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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담양지명 천년 기획/⑯담양읍 만성(萬成)리·반룡(盤龍)리·백동(栢洞)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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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0  11: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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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읍 만성리 호국사 경내 설경
   
▲ 담양읍 백동리 전남문화재자료 제18호 남희정
   
▲ 담양읍 백동리 향백동 마을 전경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만성1리 완동(完洞)마을

완동마을은 약 180여년전 광산김씨, 정주정씨, 전주이씨, 달성서씨가 입항하여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는 광산김씨 김일경이 영조대왕의 왕통 계승문제를 적극 반대하다가 영조대왕이 즉위하자 화를 당했고, 그 후손인 중추부사 김기현이 이 마을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마을이 터가 좋아 600년은 편히 살 수 있는 명당이라 하여 평산신씨와 결혼한 후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마을의 형국이 소가 물을 먹고 누워서 쉬는 형이라 하여 와우동이라 불렀다. 와우동이라 부른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완도이라는 말로 변했다는 말이 전한다. 또 만성리는 예부터 추월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만사가 잘 이루어진다 하여 만성리라 하였다고도 하고, 마을 앞에 우거진 숲이 앞을 가리고 있어 그것을 베어 버린 후 완전한 마을이 되었다 하여 완동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이 마을 주 소득원은 부채였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2)만성2리 벌뫼마을

벌뫼마을은 뒷산이 벌집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마을이 한봉의 집단적 생산지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꿀이 유명하여 조정에 진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초에는 벌뫼로 불러오다가 봉산마을로 개칭되었고, 100년 전에 완동과 시산에 살던 주민들이 입향하여 집단촌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마을에 7부자가 살았는데 당시 담양의 경제권을 좌우할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주요 문화유적 및 유물로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기념물 제48호인 선자장(扇子匠), 48-1호 접선장(摺扇匠)이 있다. 선자장(기능보유자 김대석)은 조선시대에 관아에 속하여 부채를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의 기능을 전승 보존하고자 하는 문화재이다.

3)반룡1리 반룡마을

고려공민왕 19(1370) 경주이씨에 의해 성촌되었고, 그 후 숙종 26(1700)에 이씨가 이곳을 떠난 후 진주하씨와 연안차씨, 순천김씨 등이 차례로 입촌해 왔다고 전한다. 김씨, 차씨, 박씨 등이 많고 그 중 순천김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반룡마을의 지형에 대해서는 담양남오리허(潭陽南五里許) 반룡지중롱주(盤龍池中弄珠) 수유괘표지형(雖唯挂瓢之形) 사십구대청한지지(四十九代淸寒之地)’라는 말이 전해온다. 이를 풀이하면 담양으로부터 남쪽으로 오리 지점의 연못 가운데 서린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형이라 하여 반룡이라 하였고, 또한 바가지를 걸어 놓은 형으로서 49대에 걸쳐 청백한 수재가 배출한다는 뜻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반룡이라 칭하였다고 전해 온다.

4)반룡2리 용주(龍株)마을

용주마을은 19053월 김해김씨와 진주강씨가 인근 죽산마을에 입주하여 창촌하였다. 반룡마을에서 볼 때 지형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용주마을이다. 또한 죽산마을에서 바라보면 동산의 형국이 송아지형 뫼로 보인다 하여 독뫼라고도 부른다. 마을 앞에는 오례천이 흐르는데 모래찜으로 유명했다. 속설로는 쌍교 모래에는 이가 있고 용주 모래는 약이 된다라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용주마을 주민들이 모래밭을 매우 아끼며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미담이다.

5)반룡3리 신촌(新村)마을

신촌(구터)마을은 고려 공민왕(1360) 때 전주이씨가 이사와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1934년에 발행된 무정면지에 의하면 숙종 36(1710)에 전북 부안에서 이사 온 안동김씨가 창촌한 것으로 기록되어 정확한 성촌의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창촌 당시부터 마을 명을 구터로 불러왔다. 그러나 구터라는 명칭은 이 마을 자체가 반룡이었는데 그 후 현재의 반룡촌에 새로이 입주한 거주민들의 농경 여건에 더 편리하에 마을 규모가 커지자 원래 마을을 구별하기 위해 구터로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한다. 구터마을은 남산의 맥이 정통으로 뻗어 내려온 소쿠리 형국의 마을로 소쿠리가 작아서 마을이 더 이상 클 수가 없었는지 대대로 30여호 이내로 거주했다고 한다. 신촌이란 명칭도 1910년 이후 일정 초기 행정구역을 통합 운영하면서 마을 호수가 적어 신촌으로 개촌한 것으로 전한다.

6)백동1리 원백동마을, 백동2리 삼거리마을

백동리는 고려 중엽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말기에는 큰 마을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입향 시조는 경주인 김천서가 1300년 초에 그리고 광산인 김자민 동래부사가 태조 4(1395)에 입항했고, 조선조 정종 원년 1399년에 김천서의 딸이 정종비가 되면서 담양현을 부로 승격시키고 마을에 향()자를 붙여 향백동이라 높여 부르게 되었다. 홍주인 송치묵은 1846년에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백동리는 조선조 영조때의 추성지 기록에는 담양부 서변면의 향백동과 잣굴 또는 부사골이라고 불렀는데 부사골에는 조동리가 있었고 동변면의 내동만이 백동리 현 지역에 나타나 있다. 그 후 점차 인구가 유입되어 호수가 늘어나 조선조 말에는 백동, 신기, 삼거리 등으로 부르고 조동리는 폐촌되었다고 하는데 연대는 기록이 없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동시에 전국의 부제가 폐지되면서 담양부가 담양군으로 개칭되고, 동변면은 동면으로, 서변면은 서면으로 부르게 되고, 1920년경에 천변, 지침마을에서 이주한 주민이 미리산 마을을 형성하였다.

7)백동3리 신기(新基)마을

백동리 3구를 신기리라 부른다. 그러나 현 신기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에 일본인이 명명한 이름이다. 새로 터를 잡았다는 뜻이다. 신기마을은 예전에는 고사리등이라 했으며 지형상으로는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속칭 고사리등이란 고사리가 많이 나는 걸로 생각되고 있으나 이 마을에서 배출된 높은 선비와 관리가 많았다는 뜻에서 고사리등(高士吏嶝)이라 하였다고 전해 온다. 신기마을은 헌종 2(1836) 김해인 김현기가 입향한 것을 비롯하여 그 뒤에 초계인 정재유가 1910년경에 그리고 광산인 김재순이 다시 입촌했다. 선조 때에 언양인 김응회가 살았고, 철종때는 장흥인 홍문관 교리 고택겸이 살았다고 한다.

8)백동4리 미리산(尾鯉)마을

미리산이라는 마을이름은 남산의 흙이 밀려나와 만들어진 산이 밀어다 붙여 만들어졌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뒷산이 물고기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물고기 꼬리에 해당하는 형국이라 미어산이라고도 불렀다. 그후 차차 미리산으로 불러졌다는 추측도 있다. 미리산마을은 지금부터 80여년 전 유재도가 국한룡 씨 선산지기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어 점차 인근에서 주민들이 입주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한 설로는 이렞강점기 때 이 마을에 역이 있어서 임시로 거주해 있던 몇집이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도 본다.

9)백동5리 서당골마을

예전에 이곳에 서당이 있었다하여 서당골이라 불렀다. 이 마을은 서당골이라는 이름대로 선비들이 많아서인지 대대로 가난한 동네였다고 한다. 절도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옮겨 갔고 이 절터에 탑이 있었다하여 탑골이라고도 불렀다. 마을 뒷산을 작은 남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형국이 지렁이 모양이라 지렁산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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