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1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71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1일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정재관 코엑스 사장이 ‘글로벌 시대의 선진국 경쟁코드, 전시컨벤션산업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라스베가스와 두바이에서 배워야 할 것
“전시컨벤션산업은 굴뚝 없는 황금산업이자 21세기형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산업이다.”
정재관 코엑스 사장은 이렇게 선언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그가 누구인가? 2003년까지 현대종합상사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던 ‘수출의 첨병’이 아니었던가. 지난 24년 동안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메이드 인 코리아’를 팔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가 공모제도를 통해 코엑스 사장이 된 것은 2년 전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전시컨벤션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임을 역설하는 ‘컨벤션 전도사’로 변신해 있다.
“전시컨벤션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막대하다. 예컨대 외국인 한 명을 국내 컨벤션에 유치할 경우 21인치 컬러TV 14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외화를, 외국인 세 명을 유치할 경우에는 1500cc 승용차 한 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컨벤션 참가자가 지출하는 액수는 일반 관광객의 2.4배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관광객의 체류 기간이 4.9일인 반면 컨벤션 참가자의 체류 기간은 6.5일이었다. 컨벤션산업의 강국으로 알려진 독일은 GDP의 1%(연 2백30억 유로 규모)를 이 분야에서 얻고 있는데, 총 교역량의 60~70%가 전시회를 통해 성사되고 있다.”
한국이 컨벤션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은 물론이다. 정 사장은 생생한 두 가지 사례를 더 들었는데, 미국의 라스베가스와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라스베가스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라스베가스는 ‘카지노의 도시’에서 ‘컨벤션의 도시’로 급격하게 탈바꿈하고 있다. 2005년 라스베가스가 전시나 컨벤션과 관련된 관광수입으로 벌어들인 돈은 카지노와 관련된 관광수입으로 벌어들인 돈과 비슷한 수준이다. 흥미로운 것은 카지노 수입의 비중이 계속 하향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반면 전시나 컨벤션 개최 건수는 연 2만2천회에 이르는 등 상향 추세에 있다. 전시나 컨벤션 관련 방문객이 연간 617만명(2005년 기준)에 이르는데, 덕분에 13만개나 되는 호텔 객실의 가동률이 91.8%나 됐다. 참고로 같은 기간에 2만6백94개에 이르는 서울 시내 호텔 객실의 가동률은 69.4%에 불과했으며, 한국 전체 컨벤션 시설 규모는 라스베가스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사막 속의 뉴욕’으로 불리고 있는 두바이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정 사장은 부존자원이 빈약했던 작은 도시 두바이가 어떻게 아랍에미레이트의 GDP 중 25%를 차지하는 컨벤션 도시로 변신할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
“우선 장기적 안목과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1966년 석유를 발견했을 때부터 오일 수입을 도시 인프라 건설에 쓰기로 결정했다. 1996년에는 2011년까지 탈(脫)석유 경제구조 달성정책을 수립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창의성과 상상력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팜 아일랜드’ ‘더 월드’ 등 인공섬을 만들어 세계의 부호들에게 분양했으며, 사막에서 일년 내내 스키를 탈 수 있는 ‘스키 두바이’와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에 이르는 테마파크 ‘두바이랜드’도 건설했다. 규제완화 등 정부 당국의 추진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있었기에 앞의 모든 ‘꿈’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세계 최고층 빌딩인 ‘버즈 두바이’를 세우기 위해 70여개의 비행기 노선을 변경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렇다면 한국 전시컨벤션산업의 현주소는 어떤가? 정 사장은 “세계 11위 무역대국이라는 지위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이 분야에서만은 아직도 출발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적으로 전 세계에서 연간 약 2만회의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을 유럽이나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의 경우 유럽이 7천4백10회(37%), 미국이 4천5백78회(23%), 아시아가 3천7백50회(19%) 분할해 개최했다. 그나마 한국이 개최한 전시회는 3백75건(세계의 1.9%, 아시아의 10%)에 불과했다. 전시회나 컨벤션 유치와 개최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중요한 인프라이다. 외국 바이어를 불러다가 직접 물건을 보여주고 각종 회의를 개최해 한국을 알려야만 우리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와 전시컨벤션산업을 접목시키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지만 쉽고 작은 일부터 개선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코엑스의 청결은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의 수채 구멍에 박혀 있는 담배꽁초를 치우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