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전투를 하다보면 적이 어떻게 내 위치를 알아내고 있는지 아무리 도망쳐도 포탄이 나를 따라 다니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아무리 고가의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적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래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며 그렇게 적을 훤히 들여다보게 되면 전투는 아주 쉽게 이길 수 있다.
요즘 파주와 백령도, 삼척에서 발견된 소형 무인항공기를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무인비행기의 주 사용처는 바로 적을 알아내기 위한 정찰 수단이다. 북한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된 이 무인비행기를 두고 언론은 대단한 뉴스거리를 만난 듯 매일 집중적으로 국가 군사비밀에 해당하는 사항까지 보도하고 있다. 국민들의 여론도 우리나라 안보에 구멍이 뚫렸고 미리 탐지하지 못한 국방부의 안보 대비태세를 걱정하고 관련자들을 문책하라고 하고 있다. 그야말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200만원도 안 되는 값싼 무인비행기 하나 떨어뜨리고 무인비행기가 수집해야할 임무 이상의 고가치 정보와 우리나라의 군사대비태세의 허점까지,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정보를 안방에서 고스란히 수집하고 국방 핵심 관련자들을 파멸시키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일부러 무인비행기를 떨어뜨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언론이야 특종 보도를 노리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런 특종을 놓칠 수 없다. 국회는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여야를 떠나 북한 무인항공기(UAV)의 우리 영공 침범 사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대공 방어망의 허점을 추궁했다. 여당은 소형 무인기를 탐지할 수 없는 우리 군의 탐지 시스템의 허점에 초점을 맞췄지만, 야당 의원들은 보수정권의 안보 무능을 질타하고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다. 그래서 여당은 무인비행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를 구입하고 저공 저속 무인비행기에 대한 확고한 탐지 격추 체계를 주문한 반면에, 야당은 막대한 국방예산을 사용하면서도 하늘에 구멍이 뚫린 안보태세를 지적하고 국방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오래 동안 군에서 재직했기 때문에 여야 모두의 의견과 언론과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국방부의 안일한 대비태세와, 이 시간 땅과 바다와 하늘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발견 못한 아쉬운 마음을 갖기도 한다. 옛날에는 우리 군인들의 포상과 처벌 권을 북한이 쥐고 있다고 얘기했다. 예를 들어 무장공비를 사살 생포하는 경우에는 무공훈장을 받고 승승장구하지만 무장공비 침투를 막지 못한 부대의 책임자는 처벌을 받아 군 생활을 힘들게 보내야 한다. 바다를 지키는 해군도 그렇고 하늘을 지키는 공군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인사권을 가진 북한이 지금 국방부 내에 손볼 사람이 있는 모양이라고 농담 삼아 얘기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국방부는 엄격한 내부 조사와 분석 과정을 거칠 것이다. 또 많은 작전 관계관들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그 많은 국방예산을 쓰면서도 안보대비태세 하나 갖추지 못했다고 국방부는 여론의 질책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북한의 예상치 못한 도발을 막아내는 데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지만 문제는 임기응변식 대비태세에도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국민들의 빗발치는 대책 요구에 국방부는 바다 밑에 잠수함 탐지 센서를 까는 궁여지책을 내놓았다. 그 넓은 바다를 몇 개의 센서로 잡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2011년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을 때는 신형 대 포병 레이더를 고가에 구입했지만 그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싼 예산을 투입한다 해도 사방이 열려있는 우리 영토 구석구석을 완전하게 감시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또 발견한다 해도 이 무인비행기를 사전에 격추시킬 대책이 명확히 있는 것도 아니다. 위협을 주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비행체는 지금의 대공방어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포착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무인비행기 사건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는 것이다. 이번 북한이 보낸 무인비행기의 탐지 수준은 굳이 무인비행기를 보내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나 고정 간첩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 북한의 위협은 장거리 포병과 핵, 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무기와 특수전 부대다. 값싼 무인비행기 때문에 북한의 의도대로 안보의 중심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집행 우선순위를 바꿔가면서 임기응변식으로 아까운 국방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집행해서도 안 된다. 대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이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게 국민의 역할이다.(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