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국민들이 편하게 살고 싶어도 너무 시끄럽다. 매일 언론은 정치권의 기득권 싸움을 국민의 알권리라면서 마구 쏟아낸다. 가뭄에 단비처럼 훈훈한 미담이나 쏟아냈으면 좋겠다. 그중 지겹도록 듣는 하나가 대통령 기록물을 국가 기록원으로 제대로 이관하지 않은 소위 史草 실종 사건이다.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 유세에서 2007년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한말이 발단이 된 모양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논쟁은 계속 되었고 급기야 당시 대화록에서 NLL 포기 단어 찾기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로 대화록에서 사실관계를 찾아보려 했지만 대화록 원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현재 검찰 중간 수사결과에 의하면 결국 당시 대통령 기록을 보관했던 청와대 e지원 시스템에서 기록의 수정과 삭제가 이루어지고 기록 저장 장치인 하드디스크 대부분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다. 親御弓矢, 馳馬射獐, 因馬?而墜, 不傷。 顧左右曰: “勿令史官知之。” 왕이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 역사적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태종 4년 2월 8일자에 기록되어 있다. 태종이 얼마나 역사를 두려워했는지, 이 사실을 기록한 사관의 책임감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의 제위 13년 3월 20일에 기록된 세종실록에는 편찬이 완료된 아버지 태종실록을 볼 수 없느냐고 신하들에게 묻는다. 그러나 맹사성은 임금이 보게 되면 선례가 되어 후세의 임금이 고치지 말라는 법이 없고 史官도 군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똑바로 적을 수 없음을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세종은 실록을 보지 못했다.

연산군 시절에는 당시 연산군 아버지인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던 편찬관 이극돈이 성종을 보좌하던 자신의 행위가 실록에 나쁘게 평가됨을 알고 연산군을 사주하여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 삼아 정치적인 반대파를 처형하고 유배를 보냈다. 私的인 역사 문제를 공적인 정치 투쟁으로 몰고 간 바로 연산군 시절의 무오사화다.

오늘의 사초 분실을 예방하기 위해 실록에는 역사 기록의 폐기와 분실 방지에 대한 매우 엄한 기록도 있다. 태종은 태조실록을 편찬하기 위한 사초의 수집이 지연되자 기간 내에 바치지 않는 자는 자손을 금고(禁錮)하고 은(銀)20냥을 물리도록 하라(10년 1월)고 지시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통치활동이 사초로서 공개되지 않은 것이 없다. 사관은 왕의 언행과 그에 대한 포폄(평가)을 소신껏 기록했다. 그래서 왕은 자신의 말 한마디와 행동 모든 것이 기록되고 후세에 전해짐을 알고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했고 사생활까지 기록하는 사관의 기록 방법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렇게 작성된 사초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었지만 국왕 자신도 왕을 평가한 기록이 들어있는 완성된 실록은 볼 수 없었다. 중국의 사마천은 오로지 바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宮刑(불알 거세)의 치욕을 견디어 냈다. 연산군 시절에 史官 김일손은 죽은 스승의 ‘조의제문’을 성종실록에 실으려다가 화를 입어 가문이 멸절되었다.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신하들은 ‘史筆이 시정(時政)의 좋고 나쁜 것과 행동의 잘잘못을 기록하고 만세에 전하는데 아무도 이를 고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임금은 오직 하늘과 사필(史筆)을 두려워해야 한다.’라고 임금을 설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록을 보면 왕과 신하들의 업무 지식과 판단이 사실대로 기록되고 사관이 매긴 평가결과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기에 국가 운영에서 매사를 근거와 사례를 들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역사 기록의 위력이다. 역사는 후손들에게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후대는 이를 평가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남겨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국회는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다. 의정활동은 속기록으로 국회의원들의 막말까지도 고스란히 기록되기 때문에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데도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인지 막말은 도를 넘어 서고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는 조선 말기 사색당파 싸움과 세도(勢道)정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말로는 국민과 평화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당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상대를 모략하고 헐뜯고 비방하고 죽이고 있다. 이런 삼류의 정치인들에게 국가를 맡긴 결과 조선은 일본의 속국으로 비극을 맞았다.

손자는 그 나라의 상태는 7計로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 지도자의 정치수준을 말하는 主孰有道, 신하들의 정치수준을 말하는 將孰有能, 국가의 준법수준을 말하는 法令孰行 등이다. 조선 연산군 시대 왕과 신하들의 정치수준은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켰고 오늘의 NLL싸움은 500년 전의 그 사화 싸움과 너무나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제 이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선택의 키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