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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담양지명 천년 기획/④고서면 교산리(교촌·하북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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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4  17: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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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면 교산리 교촌마을(창평향교) 입구

2018년은 담양군이 담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가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관내 12개 읍면 및 해당 읍면에 속한 마을 유래에 대해 연재한다./편집자 주

교촌(校村)마을은 조선 초에 창평향교가 세워지고 창평 고을 유림들에 의해 문화의 중심지가 되면서 향교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고읍리 덕촌마을 향교골에 있었으나 너무 협소하여 이곳으로 옮겼다.

오씨가 개척하였다는 설도 전하고 있으며, 고종31년(1894) 동학혁명이 일어날 무렵 장흥고씨 제선과 동주가 입주하였다. 오랫동안 고씨들이 향교 터를 누르고 살았으나 이후 도시로 이주하면서 수가 많이 줄었다.

이 마을 동쪽에 후산마을이 있고 서쪽에는 성산마을이 있다. 원래는 현내면이었는데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금은 고서면 교산리이다. 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입구는 옛날부터 하마징이(河馬廳)라 불러왔다. 입구에 하마비가 있어서 향교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 존중하는 마음으로 걸어야 했는데 이는 대성전에 왔기 때문이다. 또한 음력 2월 상정과 8월 상정에 향교제를 지냈다.

교산2리 하북산(下北山)마을은 개척년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전주이씨가 입주한 근거가 있으며, 마을 이름은 창평현이 고읍리에 속할 때 마을이 하북에 위치하여 하북산, 혹은 하북촌으로 불렀다고 전해온다.

또한 장승이 많이 있었다고 해서 일명 ‘장성물’이라고도 불렸다. 예전에 현청을 중심으로 액을 막기 위해 강정모퉁이에 여러개의 장승을 세워 ‘장승무리’라 불렀던 것이 ‘장성물’로 지명화되었다고 한다. 본래는 창평현 고지산면에 속했으나 1914년 교산리 하북산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농사가 주업인 이 마을에서 하북산제는 조선 말엽부터 영농에 큰 도움을 주는 수리시설이었으며 마을 동편의 하북산에 단이 있어 가뭄에는 기우제를 지냈다.

마을 앞에 몇 호의 새터가 있었는데, 1978년 정부가 부락구조 개선사업으로 동운리 비오등마을 18호를 이주시켜 큰 마을이 되었다.

‘비오등(비오등)’마을은 장성물 서남쪽에 있던 마을로 ‘비앗등’으로 불리었으며 ‘비탈진 등성이’의 뜻을 갖는다. 또한 지형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비오등으로 불렀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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