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경 학인들과 함께 해인사 일주문을 걷고 있는 명선스님(가운데). 스님의 왼쪽이 법정스님이다.

▲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명선스님

담양 보광사에서 출가, 해인사 등지서 15안거 성만
폐사직전 여수 흥국사 대가람 일신 32년째 주석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흥국사(興國寺)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녹아있는, 여수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며 시민들의 안식처다. 담양 태생으로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명선(明煽)스님이 이곳 흥국사에서 32년 째 주석중이다./편집자 주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했다는 영취산(靈鷲山). 4월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영취산은 여수 시민들의 휴식처며 자랑이다. 영취산은 흥국사를 품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나라와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고자 결성한 정혜결사 도량이다. ‘절이 잘되면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되면 절도 잘 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호국도량이다. 임진왜란 때 좌수사 이순신을 도와 700여명의 승병이 활동하던 본거지였으며 이를 빌미삼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했으니 보조국사의 예언이 맞은 셈이다.

대웅전 뒤 해동선관(海東仙觀)이 명선스님 주석처다. 원래 이름은 첨성각(瞻星閣) 이라고 한다. ‘별을 본다’ 했으니 깨달음의 자리다.

명선스님은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주지에 이어 1985년 여수 흥국사 주지로 부임해 가람의 면모를 일신한 주인공으로 종단의 원로의원이다. 잘 알려진 명선(明煽)은 법명, 법호는 금성(金城)이다.

스님은 6.25한국전쟁 중 평소 형 동생 같이 지내던 마을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되어 죽고 죽이는 참혹한 현실을 보며 고뇌하다가 외삼촌인 도광(導光)스님을 따라 1952년 담양 보광사로 출가했다.

은사는 금산 태고사에 주석 중 지난 2011년 세수 102세로 타계한 도천(道川)스님이다. 명선스님 역시 여든이 넘은 종단의 원로지만 출가당시부터 늘 ’중노릇 잘하자’ ‘출가본분 잃지 말고 갈 때까지 열심히 잘하자’며 조용히 말씀하던 은사스님의 당부대로 살고 있다.

“아주 순수하고 승려생활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는 분입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분 없을 겁니다. 평생 (수행자로서) 일만 하시며 다른 말씀은 없으니 말입니다.”

시절 인연일까? 대다수 출가자가 그랬지만 출가수행자로서 명선스님의 길 또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검은 것이 희다고 해도 예하고 복종하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교육이 엄한 때였다. 염불은 앉아서 해본 기억이 없다. 하루 3줄씩 적어가지고 다니며 외우라는 도광스님의 지시대로 ’천수경‘을 외우며 행자생활을 했다.

“행자생활이 굉장히 어려웠지요. 일을 쉴 새 없이 하니 잠은 4시간도 못 자요. 세수하다 코를 건드려 세숫물을 벌겋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반찬을 썰다 손톱이 떨어져 나가고 밥하다 부뚜막에 머리를 부딪치기 일쑤였다. 하루는 피곤에 지쳐 지대방 영단 앞에서 잠꼬대를 하는 자신을 보살들이 간질에 걸렸다고 소란을 피워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스님은 지금도 이마에 돌출된 부분을 만지며 어려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개인적인 이유를 댄다는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 시키면 무엇이든 복종하고 그대로 이행했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스님이 있기까지 기초가 됐다고 생각한다.

“입차문래 막존지혜(入此門來 莫存知慧)’라, 이 문에 들어 올 때는 알음알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잖아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면 마음은 흰 천과 같습니다. 흰 천에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괴색인데 그것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사람을 취하면 나쁜 사람과는 적이 되어 버리고, 나쁜 사람을 취하면 좋은 사람은 적이 되어 버려요. 그러니 좋고 나쁜 것을 다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해요. 유(有)도 포용하고 무(無)도 포용하는 것이 중도(中道)인데, 그 중도 속에 모든 불법이 있고 선(禪)이 있습니다. 공부할 때는 날카롭게 하는 것이지만 하나도 버릴 것이 없고 취할 것이 없어요.”

명선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가르침은 화합이다. 스님은 “화합은 불교집안의 첫 번째 덕목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걸림이 없을 때 진정 화합의 길이 열린다.”고 설법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게 돼 모든 일이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부정적으로 대하면 막히고 혼란스럽게 된다.” 스님은 여러 큰 스님들을 모시면서 그 분들의 걸림없는 경지와 그로인해 활짝 열리는 대중화합의 장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다.
스님은 “모든 사중 소유물을 정성스럽게 가꾸게 되면 그 공이 고스란히 본인에게 돌아간다. 자발적으로 공심을 내면 그 소문이 나서 여러 대중들이 서로 함께 공부하려고 자리를 내지만 모나고 시비만 일삼으면 모두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거듭 “세상사 일체는 인연 따라 생겼다 흩어지는 인연법을 깨달아 늘 좋은 생각과 편안한 마음으로 순리를 따르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마음은 경계와 차별이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차별심을 내어 힘들어하고 갈등한다. 이 이치를 알면 저절로 편안한 마음을 내게 돼 공부도 잘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관석 기자

# 명선스님은
193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스님은 1952년 도천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출가 사찰인 담양 보광사는 명선스님의 속가 외할아버지가 창건했다. 화엄사를 일으킨 도광스님이 속가 외삼촌이다. 명선스님은 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출가했다.
도광스님과 도천스님은 금강산 마하연에서 함께 공부했던 둘도 없는 도반이었다. 명선스님은 두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공양주 부목에다 채공까지 겸하며 공부했다.
1953년 광주 동광사에서 전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5년 목포 정혜원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보살계를, 1958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1959년 4월까지 해인사 강원에서 법정스님 등과 함께 공부하며 신심을 키웠다. 이 때 선방에서 ‘이 뭐꼬’ 화두를 들고 정진했다. 스님은 해인사 퇴설당 선원을 비롯 오대산 상원사, 담양 보광사, 부산 범어사, 통도사, 묘관음사, 선산 도리사, 해인사 백련암, 북한산 상운사 등지에서 15안거를 성만했다. 10여년간 참선과 경전을 통해 탁마했던 것이다.
 화엄사에서 총무국장으로 가람을 일으키는데 큰 기여를 한 스님은 1975년부터 1980년까지 화엄사 주지를 맡아 사찰을 보수하고 복지불사에 나섰다. 1985년 폐사 직전의 흥국사를 맡아 25채의 대가람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흥국사 문화재 보존을 위해 박물관을 짓고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 때부터 실시하다 일제에 의해 중단됐던 수륙대재를 복원하기도 했다. 문수종합사회복지관 등을 운영하며 지역 복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조계종 중앙종회 3대부터 9대까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원로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사진(2) 설명-1956년경 학인들과 함께 해인사 일주문을 걷고 있는 명선스님(가운데). 스님의 왼쪽이 법정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