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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특집/김광철 前 재경광주·전남향우회장숱한 사업적 실패와 도전 거치며 한국 물류창고보관업 개척자로 우뚝
김관석 기자  |  wdy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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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6  1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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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술년 새해를 맞아 최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본지 정용택 국장과 대담 중인 김광철 전 재경담양군향우회장

재경담양향우회장 7년 역임, 15만 향우 결속 및 고향발전 기여 평가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은 2018년 무술년 새해에 즈음 지역발전에 헌신한 원로를 만나다. 어떻게 지내십니까기획특집 코너를 마련했다그 두 번째 순서로 금성면 출신으로 숱한 사업적 실패와 도전을 거치며 한국 물류창고보관업의 개척자로서 우뚝 선 김광철(74) 전 재경담양향우회장 및 재경광주·전남향우회장을 만났다./편집자 주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바로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입니다. 제 어렸을적 기억으로는 담양은 예로부터 상업이 발달해 담양산 한우와 대나무 죽제품 등이 전국적으로 유통되며 한 때는 서울, 개성은 물론 국경을 넘어 만주까지 소문난 윤택한 고장이었습니다.”

김광철(金光哲) 전 재경 광주전남향우회장은 지난 1944년 금성면에서 62녀 중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담양동초교, 광주 동중, 서울 한양고, 동국대를 졸업했다. 이후 40대 들어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부친이 양조장과 도정공장을 할 만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4세 때 일찌감치 광주로 나가 성장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시 담양 집으로 돌아와 초등학교를 마쳤다. 이후 다시 광주서울로 진학했다.

4명의 서울대 출신을 배출한 수재 집안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공부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청소년기 한때 반항기를 거치기도 했고, 고향에서 목장을 경영하다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는 등 숱한 부침을 겪었다.실제로 그는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내려와 대규모 목장을 경영하다 서울로 다시 상경, 형님이 운영하는 고무공장 중간간부로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쌓았다.

그러던 1978년 부천에 고무공장을 설립, 경영했으나 환경에 대한 각종 규제가 강화되면서 사업을 접게 된다. 강성 노조의 탄생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던 1989년초 기흥단지에 수도권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물류창고보관업을 시작, 사업적으로 성공한다. 국내 물류창고업 개척자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던 중 1999년 재경담양군향우회장을 맡아 향우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향우와 고향 발전에 매진했다.

그는 재경담양군향우회장을 7년간 역임하면서 친화력과 추진력은 물론 소통과 화합으로 15만 향우 결속을 비롯 담양군향우회 활성화와 담양군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가 재경담양군향우회장에 재임하는 동안 인적네트워크 등 활용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면서 노력한 결과 향우회 규모가 크게 확대되어 전남 도내 향우회 가운데 가장 잘 나가는 향우회로 바꾸어 놓았다.

실제로 광주전남향우회로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1500명의 담양향우들이 모여 정기총회를 열 정도로 향우회 성장에 발판을 놓았다. 김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향우들의 결속에도 꾸준히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향우발전에 힘을 보태 왔다.

이후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청년회를 조직하며 서울지역 향우 발전에 기여한 그는 수석부회장 등을 거쳐 지난 2012년 제32대 재경 광주·전남향우회를 총괄하는 향우회장 겸 재경 광주전남향우장학회 이사장에 취임, 수도권 500만 향우들을 대표했다.

고향 사람들이 처음 상경했을 때는 배경이 없어 요식업이나 숙박업, 부동산 분야에 종사하면서 부를 키웠다. 지금은 재벌에 가까울 정도로 성공한 향우들도 상당히 많다.그런데 가장 큰 고민거리는 2세들에게 애향심을 유지시키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2세들의 관심이 줄어들어 언젠가는 향우회가 아예 없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그는 재임 당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수도권에 거주하는 향우 자제를 대상으로 장학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아무리 세상이 글로벌 시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피를 나눈 부모형제요, 둘째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며, 셋째는 국적은 바꿔도 민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향 떠난 사람은 항상 이 세가지를 가슴에 품고 살지요.”라면서 애틋한 고향사랑을 내비쳤다.

한편 김 회장의 큰 형님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오늘날 금호석유화학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김광웅 씨이고, 둘째 형님은 서울대 법대를 거쳐 고등고시에 합격, 상공부 차관보를 했던 김광영 씨, 셋째 형님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김광함(작고) 씨다. 남동생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를 하고 있다. 누나와 여동생도 숙대와 이대를 졸업했다. 김 회장은 현재 ()금강(경기도 용인 소재)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김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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