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읍에서 광주로 가는 군내버스는 고속도로, 4차선 국도, 2차선 지방도로를 이용한다. 얼마 전 광주에서 담양으로 가는 중간 길목에서 내리기 위해 322번 버스를 타 보았다. 가는 길 내내 비포장 구간은 없었지만 구부러진 그 길 좌우에 아름드리 미루나무가 보이고 노란 미루나무 잎이 가을을 만들어 주는 추억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 옛날 좁은 신작로를 버스는 달달거리며 먼지를 날리며 자갈길을 달렸다.

멀리서 연동리 앞을 버스가 커브를 돌며 나타날 때 죽음 힘을 다해 달리면 쌍교에서 그 버스를 탈 정도로 버스는 느렸다. 그것도 성냥 곽에 성냥 담듯 승객을 차장이 밀고 운전수는 몇 번 차를 좌우로 출렁거려 쓸어 담듯 태웠다.

1961년도 유엔은 대한민국의 경제수준을 아프리카 가나공화국과 같은 서열에 올렸다. 지금의 우리 경제 수준은 아프리카 전체 국민소득을 합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필자는 어렸을 적 아련한 추억 속에서 혁명공약 5개항을 외우며 학교를 다녔다. 형식과 구호에 그친 반공 태세 재정비, 우방과 유대로 국제적 고립 탈피, 사회적 부패와 정치적인 구약 일소, 경제 재건으로 민생고 해결, 북한을 뒤엎을 국력을 배양하여 국토의 통일이었다.

당시 지도자는 흐트러지고 절망에 빠져있는 민심을 강력하게 모아 희망으로 치달렸다.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탄압을 받았다고 하나 가난에 찌든 대다수 국민들은 그런 것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그저 사회질서를 잡은 경찰이 무섭고 막걸리를 단속하는 감독관과 나무를 관리하는 산림원이 무서웠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산이 수풀로 무성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여 막걸리는 빚어 먹지 않아도 되고 우는 아이를 달래던 경찰이라는 이름은 국민에게 얻어맞는 공권력으로 전락했다. 과거는 쉽게 잊어버린다고 했던가. 그 당시 배고픈 시절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잊어버리고 이 나라는 다시 북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세력들이 등장하고 사회적 부패와 정치적인 싸움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것은 국가를 이끌고 나갈 勢의 문제다. 국민들을 건전하게 이끌어 가는 勢, 흐트러지지 않게 국민들의 마음을 勢로 결집해 만들어 가는 정치력, 그 勢로 창조 경제와 문화 융성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 발휘되도록 힘을 보태야 하는 것이다. 3만 달러를 향해 험난한 항해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경제의 험난한 파도와 북한과 일본의 위협을 받으며 항해하는 어려운 배를 우리끼리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

독일의 에르빈 롬멜, 그를 연합군 측에서는 사막의 여우라 불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지역의 최악의 독일군을 지휘하는 불운한 장군이었다. 병력도 한참 부족하고 보급품은 형편없었다. 그렇지만 부족한 병력과 보급 상태의 북아프리카 독일군을 지휘하여 연합군을 밀어냈다. 어떻게 승리가 가능했을까. 히틀러는 롬멜에게 방어만 하도록 임무를 주었고 연합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롬멜은 예상을 깨고 기습적인 공격으로 연합군을 혼란에 빠트렸고 이 혼란을 놓치지 않고 정신없이 연합군을 몰아 붙였다. 방어부대로 알려졌던 부대가 기습공격으로 치고 나오고 그것도 어느 곳을 공격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방팔방에서 밀려드는 독일군에게 우왕좌왕하던 연합군은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병력도 우세하고 보급도 충분한 연합군은 롬멜만 나타나면 도망하기 바빴다.

손자는 이것을 계곡물을 가두어 세를 만드는 법이라고 했다. 亂生於治 怯生於勇 弱生於强 治亂數也 勇怯 勢也 强弱 形也. 어지럽게 보이는 것은 질서 속에서 나오고, 겁낸 듯 한 것도 용기 속에서 나오고, 약한 듯 한 것도 강함에서 나온다. 객관적인 전력이 세를 만드는 시작이지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勢는 마음에 있다고 손자는 勢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이다.
혼란과 질서, 용맹과 공포, 강과 약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數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면 질서 있는 대열이 무너지고 勢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면 용맹한 병사도 겁쟁이가 된다. 객관적 전력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면 강하다가도 약해진다. 다시 말하면 강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하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시 의병장 곽재우(1552~1617)의 승리도 롬멜과 같은 勢다. 1592년 경북 의령에서 전국 최초로 불과 60여명의 규모의 의병으로 봉기한 곽재우는 10명의 붉은 옷을 입은 홍의장군을 이용하여 적을 교란하였다. 적을 교란하면서 승리를 거둔 홍의장군 작전은 곽재우가 도술을 부린다는 소문으로 재 확산되면서 아군의 사기가 고조되는 계기를 가져왔다. 이기는 군대는 사람이 모이는 법이다. 60명의 군대는 얼마 안가서 2,500명의 군대로 커졌다. 부대가 커짐에 따라 이제 다양한 전술을 쓰게 되고 곽재우의 전설은 전설을 낳고 승리는 승리를 낳게 된다. 계속되는 승리와 함께 부대는 계속 커지고 승률도 높아진 곽재우의 의병부대를 보면 승리는 사람을 모으고 사람은 승리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勢의 상승작용이다. 아군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곽재우, 적에게 공포를 심어준 롬멜을 보면 勢는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가을걷이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농부의 勢는 멈추지 않는다. 한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고 그 가을은 겨울을 열고 있다. 황금 빛 들녘은 하얀 비닐하우스로 덮였다. 계절은 가고 있지만 농부들의 勢는 계절을 잊고 있다. 농부들이 만들어 놓은 勢가 거침없이 이 겨울을 밀어붙이도록 행정은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