 소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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