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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700년 이어온 ‘불복장’ 국가무형문화재 된다①불상·불화 안에 물목(物目) 봉안하는 불교의식
김관석 기자  |  wdy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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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5  09: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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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담법인 대종사(1843~1902)
   
▲ 도월수진 대종사(1948~현재)
   
▲ 도월수진 대종사 불복장 시연

해동율맥 제11대 율사 용화사 수진스님 전승자 지정

불상이나 불화 안에 사리 등 불교와 관련한 물건 목록을 봉안하는 불교의식인 '불복장작법'(佛腹藏作法)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불복장작법'은 탑의 내부에 사리 등을 봉안하듯이 불상·불화 등을 조성해 모시기 전에 불상 내부나 불화 틀 안에 사리와 오곡 등 불교와 관련한 물목(物目)을 봉안함(불복장)으로써 예배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의식이다.
불복장은 고려시대부터 베풀어져 700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의례의 저본(底本)인 '조상경'(造像經)이 1500년대부터 간행되면서 조선시대에 활발히 행해졌다. 본지가 해동율맥 제11대 율사인 용화사 주지 도월 수진스님의 불복장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지정을 앞두고 지역 불자 및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복장의 유래 및 전승이력, 중요성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불복장(佛腹藏) 전승 이력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용허 화악스님에 의해 불복장 의식이 정리되어 조선조 후기 화엄의 중흥조 연담 유일선사(1720~1799)로부터 선맥을 이은 화담법인(1843~1902)에게 전수된 바, 화담법인은 해동율맥 제7대 율사인 금해관영(1856~1937)에게 전수하고 금해관영 선사는 1911년에 금강산 유점사본을 중심으로 한 복장진언 책자를 편집하여 해동율맥 제9대 율사인 묵담 성우에게 전수하고, 묵담 성우 대종사는 복장진언 진본책자와 함께 해동율맥 제11대 율사인 담양 용화사 주지 도월수진에게로 전수하여, 현재 복장진언 책을 소장하고 이를 숙지한 수진스님이 전통적인 불복장 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용화사 도월수진스님은 1981년 묵담성우 대종사가 열반에든 이후 2018년까지 37년간 계속 ‘불복장작법’을 전승해 오고 있다.

■용화사 주지 도월수진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
용화사 주지 도월수진은 뜻있는 큰스님들의 권유와 불복장 의식에 담겨진 학술적 가치, 중생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불교의 중도사상 선양을 위해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지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수진스님은 국내 유명사찰인 해인사, 통도사, 순천 송광사 등을 가서 불복장 의식을 봉행할 때마다 수차에 걸쳐 큰스님들이 이 의식은 후대에 전해야 하는 특별한 의식인 만큼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수차에 걸쳐 받았다는 것이다.

■불복장 전승 가치
불복장의 역사적 근거에 앞서 조상경에 나오는 불상 기원을 되돌아 보면 BC6세기 경 인도 반사국 왕인 우전국왕은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돈독하였던 바, 부처님이 한번은 구순안거(여름 3개월 90일간 공부하는 기간)동안 도리천(33천의 세계로 마야부인이 실다르타 태자를 탄생시킨 후 1주일 만에 돌아가시어 승천하신 세계)에 계신 생모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 차 승천하였을 때 매일 배알 하였던 부처님을 뵙지 못한 괴로움으로 우전국왕이 병이 나자 신하들이 왕의 쾌유를 빌기 위해 전단향나무로 불상을 조성하여 모심으로써 최초로 불상 조성이 시작되었다.
최초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탑에다 모시는 사리탑신앙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새로 조성한 불상 속에도 사리를 모시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불교가 2500여년에 걸쳐 전파되다보니 방방곡곡에 불상을 모시게 되었던바 사리가 다 충당이 불가능하게 되어 중국에서 금목수화토 오행에 맞추어 오장(간장, 심장, 폐장, 신장, 위장)육부를 차려 모시어 살아계신 부처님 같이 모신데서 불복장이 시작되었다.
티벳에서는 그 나라 독자 방식으로 현재 불복장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사라져서 행해지고 있지 않다.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일체장경이나 일본의 신수장경이나 속장경에도 조상경이란 책자가 아주 없으며 불복장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 나타나 있지 않은데 반하여 우리나라 경전에만 조상경 및 불복장 내용이 정리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참 희유한 일이다.

■국내 불교 역사에 나타난 불복장의 사례
백제 무왕 AD600년경 조성된 미륵사지 석탑의 동탑, 서탑 중 서탑에서 해체 복원 중에 부처님 사리와 금, 은, 유리, 보석의 장엄구가 무수히 출토되었다.   
사리병이 발견된 최고의 기록연대가 분명한 AD766년 지리산 산청 대원사 석조 비로자나불상의 대좌에 사리장치를 넣었던 납석제 사리보병 속에 부처님 사리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 대표적이다.
AD800년경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 복장에서 그 당시에 조성되었던 목간 단자가 나온 것 등을 살펴보면 통일신라 이전부터 불복장이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들어 AD1274년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연기문 및 AD1346년 서산 문수사 아미타여래 좌상의 불복장 사례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대왕이 AD1466년에 조성했다는 강원도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복장유물과 아울러 세조대왕의 피고름이 묻은 명주적삼이 나오기도 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소헌왕후가 돌아가시자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직접 한글로 지은 월인천강지곡 상권이 부안 내소사 실상암에서 복구가 불가능한 훼손된 불상 속에서 복장물이하 월인천강지곡 책자가 처음 발견돼 담양 용화사 창건주 묵담 큰스님이 40여년간 서고에 보관해 오다가 AD1962년 당시 광주 채신청장이었던 진기홍씨에게 넘겨주게 되어 국립박물관에 모셔지게 되었다.
이것도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이 67세 때인 AD1462년(세조8년) 3월에 실상사 삼존불 조성을 직접 권선했고, 4년뒤인 1466년 4월에는 효령대군이 실상사 중창을 위해 발원문과 함께 월인천강지곡을 복장에 모셔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도 불복장과 책자가 모셔진 귀중한 역사적 근거이다.

■불복장이 시작된 역사적 근거(조상경 판본의 변천)
복장품 이입의 의궤라 할 수 있는 조상경(造像經)은 그 연원을 조상공덕경(造像功德經),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 제경요집(諸經要集), 아육왕경(阿育王經) 등을 인용하여 밝히고 있으나 이는 후대인들이 불상의 공덕을 갖가지 경전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이 곧 불상복장에 대한 연원의 근거가 되는 것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조상경은 한편으로는 중국 송나라 육조삼장 선무외 스님의 금강정경에 수록된 ‘복장사’에 근거하고 있다고도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조상경은 전남 담양 용천사본의 대장일람경(大藏一覽經 1575년), 전남고흥 팔영산 능가사본의 관상의궤(觀相儀軌 1677년), 평안도 용강 화장사본의 화엄조상(華嚴造像 1720년), 경북상주 김용사본 (金龍寺本 1746년)조상경, 금강산 유점사본(楡岾寺本 1824년), 간기(刊記 1888년-필사본의 조상경 생반삼분설이 기록된 것이 특징) 등  6본이 있다.
조상경의 특징은 진실의 대장 일람집, 자현의 묘길상대교왕경, 선무외의 삼실지단석, 시호의 대명관상의궤 등 네가지 경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년대가 제일 빠른 용천사본에서 인용한 경전들의 번역연도와 고려에 유입된 시기를 정리하여 보면, 대장일람집에 들어있는 조상품은 12세기 중엽 중국에서 판각되어 고려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나, 현존 자료로는 1473년 인수대비 발원으로 판각된 대장일람집이 있다. 묘길상대교왕경은 1062년 이후 번역되어 고려로 수입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삼실지단석은 9~10세기경 고려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조상경은 1824년 유점사본에서 전면적인 개판이 이루어질 때까지 조상경 또는 대장일람경이라 불리워져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상품은 복장의식과는 실질적인 관계없이 조상하는 인연을 설명하고 있고, 묘길상대교왕경은 복장물의 물목이며, 삼실지단석은 불상의 뱃속에 복장물을 넣는 의식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다.
조상경 판본을 살펴보면, 화장사본(1720년:부산 대원정사 소장)은 용천사본(1575년:일산 원각사 소장)에 가깝고, 김용사본(1746년: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은 능가사본(1677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에 가깝다.
유점사본은 1824년에 화악지탁(1750~1839)에 의하여 형식과 의식을 갖춘 조상경으로 전면 개판 되었으며 필사본은 1888년 생반삼분해가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점사본의 가장 큰 특징은 용천사본의 틀을 유지하면서 설명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점사본 조상경의 탄생
  도광4년(청나라연호 1824) 갑신 유월일
ㄱ. 서문 :뇌암스님과 백석거사 2편
    발문 :화악지탁 영해여훈 2편 수록
뇌암서문왈 : 불상조성의식을 담고 있는 조상경의 목판이 오래되어 알 수 없는 곳이 많으므로 이것을 개간(改刊)하고자 용허스님이 발원하여 복장자료를 구하고 수집하여 화악스님에게 고증을 청하니, 화악지탁스님이 여러 제방큰스님들께 물어 교정, 정리, 경전 고증을 마치고 불상조성 절차의식 책을 완성하니 용허스님이 제자 영해여훈에게 필사토록하여 공인과 재물을 모아 봄에서 여름까지 판각을 끝내고 조상경 200질을 인경하여 각처에 반포하고 경판은 금강산 유점사에 보관하다.
ㄴ.전승 이력 및 기간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용허, 화악 두 스님에 의해 복장의식조상경이 정리 인경되어, 조선조 후기 화엄의 중흥조 연담유일(1720∼1799)선사에서 선맥을 이으신 화담법인(1843∼1902)에게 전수되었다.
 ★화담법인은 해동율맥 제7대 율사인 금해관영(1856∼1937)에게 전수하고
 ★금해관영 선사는 금강산 유점사본 불복장 조상경을 중심으로 한 복장진언(조상경만 가지고는 불복장을 어떻게 해야하는 순서와 의식을 알수가 없는 것을 1919년(기미년)에 금해스님께서 복장의식을 순서에 따라 할 수 있게 설명을 곁들여 정리한 책을 편집하였다.
 ★해동율맥 제9대 율사인 묵담성우에게 전수하고 묵담성우 대종사는 조상경 및 복장진언 진본과 함께
 ★해동율맥 제11대율사인 담양 용화사 주지 도월 수진 율사에게 전수하여 묵담성우 대종사께서 1981년 열반하신 이후 2019년 현재까지 38년간 불복장의식을 전통적으로 봉행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정리=김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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