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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불복장(佛腹藏)에 관하여④도월 수진(담양용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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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1  09: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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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칙】정성을 다한 불상조성의 가피력
★일찍이 조상하는 장인의 마음이 이미 정성스러움에 직하에 목전에서 보를 받음이니라.
법원주림에 이르되 위나라 천평(동위 AD534-537)중 정주에 사는 손경덕이 관음상을 조성하고 항상 예배하고 승사(받들어 섬김) 함이라.

후에 겁적(위협하여 약탈하는 도적)이 공격한바를 입어서 고략(考때릴고掠매질할략)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망녕되이 죄를 뒤집어 쓰고 장차 란도질로 사형을 당할 처지인지라 꿈에 한 사문이 하는말이 “구생관세음경 천편을 외우면 해탈을 얻으리라”하고 사라짐이라.

그후 유사(벼슬아치 형장)가 결박하여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죽이려고 저자(시장바닥)거리로 향하여 행(行)함에 걸으면서도 계속 구생관세음경을 외우면서 형장에 다다라서 천편을 채움이라.

칼로 작도(斫刀찍을작 칼도)함에 스스로 큰 칼이 꺾어져 세 조각이 되고 피륙은 손상되지 않기를 세 번 바꾸어 해도 칼 부러짐이 처음과 같음이라. 관리가 깜짝 놀라 임금께 아뢰니 죽임을 면하고 경덕이 석방하여 집으로 돌아와 항상 모시는 관음상을 우러러 경배를 하다 목 위에 세 개의 칼자국 혈흔이 있는지라 깜짝 놀라 “우리 관세음 보살님께서 대신 칼을 받으셨구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하니 정성스럽게 조성하여 경배한 공덕이 이와 같은 신통스런 감동을 받았음이니라.
           
또 수(隋)나라때 개황3년(AD581-600) 응관사 승려 법경이 석가입상을 1장6척(약5m)의 높이로 조성하다 마치지 못하고 법경스님이 갑작이 죽음이라. 그 때에 같이 살던 3일전에 죽은 대지(大智)스님이 3일만에 깨어나서 하는 말이 “염라대왕 앞에서 법경스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석가상이 대왕 앞에 이르니 염라대왕이 당황하여 뜰 앞에 내려와 예를 올리매 석가상이 대왕께 일러 가로되 법경제자가 나를 조성하다가 마치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죽게끔 하였느냐”하였다.
이에 좌우에 있는 옥졸들이 답하여 이르되 “법경의 명이 합당치 못하게 죽었습니다만 음식을 만들 재료 또는 음식값이 즉 음식복이 다 바닥나서 그렇게 죽게 하였습니다”하니 염라대왕이 가히 연꽃잎을 주어서 그 복업(불상 조성의 복된 행위)을 마칠 수 있도록 돌려 보내라 하니 잠깐 사이에 법경이 살아나서 하는 말이 염라대왕 앞에서 대지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니 대지스님과 말이 일치함이라. 항상 연잎을 먹으면서 맛있는 음식으로 삼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은채 석가상 조성을 마치고 수년 후에 목숨을 다하였느니라.

【제5칙】조성하여 모신 부처님께서의 자비심    
★불상의 육괘주(보석)를 도둑질 할려고 힘쓰는데 부처님 몸이 점점 솟음이라. 물러나서 주시기를 구하니 부처님이 연민히 여겨 구슬을 가져가라고 머리를 숙여 주셨다.                                     

서역기(西域記:당나라 형장법사의 인도기행 구법기)에 이르되 승가라국(부처님 탄생국 가비라국 주변나라) 정사(사찰)에 금불상 육괘(불상 머리 상투처럼 솟아오른 모양)가 있었으니 귀한 보석으로 꾸며저 있는지라 후에 도적이 법당에 들어와 보석을 훔치어 가려 하는데 불상이 점점 목을 들어 높이 올라가는지라 도적이 결과를 이르지 못했다.

이에 도적이 물러나서 부처님께 경배하며 가로되 “여래께서는 옛적에 보살행을 닦으실 때 광대심(중생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발하셨고 발홍서원(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신다는 마음)하셨거늘 위로는 자신의 목숨과 아래로 국성(나라전체)에 이르히 중생을 비민(悲憫)히 여겨 일체중생에게 아낌없이 모두 주신다고 하였거늘 어찌 유상(불상)이 보석을 아껴서 옛 행적(수행할 때의 서원)을 밝히지 않으십니까(잊으셨습니까?)”하고 다시 부처님 육괘에 박힌 보석을 빼 가려 했다.

이 때 불상이 머리를 숙여 보석을 줌이라 도적이 잘못을 뉘우치고 가져간 보석을 왕에게 올리면서 사루니 왕이 묻기를 “어디에서 가져왔느냐”하는데 도적이 가로되 “부처님이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도적이 아닙니다.”하니 왕이 믿을 수 없다하여 사자에 명령하여 직접 찾아가 보니 불상이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지라 왕께서도 성현께서 연민히 여김심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을 벌하지 아니하였다하니  다시 속바친 보석(잘못을 인정하고 반납한 보석)을 불상의 이마에 그전같이 박아 드렸더니 지금도 머리 육괘에 보석이 박힌채 숙이고 있다 하니라.

※이 기고문은 불복장(佛腹藏)이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어 일반 군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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