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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담양지명 천년 기획/(22)대전면㉒대전면 갑향(甲鄕)·강의(講義)·대치(大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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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7  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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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면 대치리 소재 척서정(전남도 유형문화제 제270호)
   
▲ 대전면 대치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84호)
   
▲ 대전면 강의리 마을 앞 들녘
   
▲ 대전면 갑향리 소두마을 전경(조선 영조 어머니인 숙빈최씨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갑향1리 사성(四聖)마을

사성마을은 조선 헌종 14(1848) 광산김씨 김구현에 의하여 처음 터가 닦여졌고 마을 이름을 사생동(巳生洞)’이라 하였다. 그러나 마을이름을 사생동이라 한데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마을이 비교적 골짜기에 위치하여 뱀이 많았다는 설이 있기는 하나 사생이란 동리이름은 유교사회에서 붙일 수 없는 것으로 더 고증해 볼 여지가 있다. 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뒤에 쭉 뻗어 오는 능맥이 있어 그것이 사두혈(巳頭穴)이라는 전래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마을 선비들이 이 이름을 탐탁치 않게 여겨 양씨, 김씨, 강씨, 임씨를 사성(四聖)으로 미화화여 사성마을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2)갑향2리 계곡(桂谷)마을

계곡마을은 1914년 이전에도 계곡이라 불렀고 약 250년 전이나 300년 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평문씨 덕명공이 당시 창평이었던 수북면 금구동에서 살다가 조선 영조 12(1736)에 이곳에 이주하여 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고증은 없다. 토끼등에서 내려오는 긴 산맥이 마을 뒤에서 멎고 반월형을 이루니 그것이 닭벼슬(鷄冠)과 같다 하여 터를 잡고 처음에는 계곡(鷄谷)이라 칭했다. 그 후 마을 이름이 좋지 않다 하여 지금의 계곡(鷄悎)으로 개칭했다. 원래 풍수지리설에 토끼등엔 옥토망월형의 명당이 있고 또 월인봉이 있는 등, 달관 관련이 있어 계수나무를 연상하여 계곡이라 명명했다는 설이 있다. 위치는 면소재지에서 동남방으로 3km지점에 있고 북으로는 성산리와 삼인산이 있고, 남으로는 영산강이 흐르며, 동으로는 수북면 금구동과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갈전마을과 이웃하고 있다.

3)강의리 황구래(黃龜來)마을

황구래마을은 조선 성종 11(1480)에 청송심씨 덕부가 곡성군 옥과 땅에서 이곳으로 이주함으로써 터가 닦였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그 뒤 선조 38(1605) 광산 김씨 감사공파 구진이 이 마을에 들어와 12대 손에 이르고, 효종 10(1659)에 김해김씨 응상공 좌윤이 입향하여 터를 닦아 지금 9대손에 이르고, 숙종 20(1694)경 이천서씨가 나주에서 이주해 와 지금 9대손에 이르고, 영조 원년(1725)에 청송 심씨가 들어와 9대손에 이르고, 입향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전주이씨까지 5대 성이 살아오고 있다. 마을이 황구래, 강하촌을 거쳐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결국 강의리로 정해졌다. 남쪽은 광주시 용강동, 동쪽으로는 수북면 황금리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월본리 갈전마을이 위치한다. 뒤편의 큰 지형물로는 병풍산, 앞으로는 광주시 삼각산이 있고, 마을 앞에 영산강이 큰 내를 이루어 흐르고 있다.

4)대치1리 동부(東部)마을

조선조 연산군 초기에 영천이씨 중시조 이희증이 이곳으로 피난 정착하여 마을을 개촌하였다. 동부마을은 1948년 대치리에서 분구된 마을로 옛 망화리 일부를 포함한다. 이 마을은 대치리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국도 24호선이 대치 시내를 관통하는데 마을은 국도 24호선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전에는 대전면사무소가 있어 중심기능을 수행했던 곳이다. 또한 주조장 등 산업기반도 튼튼한 곳이었다. 북으로는 북부마을, 남으로는 신남마을, 동으로는 원촌마을, 서쪽으로는 중부마을과 인접해 있다. 마을 뒤편 멀리는 명산인 병풍산이 있고, 가깝게는 천연기념물 제284호인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수령 600년을 자랑하며 높이 25m, 가슴둘레 27.6m, 동서로 26.7m, 남북으로 25.8m로 펼쳐 있다.

5)대치2리 서부(西部)마을

대치리가 500여 호로 큰 마을이 형성되어 분구할 필요가 있어 1961년 담양군 조례 제2호 및 3호에 의거 대전면 서부마을로 분구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부마을은 대치리에서 장성으로 향하는 국도 24호선 위에 있다. 서쪽으로는 대치천이 흘러내리며, 장기보에서 취수된 물이 마을을 관통하여 흘러내린다. 마을의 동남쪽은 중부, 북쪽은 북부, 남쪽은 금곡마을이 있으며 서쪽에는 대치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마을은 남북 장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마을 형국이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다. 중부와 서부마을은 그 형국이 배가 물 위를 항해하는 형국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양쪽에 키가 높인 모습이다. 서부마을을 간촌(艮村)이라고 한다.

6)대치3리 중부(中部)마을

대치리 입향조는 영천이씨 이희증이다. 대치리는 문내리, 망화리, 효례리, 원촌리로 분구되었는데 처음 터를 잡은 곳은 지금의 북부인 효례리이다. 1917년 마을 통폐합으로 대치리로 통칭해 오다가 1942년 대치리를 동부, 서부, 북부, 남부, 원촌 5개마을로 분구했다. 그 후 인구의 증가에 따라 1948년 서부에서 중부를 파생하여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중부마을은 동부마을과 서부마을 사이에 있다. 서부마을에서 이 마을로 관류하는 도랑은 사계절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원천수로 중요한 관개용 수원이다. 마을 형성 당시 영천이씨의 손에 의해 이룩된 도랑으로서 주민의 유일한 생활용수로 쓰이고 있다.

7)대치4리 남부(南部)마을

남부마을의 정착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대치리에 입향한 영천이씨가 손을 늘려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확대되어 개척된 것으로 보인다. 면사무소 서편에 위치하고 있는 남부마을은 대치천을 서쪽에 두었고, 장방형을 이룬다. 대치교를 지나는 장성과 담양선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남부마을 서쪽에 솔밭이 있어 울창하여 솔밑, 혹은 송정이라 불러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도축장 건물이 있었다. 오랫동안 가동 중인 도정공장이 송정마을 입구에 있고, 중앙부에 대치시장이 있는데 1919년 허가를 얻어 개시되어 지금까지 3일과 8일에 시장이 열리고 있는 마을이다.

8)대치5리 신남(新南)마을

신남마을은 1963년 남부마을에서 분리된 마을이다. 신남마을은 면사무소 소재 마을인데 남쪽은 태목리와 인접하고 서쪽은 남부와 인접하며 동쪽은 원촌마을, 북쪽은 동부마을이 있어 방원형이다. 최근 새주택이 많이 들어서는 신개발지구이다. 국도 13호선이 북에서 남으로 마을을 관통하며 대치리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 국도 24호선은 동에서 서로 대치를 가르는데 신남마을은 남쪽 아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재중학교, 대전면공회당, 대전 단위농협, 대전의용소방대 등 대전면의 모든 공공기관이 신남마을에 들어서 있다.

9)대치6리 북부(北部)마을

북부마을은 대치리의 원촌마을이다. 대치리는 영천이씨 이희증이 개척하였는데 처름 터를 잡은 곳이 이곳으로 옛 이름은 효례리이다. 1942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치리를 동부, 서부, 북부, 남부, 원촌 5개마을로 분구하였는데, 이때 나누어진 이름이다. 북부마을은 파출소 사거리에서 한재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북쪽으로 곧장 진입하면 왼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서부마을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화암마을에 접하며, 동쪽으로 원촌마을, 남쪽으로는 동부마을에 접한다. 마을 입구 북구라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효례촌이라는 옛 이름과 함께하고 있다.

10)대치7리 원촌(原村)마을

원촌마을은 광주군 대치면이었다가 통폐합 이후 담양군 대전면이 되었다. 인조 24(1646)에 대치 서원이 창건되어 지방의 교화에 큰 힘이 되어 왔는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져 서원이 철거되고 지금은 서원 유허각만 남아 있다. 이 마을에 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원촌이라 부르고 있다. 이 마을 서북편 앞들을 샛들이라고 한다. 이는 옛날 대치천이 화암마을에서 이곳으로 흘렀는데 홍수로 인해 지리적 변천을 일으켜 서편인 서부마을 쪽으로 물머리가 돌아 버리고 여기는 들판으로 변했다 해서 이 들을 샛들이라 부른다.

11)대치8리 대조(大鳥)마을

대조마을은 이전에 한새몰이라는 진소등 아래 들판에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불대산에서 내려뻗은 지소등이 청룡자락으로 길게 뻗어 있고, 좌로는 대치천이 흐르며 마을 앞으로 국도 24호선이 지나고 있다. 대조마을은 1994년 대전면 서옥리에 위치한 육군기계화학교 소속의 전차포사격장인 황룡사격장의 확장에 따라 당초 장성군 진원면 사임리과 경계를 이루고 있던 신촌, 환인 마을이 편입되게 되었다. 이에따라 대안부지로 지금의 위치에 주택 40동을 건립하여 이주자 20호와 그 외 입주자 20호로 형성되어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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