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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지명 천년 기획(29)수북면 개동(開東)·고성(高城)·궁산(弓山)·나산(羅山)·남산(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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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5  09: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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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북 중정사지 마애여래좌상(고려시대)
   
▲ 수북면 남산리 마을회관
   
▲ 수북면 나산리 마을 전경
   
▲ 수북면 고성리 월성산고분 2호분
   
▲ 수북면 고성리 마을 전경
   
▲ 수북면 개동리 마을 앞 전경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개동리 개동(開東)마을
개동마을은 인접한 봉산면에 선사시대의 수혈(옆으로 된 토굴)주거지와 나산마을 앞쪽에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도 그 당시에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나 흔적이나 고증할 자료는 없다. 처음 터를 닦은 성씨는 조선 선조 13년(1580) 천안전씨 대사헌공파 시조 윤창의 12세손 덕창이 그 아들 천흥을 데리고 지금의 창평면에서 들 넓고 물 좋은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광산노씨도 천안전씨와 함께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 온다. 그 무렵 평산신씨 밀직공파 시조 8세손 순항도 선조 때 한양에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인조 18년(1640) 장흥고씨 중시조 중연의 14세손 진사 두인도 지금 광주광역시 남구 완산동에서 이거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을 동쪽부터 개척하고 협력한다는 뜻에서 개동(介東)으로 불러오다가 150년쯤 전에 새터에 자리잡은 신기마을과 개동을 통폐합하여 개동(開東)이라 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2)고성1리 고리대(古里大), 궁암(弓岩)마을
고리대마을의 입향조는 700여년전 성주현씨와 풍년이씨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하고 있지만 지금은 후손이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후 전주이
씨 중조 월평군 종인의 5세손 적이 조선 중종 5년(1510)에 전북 순창에서 들어와 그 후손들이 지금도 세거지를 지키고 있다. 또 함양박씨 월영당공파 시조 이홍의 7세손 태신은 현종 11년(1670) 오정리 강동에서 이거해와 정착했다고 한다. 그 후 창녕조씨, 평강채씨, 성주이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 지금에 이른다. 약 700년전 고려대(故驪垈)로 칭하여 오다가 조선조 말에 고리대로 다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지형은 당나귀 형국이라는 설과 늙은 노루가 밭을 내려오는 형국,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형국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리대마을과 함께 고성1리를 이루는 궁암마을의 유래는 마을 서편에 있는 아홉 개의 바위가 활 모양이어서 궁암(弓岩)이라고 하였다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아홉 개의 바위가 있어 구암(九岩)이라고 부른 것이 오랜 세월 내려오면서 궁암으로 발음이 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3)고성2리 월성산(月城山)마을
월성산마을은 조선 효종 1년(1650) 평강채시 중시조 고성군 문무의 15세손 채이징이 창평에서 영동김씨와 결혼하여 살다가 이곳 삼인산 아래가 만물시생지라 하여 터를 가려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손들이 지금도 세거지를 지키고 있다. 월성산마을은 일찍 잠원사업이 발달하여 수북에 있는 22개의 자연마을 중 가장 소득이 많은 마을이었다. 잠원사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다섯 사람이 최초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국사람은 음택을 하나 일본사람은 양택을 하므로 이 마을이 양택마을이 되었다. 원래 월성산마을을 작은 성뫼, 대전면 성산리를 큰 성뫼로 불렀다. 창평현에 속해 있을 때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서울로 올려 보내기 전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월성산에 있었다. 그래서 월성산을 창등이라 불렀고, 몇십년 전까지도 창등이라 불러야  다른 마을에서는 알아 들었다. 신월 남쪽에는 마을이 매화낙지형의 명당인 ‘꽃징이’가 있다. 이곳이 마을의 일번지로, 여기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궁산1리 월궁산(月弓山)마을
월궁산마을은 정조 4년(1780) 초계정씨 천호장공파 시조 배걸의 27세손 정치성이 봉산면 산정에서 살다가 이곳에 들어와 정착했다고 한다. 그 후 현풍곽씨도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고 허씨, 박씨, 주씨, 김씨 등도 들어와 마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마을 지형이 활처럼 생겼고 활촉이 동서남북에 있어 마을 이름을 활뫼 또는 궁산(弓山)이라 하였다 전한다. 원궁산은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km 거리에 위치한다. 왕봉산 지맥이 내려와 구릉지를 이룬 곳에 남향을 한 주거지를 이루었다. 동쪽에는 경산이 위치하고 남쪽에는 주평이 있다. 서쪽은 수북천을 경계로 대방리가 있고 북쪽은 왕봉산이 솟아 있다. 마을 앞으로는 돌과 자갈들로 충적된 지상으로 물빠짐이 좋아 전, 답 작물의 혼작의 조건을 가졌다.

5)궁산2리 구암(龜岩)마을
구암마을은 약 600년 전에 신안주씨에 의해 개척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당시에는 마을 이름을 주흥동(朱興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마을 위쪽 차일봉 아래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암(龜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앞 당산나무는 600년전 신안주씨가 입향하여 심었다고 전한다. 또한 1650년경에 함평이씨 중시조 기성군 긍의 13세손 유행이 광주 오치에서 이거하여 고씨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 많은 성씨가 들고 나면서 대촌을 이루고 있다. 구암마을의 지형은 뒤편에 천장산과 차일산이 있고, 앞들에는 수북천이 흐른다. 마을 모양은 상하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은 왕봉산 지맥이 내려온 구릉지대의 돌과 자갈들로 충적된 곳에 주거지를 이루었다.

6)나산리 나산(羅山)마을
나산마을은 조선조 때 창평군 동서면의 지역으로, 마을 남쪽의 넓은 들을 상징하여 ‘나리매’, 또는 ‘나산리’라고 하였다. 이조 명종 때 국지사였던 남사고 선생이 도포가 휘날리는 형국(풍취라대)이라 하여 ‘나산’으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삼인산의 상봉은 마치 붓을 꽂아 높은 듯 필봉형을 하고 있어 나산서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나산마을 입향조들은 이와같은 자세와 아름다운 경치로 보아 장차 부촌이 될 터전으로 여겨져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영성정씨 정희삼이 영광 외가에서 살다가 이 마을에 와 보니 마을 중심에 나산제가 있고, 마을 뒤편에 우뚝 솟은 삼인산이 하늘을 찌를 듯 명산의 위엄을 보이는 지라 탄복하여 자리를 잡은 후 외가인 연안김씨가 뒤따라 왔다고 한다. 연안김씨 직강공파 6세손 인개는 선조 때 외숙 정희삼을 따라 이 마을로 이거하여 400여년의 세거지를 이루었다.

7)남산리 남산(南山)마을
남산마을은 구산의 북쪽인 뒷머리 쪽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증거는 그 곳에서 많은 기왓장과 담돌, 주춧돌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마을이 그곳에서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마을은 600여년전 처음으로 권씨가 입향했으며, 그 후 1480년경 조선 성종 때 탐진최씨 엉암군파 4세손 자유가 담양부에서 부사로 재임 중일 때 산수가 수려하고 풍요로운 옥토에 감동되어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담양국씨 25세손 참판공 도성도 담양에서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손이 10여세손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이농으로 모두 떠나고 몇 호만 남아 있다. 조선조 때는 창평군의 장남면으로 속해 있다가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의 통폐합에 따라 수북면 남산리로 편입되었다. 마을 뒤 산의 형세가 두 남매의 새끼 거북이가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흐르고 있는 영산강 물에 사이좋게 입을 맞대고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남매’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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