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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강연(45)새벽을 여는 강연(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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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6.15  15: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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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1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56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6월 8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이 '피더 드러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피터 드러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

(이재규 / 전 대구대 총장)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1909∼2005). 19세기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진하게 남아 있던 20세기 초기에 태어나 21세기 벽두까지 살며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이 거인과 대한민국의 소통을 도운 주인공이 있다.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드러커의 저서 14권과 관련 저서 2권을 포함해 모두 16권을 번역했고, <피터 드러커 평전>을 직접 쓰기까지 했으며, <피터 드러커의 경영전략>과 <지식근로자가 되는 길> 등 실용적인 서적을 편집해 출간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 피터 드러커라는 학자의 이름을 들은 것은 대학(서울대 상학과) 2학년 때인 1968년 마케팅 강의 시간이었다. 사람이 기업을 하는 목적은 '이익 추구'이지만 헨리 포드가 주창한 포디즘에는 서비스 동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객의 창조'라는 내용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주로 최근에 내가 번역한 <경영의 실제>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해적판으로 나온 드러커의 책을 구입해서 읽은 적도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2년 나는 드러커의 신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번역하게 됐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가 무려 83세나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 후 이 전 총장은 다시 한번, 더욱 크게 놀라야 했다. 드러커가 93세 때인 2002년에 역작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당시 이런 흥미로운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드러커에게 "교수님의 저서 중에서 어느 책이 가장 좋은가"라고 물었더니, "다음에 나올 책(next book)"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바로 그것이다.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인간은 청년기에는 실패하며, 중년기에는 고투하며, 노년기에는 후회하며 살아간다. 위대한 이름을 기억하고 위대한 모범을 따르는 것이 영웅의 유산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물론 드러커가 남긴 유산은 39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에 담겨 있는 사상일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거니와, 그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은 따로 있다고 본다. 나는 그것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한 것, 즉 드러커의 '지적 성실성'에서 찾고 싶다. 실제로 드러커는 자신이 주장한 목표관리와 자기관리 개념을, 95년이라는 '삶으로의 긴 여행'을 통해 충실히 실천했다. 우리도 드러커처럼 짧지 않은 인생을 지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의미 있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피터 드러커, 삶으로의 긴 여행>. 이 전 총장이 발간을 준비하고 있는 새 저서의 가제이다. 드러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기 위한 시도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전 총장은 '삶으로의 긴 여행'의 출발선이라고 할 수 있는 드러커의 출생과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를 꼼꼼하게 짚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출생한 드러커는 열 살 때 입학한 김나지엄 종교시간에 필리글러 신부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는다. 사람이란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이 질문은 드러커의 일생을 통해 중요한 시금석이 됐는데, 그가 돈보다 인간에 더 주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8세가 되던 1927년 독일 함부르크로 이동한 드러커는 무역회사 견습사원으로 일하며 함부르크 대학을 다녔다. 당시 그는 함부르크 오페라좌에서 베르디가 80세에 작곡했다는 '팔스타프'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수명이 길어진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즉 긴 인생에 대한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실제로 드러커는 대학에서 은퇴한 뒤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란에 20년 동안 매월 한 번씩 원고를 기고하던 66세부터 86세까지의 기간을 "나의 인생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았던 시기"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혁명>(67세), <경영혁신과 기업가정신>(76세), <새로운 현실>(80세), <비영리단체의 경영>(81세),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84세), <21세기 지식경영>(90세), <넥스트 소사이어티>(93세) 등의 저서는 그렇게 탄생했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는 드러커에게 세상의 변화를 예견하는 통찰력을 선물했다. 정부나 기업이 관여할 수 없는 부문을 NGO와 NPO 등의 제3섹터가 담당하게 될 것, 구세군의 교도소 관리처럼 비영리단체가 국가의 일부 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 지식이 핵심 자원이 되고 지식근로자가 노동력 가운데 지배적 집단이 될 것, 기업의 목적은 이익 추구이지만 '사회적 책임'도 감수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 등의 예언은 모두 현실이 됐다." /정지환 기자





이재규 총장의 이력서



▲ 서울대 상학과 졸업

▲ 서울대 경영학 석사

▲ 경북대 경영학 박사

▲ 영진약품공업(주) 이사

▲ 대구경북경영학회 회장

▲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

▲ 대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대구대학교 총장

▲ 한국전기초자 사외이사

▲ 대구방송 사외이사



상훈: 전경련 출판문화상, 대구대 학술상, 대구대 우수연구상

저서: 피터 드러커 평전, 경영학원론, 빅뱅경영, 노키아스토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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