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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담양지명 천년 기획/⑮담양읍 객사(客舍)리·금월(錦月)리·담주(潭州)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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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3  14: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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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리 남촌마을 입구 전경
   
▲ 남산리 용화사 묵담스님 동상
   
▲ 담주리 담양오일시장
   
▲ 천연기념물 제366호 관방제림(담양읍 객사리)
   
▲ 보물 제505호 담양 객사리 석당간
   
▲ 보물 제506호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형성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1)객사리 1, 2, 3마을

조선조 때 임금의 명을 받아 지방에 내려오는 관리를 접대한 곳을 객사 또는 관우라 한다. 담양에 처음 객사가 건립된 것은 선조 35(1602) 이간에 의해서다. 그후 부사 김이가 동상헌을 객사 동쪽에 건립하여 모든 공사를 관우에서 처리하며 당시의 심장부 역할을 한 곳이 지금의 객사리이다. 객사마을은 본래 담양군 동변면의 지역으로서 현 동초등학교 일대에 조선조 때 객사가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 된 이름이다. 동변면이란 이름은 군 전체로 볼 때 동쪽에 있다는 뜻으로 붙여졌다. 지금의 담양읍 일대가 거의 옛날 동변면 지역이었다. 191441,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남산, 동정, 향교, 취영, 광동, 객사, 북내, 북외, 부중, 간동, 마내, 마외, 마구, 북우, 득삼, 지침, 삼거리 등의 법정리를 관할하던 면이다.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객사리, 북내리, 북외리, 부중리와 동정리, 간동리, 마내리, 마외리, 마구리, 북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객사리라 해서 담양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담양읍이 되었다. 주요 문화 유적 및 유물로는 석당간, 관방제림, 총무정 등이 있다. 이 중 보물 제505호인 석당간은 팔각형 돌기둥 세 개를 연결하여 그 위에 원형당간을 세웠다. 당간의 꼭대기에는 쇠로 만든 원형의 보륜을 구비하고 풍경과 유사한 것이 장식되어 있으며, 삼지창의 2원철에 3개의 풍경이 달려 있다. 그런데 나라에 큰 변화가 있으면 미리 풍경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고 한다.

2)금월1리 연화촌(蓮花村)마을

연화촌마을은 고려 때부터 지금의 산52번지 닭실이라 부른 곳에 김해김씨, 초계최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가 원율천(금성천)의 물이 마을까지 범람하여 불편을 가져와 효종 1(1650)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이루게 된 마을이다. 창건 당시 심었다는 마을 앞의 당산나무는 지금까지 남아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마을 뒷산이 연화봉과 같다하여 마을 이름을 연화촌이라 불렀고 지금의 317번지에 연못을 만들어 오랫동안 연꽃을 피워 마을의 부귀영화를 대변해 왔다. 아쉽게도 1973년 하천 정비사업으로 제방이 구축되면서 연못은 논으로 변하고 없다.

3)금월2리 금월(錦月)마을

현종11(1670) 신평송씨가 입촌하여 10여호를 마을이 형성되었고, 전씨들도 살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예전에는 금성면에 속했으나 1938년 행정구역 개편때 담양읍으로 편입되었다. 예부터 교육열이 강한 마을로 법학박사, 서울대 출신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예전에 금월리 204번지에는 원율천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옥녀봉 아래까지 흐르며 만들어 내는 소가 있었는데 옥녀탄금 모습이 소의 물에 비치는 풍경이 극치에 달한다 하여 마을 이름을 금월이라고 불렀다. 마을 앞 정자 옆에는 심은 유래는 모르나 수령 250년이 넘은 버드나무가 있으며 마을 89번지 터에는 옛날 천동면사무소가 있었다.

4)남산1리 남촌(南村)마을

본래 담양군 동북면의 지역이었다. 남산 밑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 또는 남촌이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때인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의 통폐합에 따라 동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산리라 하여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남촌마을은 동남간으로는 남산의 맥이 흐르고 서북간은 멀리 추월산과 병풍산, 삼인산을 바라보며 옥답이 정원처럼 앞뜰에 펼쳐져 있어 농촌의 풍경이 좋은 마을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촌이란 이름은 부드러움과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1984년 가을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남촌마을을 가로질러 앞이 막혀 버린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한편 옛날에는 전씨가 집단적으로 60여 가구가 거주하여 전촌이라고도 불러왔다고 전한다, 또한 남산리라 부르기 이전에는 효자리로 불렀으며 조선조 말 이후까지도 부촌으로 그 이름이 알려졌다. 지금의 오층석탑 남쪽에는 동정사가 있었는데 약 200년 전 금성산성으로 옮겼다고 전하며, 현 남산리 전812번지에는 향교가 있었는데 지금의 향교로 옮겼다고 한다.

5)남산2리 동정자(東亭子)마을

동정자마을은 객사 동편에 축요루가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동정자 또는 동정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축요루는 담양도호부의 객관 동쪽에 있던 누각으로 정유재란으로 불타 폐하였다고 한다. 한편 예전에 마을의 큰 나무를 정자라 했는데, 동쪽에 정자나무가 있어서 동정자로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1965년 남산리에서 동정자가 2구로 분구되었다. 주요 문화 유적 및 유물로 보물 제506담양 남산리 오층석탑이 있다.

6)담주리 담주(潭州)마을

담주마을은 본래 담양군 서변면의 북성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외천리, 마내리, 마외리, 천변리의 각 일부를 동변면의 북우리와 합하여 담양의 옛 이름을 따서 담주라 불러왔고 담양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담주는 담양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담주현의 역사성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담주마을로 이름 하였다 한다. 북쪽으로 금성천이 활처럼 이 마을을 감싸며 흐르고 있다. 남서쪽으로 너른 들이 전개되어 있으며 북쪽 내 건너로는 야트막한 산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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