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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18 담양지명 천년 기획㉔대전면 중옥(中玉)·태목(台木)·평장(平章)·행성(杏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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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9  14: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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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면 한재골 자연발생유원지 전경
   
▲ 대전면 행성리 덕진마을 전경
   
▲ 대전면 태목리 고분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
   
▲ 대전면 중옥리 서옥고분군(담양향토유적제11호)
   
▲ 대전면 평장동 평장사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중옥리 중옥마을

중옥마을은 조선 선조33(1600) 경주최씨 고운 선생의 25세손 최종길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순국한 후, 그의 아들 최경우가 광산군 대촌면에서 아내 강릉유씨의 친정 식솔을 따라 이주해 옴으로써 마을이 개촌되었다. 그 후 고종 17(1880) 충주지씨 지문석이 다음으로 이주해 와, 중옥마을은 삼천석꾼 최씨와 만석군 지씨 두 성씨가 토반 노릇을 해 왔다. 들이 넓고 토지가 비옥하여 자손이 살 만하다 했으니 후손들이 지금까지 400여 년을 보낸 셈이다. 충주지씨는 10호쯤 살다가 거의 떠나고 현재는 여러 성씨가 함께 살고 있다. 중옥마을 전설로 칠부자 출현설이 있다. 마을 이름이 ()’자와 관계가 있다 하여 풍수지리설에서는 이 마을에서 일곱명의 부자가 난다고 했다. 충주지씨 응현이 만석꾼이 되고 경주최씨 순호가 삼천석을 했다 하며, 그후 경주최씨 기선공이 그 당시 200두락의 선자를 받았다 하여 이미 세 부자는 났으며, 네 번째 부자가 언제 나올지는 늘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2)태목1리 태암(台岩)마을

태암마을은 김해김씨 승지 걸이 현종 11(1670)에 광주 사직동에서 살다가 지금의 시목마을인 동옥산으로 이주해 와 그의 셋째아들 망계 김상하가 선덕을 쌓았다. 그 후에 지덕이 탐탐치 못하다 하여 1763년 종형제들과 이곳 태목마을로 이거해 와 입향조가 되었다. 지형은 넓고 평평하며 마을 앞에는 둠벙이 많았다. 구시둠벙, 불갱이둠벙, 평생이둠벙 등 크고 작은 쳔연 소가 있어 관개와 낚시터로 그 이름이 높더니 1974년 경지정리와 제방공사로 메워져 지금은 비옥한 들로 변했다.

 

3)태목2리 시목(柿木)마을

시목마을은 망계공의 부친 증좌승지 김걸이 인조 21(1643)에 이 마을에 새터를 잡아 살았을 때는 동옥산이라 불렀다. 태목으로 이거한 후로도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으나 큰 화재가 발생하여 폐촌되고 망계동 북쪽 500m 지점에 큰 감나무 한그루가 있어 그 감나무 밑에 여양진씨 석효공이 영조 46(1770) 나주 산막동에서 이거 정착하게 되었다. 감나무가 많아 마을 이름을 시목이라 하였다. 일설에는 석효공이 손자인 진이화가 현종 6(1840) 담양 금성면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금성면에서는 석효공의 아들 5형제가 살고 있었다.

4)평장1리 평장동(平章洞)마을

평장동마을은 지금으로부터 1150여년(839~841) 전 통일신라 말엽 신무왕의 셋째아들인 김흥광이 국운이 다함을 예견하여 평민이 되어 이곳(당시 무진주 서일동)으로 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의 자손 8대에 거쳐 12평장사(平章事:고려시대 내사문하성의 정이품 벼슬, 문하시중 다음의 벼슬)가 배출되었다 하여 평장동이라 불렀다. 당시 무진주가 광산현으로 개칭되자 광산으로 관향 되어 김씨 세거의 본산지가 되었다. 마을 입구에는 광산김씨의 본향답게 광산김씨 발상지라는 라석이 세워져 있다. 평장마을은 대전면 소재지인 대치면에서 2km 쯤 백양사로 넘어가는 한재골 곁에 자리잡고 있으며 20여호가 살고 있다. 불태산을 뒤고 업고 무등산을 바라보며 북으로는 한재골, 남으로는 대치리에 접하고 있다. 6.25때 마을이 전소되는 화를 입기도 했다. 옛날 마을 앞에는 조계정, 관덕정, 관대정이 있어 균어와 강례의 풍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자취마저도 찾을 길이 없다.

5)평장2리 화암(花岩)마을

화암마을은 고종 13(1876) 병자년 전후에 밀양박씨 오충 자손인 박유진이 대치리 효례촌에서 이 마을로 이주해 와 터를 잡았다. 그 후 조양임씨, 울산김씨가 이주해 와 3성씨가 번손하였다. 관수정이 있는 마을 앞산 절벽 사이에서 진달래꽃과 각종 들꽃들이 아름답게 피고 가을이면 오색단풍이 가관을 이루어 꽃바위라 불렀다. 조선시대 말에는 광주군 대전면 화암리로 불렸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전면이 화아리로 고쳐 불렀다. 1961년 담양군 조례 제2호 및 제3호에 의거 마을 이름을 고쳐 대전면 평장리 화암마을로 다시 부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남쪽으로 대치리와 경계하고, 북으로 평장동, 서북편에 불태산이 솟아 있어 아늑하다. 그리고 한재골에서 흐르는 대치천이 앞으로 사철 끊이지 않고 흐른다. 이 소하천은 서출동류수라 하여 화암마을이 큰 인물이 나오는 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성균관진사를 비롯하여 동자부장관과 판사 등이 나온 곳이다. 또한 마을 북쪽으로는 도 지정 문화재인 오충정려가 정조8(1784)에 세워져 보존되고 있다.

6)행성1리 행정(杏亭)마을

행정마을은 영성정씨 정희삼이 이종 중종 을미년(1536)에 영광 불갑에서 병풍리로 이주 하기 전 잠시 이곳에서 살게 됨으로써 입향조가 되었다. 그 후 창녕조씨가 들어 왔고, 영조 원년(1664)엔 성종의 4남 완원군의 5대손인 이정이 외조인 송순의 장자 해관의 봉사를 어명 받아 봉산면 연화리에서 살다가 이정의 7대손인 이규현이 영조 원년에 행성리에 들어 옴으로 마을이 제대로 형성되었다. 원래는 장성군 갑향면 행정리였다. 1917년 동리 통폐합 전 창평현에 속해 있을 때에는 갑향고을로 불렸다. 행정마을의 뒷산은 삼인산이고 동쪽으로는 덕진마을, 북쪽으로는 옥산마을과 인접한다. 남쪽으로는 사성마을, 서쪽으로는 병풍리와 접해 있다.

 7)행성2리 덕진(德津)마을

덕진마을의 처음 입향조는 향양 박씨이고 그후 성주이씨, 평택임씨, 광산김씨, 밀양박씨들이 차례로 들어와 살았다. 덕진마을은 창평현의 갑향면 덕산리(원덕진)와 옥동리였다. 1914년 군면 통폐합으로 담양군에 이속되었다가 1931년 읍면제가 실시되면서 행성리로 병합, 덕진으로 칭했다. 동쪽에 영천이 있어 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으니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배가 가는 형국으로 진상가덕(進上加德), 곧 나루 위에 덕을 실었다는 의미로 덕진이라 했다고 전해온다. 이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동방 3.6km 지점에 있고, 성산리와는 도로 하나로 경계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행정마을, 동쪽으로는 수북면 오정리, 북으로는 옥산을 높이 이고 있어 병풍 아래 이불을 편듯한 모습이다.

 8)행성3리 옥산(玉山)마을

옥산마을은 숙종 6(1680) 남면 지곡리 발산 마을에 살다가 옥산마을로 이거한 창녕조씨 홍정이 터를 잡고 그 손이 계속 마을을 형성했다. 그 후 몽성산 아래 옥녀봉이 서기가 효동촌으로 기울어 있어 옥산촌이라 개칭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옥산으로 불렀고 그 후 옥산리로 칭하였다. 옥산으로 칭하게 된 것은 삼인산하 백호등 큰 줄기가 내려와 구산(丘山)을 이루고 옥녀봉에서 나래를 펴듯 머리를 일으킨 용의 기세가 마을로 많이 뻗치기 때문에 서기가 짙다하여 옥녀봉을 의식하여 옥산촌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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