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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불복장(佛腹藏)【1】수진스님(용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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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7  09: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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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장(佛腹藏)하면 복장이란 용어가 한자로 되어있으니 무슨 뜻인지 대략 짐작이 가겠습니다만 한글로만 복장이라하면 입는 옷의 복장을 영상하게 된다. 그러니까 불복장하면 부처님이 입으시는 복식, 옷을 어떻게 입었는가 하고 연상하게 되나 그것이 아니고 부처불(佛), 배복(腹), 감출장(藏).  즉, 부처님 불상 뱃속에 비밀스러운 물품을 넣고 꼭꼭 감춘다는 뜻이 불복장이다.

처음 불상을 조성하게 되면 그 불상 형상만을 법당에 모시어 절을 하는게 아니고 그 안에 많은 물품과 부처님 사리, 아울러 부처님 경전이나 신도님들이 정성스럽게 쓴 불경 사경(寫經)과 현 시대의 물품인 비단, 모시, 삼배옷 등을 폐백으로 부처님께 드리면서 간절한 마음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물품 약 100여가지를 마련하여 등상 부처님 뱃속에다 고히 고히 간직해서 영원하신 부처님으로 모신다는 서원과 함께 가장 처음에 하는 의식으로 첫 번째의 관문의식이라 하겠다.

그러면 이렇게 넣는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점안식이란 불공의식이 있는데 살아계신 부처님처럼 눈에 안정(眼精)을 찍는 의식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예배의 대상인 부처님이 탄생하는 것이다.   불복장의 역사나 부처님의 뱃속에 들어가는 물품, 불상의 최초 출현 등은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고 불복장의 개략적인 말씀을 현재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소개코자 한다.

지난 10월 셋째주 토요일 오후 8시 KBS 방송 프로그램 천상의 컬랙션에서 월인천강지곡을 소개한바 있다. 경상북도 울주 반고대 선사시대 암각화, 월인천강지곡, 개성의 만월대 발굴현장에서 발굴된 용두 등 세 작품을 소개했을 때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단연 방청단 투표에서 일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의 부인인 소헌왕후가 돌아가시자 애끓은 정을 어디에 하소연 할 길이 없어 유교을 국교로 개국을 하였지만 세종대왕은 궁궐내에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불당을 지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었다.

그 허전한 심경은 당해본 자만이 그 정을 알것이라 사료되지만 세종대왕께서 손수 한글을 창제하시고 부처님께 왕후의 왕생극락을 비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찬불가 노래를 지어 불렀으니 한글는 크게 쓰고 옆에 한자는 작게 기록하여 한글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창제하신 한글로 인쇄활자판을 만들어 책을 인출하였으니 인간애에 대한 극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란 달이 일천강에 아름답게 비치우듯 소헌왕후의 마음강에도 부처님 자비의 달이 아름답게 비치어 부처님의 품안에서 고요히 안락을 누리라는 염원의 기도문이다. 이 책이 국보로 지정이 되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활자본으로서 최초의 한글판으로써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발견하여 소장하신 분이 용화사 창건자 묵담대종사 스님이셨다는 사실과 이 책을 500여년 동안 부안 내소사 산내 암자 실상사 부처님 뱃속 복장(腹藏)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세종 당시에 형인 효령대군이 실상사 창건에 당시의 주지스님과의 각별한 인연이 있게되어 불상을 조성함과 동시에 많은 금은 보화와 수십권의 불경책, 아울러 월인천강지곡 책도 같이 넣어 세종대왕의 하사하에 이 책을 불복장에 넣었던 것이다. 세월이 500여년 이상 역사가 흐르다 보니 법당은 퇴락하고 불상마저도 오래되어 파손에 가깝게 되자 법당수리도 하고 불상을 새로 조성하다보니 부처님 복장 속에서 금은 보화, 불상 뿐만아니라 여러종류의 불경도 나오게 되었다.

1918년 묵담스님 23세 때 내소사에서 불경공부를 하는 때에 마침 내소사 산내 암자 실상사를 참방케 되었는데 순은으로 조성한 희귀한 지장보살상과 특이하게 생긴 글자책을 발견, 당시의 내소사 증명법사인 학명큰스님의 허락과 실상사 주지 김석연 스님의 인정하에 기증을 받아 백양사 청류암에서 모셔오다가 6.25 이후 용화사를 창건하면서 용화사에 모셔지게 되었다.(이상 이 책의 발견과 전승과정은 월인천강지곡 논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

또 다음 사례로는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의 복장물의 연기 내용이다.
내용인즉 당시 세조가 영월로 단종을 유배시키고 나중에 사약을 내리어 죽게 함으로 말미암아 꿈에 형수님이 나타나 과도한 핀잔을 하자 그 후로 세조의 등에 등창병이 생기게 되었다. 아무리 어의를 불러 갖은 약과 침뜸으로 치료했어도 백약이 무효라. 세조가 양심적으로 생각할 때 내가 무리하게 정권을 찬탈했다는 생각이 들어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문수보살전 오유월 염천에 100일 참회 기도를 드렸다.

여름더위에 몸도 근질거리고 땀도 많이 나서 계곡의 후미진 곳에 들어가 목욕을 하다 뒤 등에 손이 닿지 않아 애쓰는 모습을 문수보살이 멀리서 보시고 동자로 변해서 세조 임금의 등을 밀어드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자의 손이 가는 곳마다 등창병의 부스럼이 씻은듯이 낳게 되자 감사한 마음도 들지만 동자에게 말하기를 “밖에 나가서 혹여라도 임금의 몸에 손을 댔다는 말을 하지 말라”하니 동자말이 “행여라도 문수동자가 임금님의 몸을 밀어드렸다는 말을 마시오” 하고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다.

세조가 나중에 이 동자가 문수동자인줄을 알고 동자상을 만들어 복장에 피고름 묻은 곤룡포를 넣어 부처님의 영험함을 증명하였다하니 단순한 불복장이 아니라 당시에는 신앙심에 입각하여 모셔졌지만 훗날에는 타임켑슐 열할로 당시의 물질적 정신문화 등을 현세의 작금에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역사의 증거품이 복장 물품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을 총망라해서 불복장이라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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