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배 한국국방연구원 원장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1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68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8월 31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김충배 한국국방연구원 원장이 '상생과 배려의 리더십-군 경력 40년 체험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하인스의 '터치다운'은 신뢰의 열매"

육군사관학교 졸업, 3군사령부 작전처 교육과장, 5군단 작전참모,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육군사관학교 참모장, 52사단장, 1군 지휘부 참모장, 6군단장, 국방부 정보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김충배 한국국방연구원 원장의 이력서에선 땀 냄새가 물씬 풍긴다. 김 원장 스스로의 표현대로 "야전에서 젊은 장병들과 부딪치고 호흡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방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목이 말라 부하에게 물을 떠오도록 지시하면서 느꼈던 교훈이 있다. 장교 임관 초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물 가져와!'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했다. 그러나 헌신과 배려의 리더십으로 사고방식을 바꾼 뒤에는 '물 좀 떠다 주지 않겠나?'라고 표현을 부드럽게 바꿨다. 부하의 복종이라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긴 했지만, 나는 이 두 표현이 가져올 최종 결과는 천양지차라고 믿는다. 전쟁에서도 무기나 병력 같은 유형의 전력보다 장병의 사기나 의지 같은 무형의 전력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공자가 왜 '무신불위(無信不爲)'를 강조했고, 예수가 왜 '대접받기 원하면 먼저 대접하라'고 했는지 깨달아야 한다."

김 원장은 '헌신과 배려의 리더십'이 개인은 물론이고 조국의 행복과 운명까지 좌우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과 문제가 리더십의 3박자가 입체적으로 고장난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리더, 리더에게 쓴 소리를 못하는 벙어리 참모, 리더의 독단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의 부재. 이것이 바로 고장난 리더십 3박자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그런 상황에선 리더가 독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그런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생존을 지속하기 어렵게 된다. 성공한 세계 30대 CEO의 공통점을 추출해 보니, 그들이 하나 같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었다는 흥미로운 보고서도 있었다. 군대에서도 지휘관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리더십이 있는데, 나는 그 리더십의 본질은 부하, 동료, 상관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장병들의 신뢰만 획득한다면 지휘관으로서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세대 장병'이라는 상징적 용어가 말해주듯이 군대의 환경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런 변화된 상황 속에서도 헌신과 배려의 리더십은 통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도리어 그들로부터 더 높은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신세대 장병의 사고방식은 합리주의, 실용주의, 현실주의 등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을 과거의 리더십으로 다스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1970년대에는 '순종의 리더십', 1980∼90년대에는 '보상의 리더십'이 통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자발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자발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신뢰와 존중 그리고 공감과 배려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는 원초적 에너지는 따로 있다. 리더의 도덕성이 바로 그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김 원장이 진정 강조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포클랜드전쟁이 터졌을 때 앤드류 왕자를 비롯한 영국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이 먼저 출전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 장성들의 수많은 아들이 참전했다가 전사하기도 했다.

"도덕적 진실성은 아무나 모방할 수 없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에게 엄격하되 약자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권리보다 의무를 소중히 여기고, 불의보다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 지위가 높다고 군림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사람을 헌신과 봉사로 대해야 한다. 엄동 설한에 부하보다 먼저 외투를 입지 않아야 하고, 폭염 속에서 먼저 부채를 들지 않아야 한다. 폭우 속에서 먼저 우산을 쓰지 않아야 하며, 생사가 걸린 중요한 전투에서는 마땅히 선봉에 서야 한다. 권력, 건강,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받은 사람이 양보하고 솔선해야 한다. 그런 리더를 가진 군대와 회사와 국가는 무적의 행군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원장이 그러면서 덧붙인 것이 하인스 워드 이야기였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 여사는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 속에서도 아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소년 워드는 교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신을 내려주고 자동차 안에서 울고 있던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나중에 커서 미식축구 선수가 된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타인에 대한 헌신과 배려를 실천했다. 그러자 동료들의 '패스'가 그에게 몰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는 MVP의 '터치다운'을 할 수 있었다. /정지환 기자


김충배 원장의 이력서

▲ 육군사관학교 졸업
▲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수기사 기갑여단장
▲ 3군사령부 작전처 교육과장
▲ 5군단 작전참모
▲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 육군사관학교 참모장
▲ 52사단장
▲ 1군 지휘부 참모장
▲ 육군3사관학교 교장
▲ 6군단장
▲ 국방부 정보본부장
▲ 육군사관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