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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세상에 이런 일이수진스님(용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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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3  11: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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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 국호 선택 화령(和寧) or 조선(朝鮮)

최근 담양군수 출마에 뜻을 둔  모 도의원의 역사는 흐른다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와서 조선 역사를 다시한번 상기해 보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나로서는 조선 역사와 그 중에 나타난 불교 역사 및 설화를 통하여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제목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그 중에 이성계가 정도전과 역성혁명(易姓革命:고려왕실 왕씨를 조선 이씨 왕조로 한 혁명)으로 성공하고 10년이 가깝도록 국호를 명나라에 구걸하는 장면이 생각나 현재나 과거나 우리나라는 왜 대국의 입김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생각을 적어본다.

1392년 고려국을 멸망시키고 명나라에 국호를 택하여 달라 사신을 보내자 이성계는 이신벌왕(以臣伐王:신하가 고려국왕을 쳐서 왕이 됨)이라는 명목아래 제2의 함흥차사를 겪었다. 태조 이성계 당시의 함흥차사처럼 많은 신하를 명나라에 보내어 국호를 화령(和寧) 또는 조선(朝鮮)중 하나를 결택하여 줄 것을 요청했으나 가는 신하마다 함흥차사가 되어 버렸다.

태조, 정종을 지나 10여년이 가까워지는 태종 때에 다시 사신을 보내는데 계략을 썼다. 명 황제와 친분이 있고 신의가 있는 당시의 정승(현 국무총리격) 조반(朝泮)을 명()하여 보내기로 했다. 조 정승은 가봐야 나도 별 수가 있겠느냐 거절하려 했으나 왕명이니 안갈 수 없어 가기는 가는데 여러 수행원을 대동하여 그래도 부처님께나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빌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나무 미륵보살(彌勒菩薩 불교에 미래의 구세주: 은진미륵보살 고려 초창기 조성, 우리 토속적 신앙의 돌장승을 닮았다하여 근래에 문화재청에서 50여년전 지정된 보물이 국보로 승격되기도한 부처님 명호)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출발했다.

한양을 출발하여 황해도 서흥군 서흥면 주막집에 도착했는데 피곤도 하니 잠에 곯아 떨어져야 하는데도 잠은 잘 안오고 밤 늦도록 뒤척이다 비몽사몽간의 꿈속에서 가사와 장삼을 입은 사미승(동자승:나이 어린스님) 3인이 나타나 정승님, 무슨 고민이 있으셔서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하니, 대답 왈 너희 어린 동자승이 어른의 뜻을 어떻게 알아 묻느냐.”했다. 이에 정승님, 저희들은 정승님의 뜻을 환히 압니다. 그런데 우리의 원()이 있으니 원을 들어 주신다면 국호를 승인받아 무사히 명에 다녀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동자승들의 바람이 무엇인고 하니 이 주막에서 뒷산으로 5(2키로)쯤 들어가면 미륵대불 좌우에 협시불까지 삼존불이 있는데 일찍이 오랜 세월에 폐사가 되어 주변 논밭이 민간인의 소유가 되어 농사를 짓느라고 가축분뇨하며 인분냄새가 진동하여 부처님께서 조금 불편해 하십니다. 그러니 황해도 대감(현 도지사격)에게 명하여 주변의 전답을 매수하고 부처님 보호 법당을 지으라고 명령하시고 중국 연경으로 가신다면 정승의 소원은 꼭 이루어 지십니다.”하고 꿈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마음에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다시 동자승이 나타나 재촉한다. 그래도 쓸데없는 꿈이다 괘념치 않았는데 다시 나타나 말하기를 대감이시어 왜 그리 멍청하십니까? 아무리 어린 동자승 말일지라도 듣을 것은 듣으셔야지 생명이 왔다갔다 할판에 동자승의 말이라고 듣지 않는다면 크게 후회할 것이니 잘 알아서 하십시오.”하고 공갈을 때렸다.

조 정승은 세 번씩이나 현몽한 것이 이상해서 아침에 주인 주모를 불러 묻되 이 서흥 주막 뒤로 오리쯤 올라가면 절터가 있고 삼존 석불(돌부처)이 계시느냐?” 하였더니, 주막주인이 네 있습니다. 고구려 때에 지어진 절인데 폐사되어 지금도 돌기둥 및 주춧돌이 있으며 석불 삼존이 계십니다.”하고 대답했다.

조 정승은 곧 황해도 감사에게 명하니 도백은 곧바로 고을 7개 군수에게 명령하여 사찰 중창불사에 들어가게 하였다. 조 정승은 그렇게 명령만 남기고 명나라로 떠났다. 여러날 만에 연경 황실에 도착하여 황제를 배알하며 폐백을 바치고 예를 다하여 국호를 간택해 달라고 하였더니 당신과는 그전부터 이 곳을 자주 왕래한 일이 많아서 친분은 두터우나 공과 사를 혼동할 수는 없으니 그런 말일랑 꺼내지도 마시오. 이성계가 고려조 공민왕의 신하로 있다가 이신벌군(以臣伐君:신하로써 임금을 죽임)한 역적인데 국호가 무슨 국호란 말이요. 다시는 이런 수작을 부리지 말라.”며 형리를 불러서 목을 베어 버리라고 명령했다.

조 정승을 형장으로 끌고 가서 목을 교수대에 매달아 놓고 청룡도를 빼서 목을 베는데 형리가 맑은 정신으로는 번쩍이는 칼을 휘두를 수가 없다 하니 술을 먹여 술기운에 힘 있는대로 목을 치게 했다. 한참 칼춤을 추고 정신이 몽롱한 김에 항우 장사 힘으로 청룡도를 내리쳤는데 쩡그렁하는 소리와 함께 형리도 그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조 정승의 목은 멀쩡한채 청룡도의 그 강한 칼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이 광경을 본 형장이 황제에게 보고하니 황제가 황룡도를 골라 다시 쳐라 명하니 역시 두동강이 나버리고 세 번째도 마찬가지 였다. 이 사유를 황제에게 아뢰었더니 황제가 그때서야 사실을 들어보고 평상시의 용안(임금의 얼굴)으로 돌아와 조 정승을 대하며

이성계가 왕이 될 천운을 탄 것 같으니 화령국은 이성계의 고향이니 사용할 수 없고 조선국으로 해라.”해서 국호를 받아 가지고 의기양양하며 조선국으로 도착하니 환영나온 인파가 대단하였다.

다시 갔던 길로 되돌아와 지난번 서흥 주막집에 들러 꿈꾸었던 곳을 찾아가자니 그 주변에 사람이 인산인해가 되다시피 하였다. 마침 도백도 나와 있어 왠 사람이 이리 많으냐고 연유를 물은즉 조 정승께서 저에게 주막집 뒷산에 계시는 삼존불을 보호하는 절을 복원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승님의 명령이라 바로 복원을 시작하여 지금 낙성식을 거행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입니다.”했다.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가 대국에 가서 국호를 임명받아 수행원과 같이 왔으니 황해도내 대잔치인 낙성식 행사와 경사가 겹치게 되었으니 조선국의 대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점안 낙성식을 마치고 조 정승도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싶어 부처님을 쳐다보니 이게 또 웬 일인가? 삼존불 부처님의 목에 벌겋게 핏자국과 칼자국이 세개씩 나 있는 것이 아닌가. 정승이 깜짝 놀라 절을 하면서 통곡을 하였다. “! 이것은 필히 세 동자승이 선몽한 대로 삼존불 법당을 지어 드렸더니 명나라에 들어가 칼을 세 번 맞았어도 무사한 것은 이런 부처님의 감응 신통이 있었구나.” 이를 뒤늦게 깨닫고 도백이 절 이름을 무엇이라고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이것은 내가 사명(寺名:절이름)을 섣불리 지을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태종 임금님과 전후사정을 말하여 사명을 지어 통보하겠노라하고 한양으로 돌아와 태종과 의논한 결과 태종 임금도 크게 감동되어 나라이름도 받게 되고 조 정승의 목숨까지 이어주신 부처님의 절이니 이을속(), 목숨명(), 속명사(續命寺:목숨을 이어준 부처님 사찰이란 뜻)라 사명하였다. 이상은 황해도 서흥군 속명사 사적기의 내용이다. 속히 남북이 통일되어 속명사에 가보고 싶다.

당시에 명나라의 요청에 조공을 바치고 대국의 눈치를 보았으니 지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대국이 약소국에 정치, 외교, 경제, 각 분야에 갑을관계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속히 강병부국이 되어 세계열강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신적, 물질적 선도국이 되길 기원해 본다.

나무 미륵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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