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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담양지명 천년 기획(26)봉산면 기곡(錡谷)·대추(大秋)·삼지(三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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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1  13: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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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면 삼지리 새마을창고
   
▲ 봉산면 반월마을 표지석
   
▲ 봉산면 대추리 마을 앞 도로 전경
   
▲ 봉산면 기곡리 소재 호남문화재연구원
   
▲ 봉산면 기곡리 마을 전경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기곡1리 탄금(彈琴)마을
탄금마을의 창촌 때의 입향조는 알 수 없고, 1870년 김해김씨가 순창군 풍산면 소촌리에 거주하였는데, 풍류를 좋아하여 팔도강산을 구경하다가 전망 좋은 이 마을에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1880년대에 밀양손씨가 방축마을에 거주하다가 김해김씨를 따라 입향하였고, 1890년대에 삭녕최씨는 무정면에서 역시 김해김씨 처가를 따라 입향하였으며, 전주이씨도 전북 남원에서 이주하였다고 전한다. 수령 400년 가량의 당산나무가 있었으나, 1989년 마을 도로 확장 때 뿌리가 묻혀 말라죽자 50만원에 팔아 마을 자금으로 사용하였고, 그 자리에 새로 귀목나무 한 그루와 그 주위에 네그루를 심었다.

2)기곡2리 방축(防築)마을
방축마을은 1800년경에 밀양손씨 시조 순의 39대손 세귀가 전북 정읍군 북면 신평리에서 이주하여 입향하였고, 1850년경 안동김씨 만행이 한양에서 입향하였다. 그 이전의 마을 형성은 구전이나 문헌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방축마을은 애초에 현재의 위치에서 북동쪽으로 100미터 지점 산기슭에 선비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 이름을 관작정(官爵亭)이라 했는데, 집터로서는 지대가 높고 계단식으로 대지를 이루고 있어 생활에 불편하였으므로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그러다가 마을 형국이 소가 누워 있는 형태며 뒷산이 송아지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이라 하여 방추마을로 바꿨고, 1900년경에는 마을 앞에 저수지를 만들었던 데서 연유하여 또다시 방축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3)기곡3리 연산(連山)마을
연산마을은 풍수지리학 상으로 제비집 형국이라 하여 1820년 경 안동권씨 중옥이 곡성군에서 입촌하였고, 1850년경 울산김씨 효섭이 장성군 서삼면에서 전주이씨 외가를 따라 입촌하였다고 한다. 주로 전주이씨와 안동권씨가 자작일촌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몇 집 남아 있지 않다. 학식과 덕망이 있는 이 마을은 반란군도 침입을 못했다고 한다. 또 양반마을이라 집집마다 일꾼들을 데리고 살았고, 아무리 추워도 양반 체면 지키느라 스스로는 나무를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마을의 주 수입원은 삼베와 목화솜 재배, 갱기바구니 제작 등이었다. 마을의 샘은 수질이 좋아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그 덕분인지 장수 노인이 많아 마을의 이광우 전 교장의 어머니는 105세까지 장수하시다 돌아 가셨다.

4)기곡4리 상덕(上德)마을
상덕마을의 입향조는 송순의 고조되는 송희경이 세종, 문종, 단종 3대에 걸쳐 승문원에 재직하다가 세조가 단종을 폐위함에 이를 반대하고 낙향하여 1455년에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그 이후로 송씨가 대대로 자작일촌하여 살아 왔으며, 그 외에 한 가구씩 살고 있는 배씨, 박씨는 송씨 가문의 외손이라고 한다.
마을 이름은 처음에는 갈모리(乫毛里)였다. 그러나 송순의 출생지이며 지금까지 송씨 일가로 자작일촌 마을을 이어 오면서도 그렇게 부르게 된 연유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1758년 간행된 추성지에도 갈모리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300여년 동안 불려 왔음을 알 수 있다. 그후 1914년에 상덕리로 개명되었다. 마을 뒷산 능안제 주변에 매년 겨울에 황새(백두루미)가 찾아온다고 전한다.

5)기곡5리 송산(松山)마을
송산마을은 1786년 남원에 사는 경주김씨가 선조의 묘가 마을 옆 장골에 있어서 이곳으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그 후 김해김씨가 1820년에 광산군 석곡면에서 이주해 와 정착하였고 1892년 담양읍에서 담양전씨도 들어왔다. 거의 같은 연대에 남평문씨가 창평면 삼천리에서 이주해 왔고, 120여년전 죽산박씨도 들어왔다. 송산마을의 원 마을터는 지금 청주한씨 선영인 봉란골(鳳卵골)이었다. 하지만 집의 기초를 만들고 상량만 올리면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호랑이가 살아 집터가 센 곳이라 그랬다고 하여 1km 정도 내려와 지금의 마을 터에 자리를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마을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서 송산마을로 개명되었다. 옛날에는 마을앞 고속도로 변에 통행로가 있었고 인가도 3~4가구 있었는데 주변에 바위 9개가 나란히 있다는 이유로 구암으로 불렀다 한다. 이 아홉 바위로 인하여 봉산면이 예년 구암면(九岩面)으로 면지에 기록됐다.

6)기곡6리 반월(半月)마을
반월마을은 비교적 역사가 짧은 최근에 생긴 마을이다. 해방 후 징용 당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귀국하였으나 안심하고 정착할 터전이 없었다. 그러자 당시 면장이었던 이남구 씨등이 지역 유지들과 상의한 결과 현재의 반월에 터를 잡기로 했다. 당시에 국승관씨가 자기 소유의 임야에 임시로 주택건립을 허락하였고, 1948년 이 면장의 행정적 지원으로 주택 24동을 건축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빌린 부지는 나중에 마을에서 매입하였다. 당시 이주한 성씨를 보면 신천염씨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림면에서 연산으로 와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남평문씨는 담양 무정면에서 이주하여 왔으며, 청주한씨는 봉산면 와우리에서 이주해 와 정착하였다. 반월마을은 주변의 산세를 구름에 비유하고 마을터가 반워과 같다 하여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이란 뜻에서 반월마을로 불렀다.

7)대추1리 대추(大秋)마을
조선조 때는 담양부의 목산면으로 지금의 수북면 미산리와 남매마을, 월산면 삼다리와 행정구역을 같이 했던 곳이다. 그 후 목면의 지역으로 큰 가을에 추수를 뜻하여 대추(大秋)라 했다는 설과 대추나무가 있어서 대추징이, 또는 대추라 했다는 말이 전한다. 대추마을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의 휘하에 들어 금산싸움에서 업적을 세우고 순국하신 분의 아들인 정필영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그 후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영천최씨, 김해김씨가 입향하였다. 마을 지명 유래로는 조선조 때 대야리(大野里)로 불리다 대촌리(大村里)로 고쳐 불리고 다시 대추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8)대추2리 도고(都古)마을
도고마을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후소들이 마을의 입향 연대와 그 시조를 정확히 알지 못하나 약 400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담양이 현이었던 시기에 처음 전주이씨가 전북 남원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그 후 밀양박씨가 전남 장성에서 이주하여 생활하였는데 전주이씨는 인근 마을로 다시 이주하여 갔다고 한다. 현재근 밀양박씨, 광산김씨, 연안차씨가 살고 있으며, 기타 성씨는 해방을 전후하여 이주해 왔다. 이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농업을 주업으로 삼아 왔으나, 지금은 원예작물의 생산으로 농가의 소득 수준이 크게 향상되어 있다. 이 마을은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으로 오례천이 흐르고 있다. 지세처럼 굴곡이 없이 살아온 마을로 두곡으로 펼쳐지는 능선이 있어 고금에 걸쳐서 부자가 난다는 옛 지관의 말이 전하고 있으나, 큰 인물이나 큰 부자도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인심좋은 마을이다.

9)대추3리 곡정(曲亭)마을
곡정마을은 조선 선조때 안동장씨 장명원 통정대부의 아들 장치상이 조선 숙종 12년(1686) 담양읍에서 이 마을로 입향하였고, 순조 26년(1826) 광산김씨 20대손 김운택이 월산면에서 입주하였다. 이 마을의 입구가 아홉갈래의 길로 나누어졌다 하여 구분정리(九分亭里)로 칭하여 오다가 1920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곡정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곡정마을은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오례천과 영산강 상류의 담양천이 마을 앞뒤로 흐르고 있는 곳으로, 마을 길이 구불구불 열댓개나 되어서 굽은쟁이라고 부르다 한자말로 표기하려니 곡정(曲亭)이 되었다. 이제는 농지정리로 구불구불한 길이 모두 사라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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