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가을이 되면 또다시 고급실업자들의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필자가 공업고등학교에 진할 때에는 자격증을 취득하면 상당한 액수의 장학금과 함께 취업이 완전 보장되고 혜택이 참 많았을 때가 있었다.
무더위에 지친 토요일 오후 공업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다니던 한 친구가 불쑥 나타났다. 대학을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친구, 그가 언젠가부터 연락이 두절되고 난 후 정말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민을 가서 자동차 정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기계공학 출신이라 일하는 대는 오히려 부담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대학 출신에 번듯한 직장을 가진 화이트칼라들이 자동차정비 청소 세탁업 등 블루칼라 일에 종사하는 경우는 너무 흔한 일이어서 큰 망설임이나 갈등 없이 우리 기준으로 이른바 3D 업종에 뛰어들 수 있고 블루칼라 일을 전혀 개의치 않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힘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블루칼라의 일에서도 경제적 보상 역시 넥타이 매고 일하는 어지간한 직장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 육성과 함께 기능인 우대정책을 오랫동안 중점적인 국가시책으로 펼쳐온 바 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사회적 신분의식이 많이 희석된 것도 그 덕분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기능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사라지고 다시 학벌우선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1989년 국민에게 기능습득을 장려하고 기능의 향상을 촉진하는 동시에 기능인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맡은 분야에 정진하도록 하며, 기능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명장제도의 도입과 함께 이른바 기능장려법을 제정하였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첨단자동화 설비가 완비된 마당에 기능 인력에 대한 수요나 대접 역시 옛날과 똑같을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필자가 공과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관계로 여러 분야의 산업현장에서 일 하는 분들을 각각 만날 때마다 이들로부터 들은 걱정은 한결같았다.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직원들 대부분이 40대 이상이라 지금이야 그럭저럭 꾸려 나간다 해도 앞으로 5년 이상이 지나면 심각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한탄이었다. 그들은 이대로 가면 사업체 문을 닫거나 모두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각한 한편에서는 청년실업이 너무 높다는 걱정이 국가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통계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중소제조업 생산현장에서는 100명당 평균 4명 꼴로 일할 사람이 부족한 반면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층 유휴 인력은 30여만 명을 오르내린다. 이 말을 종합하여 보면 구인업체에서는 기능인력을 찾고 있으며 구직자는 구인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 소유자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전체적 인적자원관리정책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일상생활에서 기술자라고 말하는 기능인에 대한 푸대접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기능인력의 푸대접에 대한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체육올림픽과 더불어 2년 만에 열리는 국제 기능올림픽이 있다. 우리나라는 77년부터 91년까지 기능올림픽 9연패를 비롯하여 총 13차례 우승한 기록이 있으나 이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의 성적의 우열은 각국의 제조기술과 직결됨과 동시에 각국의 국제적인 무역상품의 질과 실용도를 척도하는 의의를 갖게되었다. 따라서 기능인에 대해서 국가에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체육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들은 국민적 영웅대접과 함께 엄청난 액수의 연금 그리고 지도자로서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으며 병역혜택까지 보너스로 챙길 수 있다. 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도 서울 시내를 카퍼레이드 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건이 사뭇 다르다. 금메달리스트의 경우 상금 일천이백만원, 동탑산업훈장의 및 산업기사 자격증이 교부 될 뿐 이후로는 관리가 되지 않는다. 연금도 아닌 기능 장려금을 지급한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박 모(제34회 국제기능올림픽 참가)씨는 쥐꼬리만 한 기능장려금을 신청하여 수령하기 위해서는 관련 직종에 근무하면서 매년 신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한 병역문제에 대해서도 “국위선양” 관련 항목이 아닌 “업체근무 종사자”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면 동종업종이 아니므로 기능장려금 및 병역혜택 또한 받지 못하며 대학에 진학해야만 지도자과정을 밟을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역설을 토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능을 자랑하는 기능올림픽 국가대표선수에 대한 대접이 이 정도이니 일반적인 기능인들의 서러움은 오직 하겠는가?
현재 우리나라의 기능인력수급은 초급기능인의 요람인 공업고등학교와 중급기능인을 배출하는 기능대학 그리고 직업전환 등을 목적으로 단기간 교육하는 직업학교 등이 있다. 학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기능대학의 경우 10%정도의 진학률을 보이며, 공업고등학교의 진학률이 80% 정도 취업률은 20% 정도이다. 이처럼 높은 대학 진학율은 저 출산 정책의 후유증이며 대학을 고급 실업자 양성소로 만들어버린 계기가 되었다. 병역법개정으로 상근 및 공익근무요원은 증가한 반면 산업기능인력은 엄청난 축소결과를 가져왔다. 진학률과 기능인력수급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산업체 근무 기능인에게 동일계 전공에 한하여 이부대학의 특례 입학기회확대, 일반직에 준하는 기능직 공무원의 채용기회 확대 등의 정책으로 대학의 질적 교육향상과 아울러 기능인력을 산업현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독일식 제도적 장치도 고려해 볼만하다.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격상시키고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킨 까닭은 지속발전 가능한 산업의 육성과 그에 필요한 인력양성이라는 국가적 명제를 대체할 인력관리 정책을 제시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기능인력의 현주소는 우리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듯이 비정규직 노동자 및 일용직 근로자로 만족하고 있으며 언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위치에 서있다. 지난 정부의 구조조정 때도 마찬가지였다. 힘없는 기능직 공무원들이 대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건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기능인력의 뒷받침 없이는 무용지물인 것이다. 정부는 기능장려법의 목적에 걸맞게 질적 수준이 향상된 기능인의 배출과 아울러 기능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입시관리에만 매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래를 이끌어 공업발전을 이룩할 산업발전의 역군인 기능인력의 문제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도 좋을 정도가 됐다면 정부는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고 그것을 대신해도 안심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청사진을 제시해야한다. 그때쯤이면 굳이 이민을 가지 않아도 어떤 직업이든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청사진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