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세계 최대 대나무 서식지이자 대나무 문화가 형성되어온 중국의 대나무 고장을 집중 취재함으로써 대나무 고을 담양의 대나무 산업과 문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성장동력을 모색코자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해외 기획취재를 실시했다. 지난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6박7일 동안 실시된 해외 기획취재는 중국의 죽향 촉남죽해와 차산죽해를 중심으로 대나무를 활용한 관광산업과 대나무 공예, 대나무 음식, 대나무 산업과 중국인들의 문화 속에 녹아들어 있는 대나무 문화를 심층 취재했다.
이번 호부터 5회에 걸쳐 기획 취재물 '中國의 竹鄕을 찾아'를 연재한다.(편집자 주)
대나무 바다 '촉남죽해(蜀南竹海)'
중국 대나무의 모든 것을 알아보기 위해 대장정에 올랐다.
중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상해 포동공항 화단에 조성된 대나무의 푸른 기상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 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상해공항을 출발, 3시간 동안의 기나긴 비행 끝에 도착한 의빈공항은 당초 군용 비행장이었으나 1992년 민간 공항으로 개항한 곳으로 의빈을 대표하는 대나무 명인이 설계하고 직접 시공한 대나무 팬션이 대나무골 담양에서 온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대나무 팬션은 중국 고유의 건축 문양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 데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 위에 대나무로 만든 건축물들이 대나무 조경과 앙상블을 이루어 보는 이들을 감탄케 하고 건물 내부 역시 대나무로 만든 조명기구는 물론 가구 등이 조화를 이뤄 의빈시를 대표하는 대나무 건축물임을 입증했다.
공항에서 의빈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는 대나무들이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호텔 로비 중앙에 떡 하니 노른자위를 점하고 있는 대나무 조경에서 대나무 고장 의빈시의 심장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채 여장을 풀었다.
'촉남죽해(蜀南竹海)'
촉남죽해 풍경구는 사천성 의빈시 장녕(長寧), 강안(江安) 두 현을 끼고 있다. 지형이 좁고 긴데 20여 개의 고봉과 500여 개의 산마루가 있고 어디 가나 참대 숲을 볼 수 있다. 산에 높이 올라 내려다보면 망망한 참대 숲이 바다처럼 설레는 듯 하여 심히 장관이다.
촉남죽해는 대나무로 이루어진 국가중점 풍경구역으로 만령청으로도 불리우며 면적은 120㎢이고 수십만 그루의 대나무로 뒤 덮여 있어 바람결에 일렁이는 대나무 숲은 푸른 바다처럼 보여서 이곳을 죽해(竹海)라 한다.
죽해 경관은 사계절 다르다. 죽순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봄엔 꽃이 피고 새가 우짖고 여름이면 푸른 참대 숲이 하늘을 가리고 단풍 붉은 가을에는 검푸르고 은백색의 겨울에는 비취가 옥을 떠받친 듯 하다.
죽해는 웅장하고 험준하며 아늑하고 수려함으로 소문이 났다. 이 곳엔 명소 124곳이 있는데 그 중 천황사(天皇寺), 천보채(天寶寨), 선우동(仙寓洞), 청룡호(靑龍湖), 칠채비폭(七彩飛瀑), 고대 전쟁터, 관운정(觀云亭), 비취장랑(翡翠長廊), 차화산(茶花山), 화계13교(花溪13橋)는 죽해의 10대 명소이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기로부터 명, 청(明, 淸)시기까지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던 전쟁 사례를 바위에 조각한 '36계(36計)'가 죽해 천보채의 높이 1000여 미터 되는 벼랑에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의빈시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제공한 촉남죽해 안내 책자의 요지이다. 이 같은 것들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촉남죽해로 향했다.
의빈시내에서 촉남죽해까지 가는 이정표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목적지까지는 71km. 땅 덩어리가 큰 중국에서는 가까운 거리라고 한다.
시원스럽게 달려가는 차 뒤로 중국의 전원적인 풍경들이 사라진다.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따뜻한 곳이어서 인지 주택들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있고 1층은 창고로 사용하고 2층은 주거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집 주변의 대나무들은 잘 관리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또한 경사진 산비탈 논의 침식을 막기 위해 대나무가 심어져 있고 파초와 팔손이 등 남방식물들이 대나무와 잘 어우러져 이색적인 목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촉남죽해까지 가는 도로에는 대나무 가로수를 잘 조성해 이정표가 없더라도 대나무를 따라 쭉 가다보면 촉남죽해에 다다를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대나무는 의빈시의 얼굴이자 시민들의 삶과 함께 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임을 짐작케 한다.
"의빈시 주민 중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한달 평균 수입이 중국 돈으로 600~800원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촉남죽해 입장료가 얼마 인줄 아십니까? 1인당 80원(우리나라 돈으로 1만원 가량)입니다. 보통 중국사람들은 이용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촉남죽해는 해발 600m에서 1000m의 고도에 자리잡고 있으며 죽림 전체면적은 120㎢, 공원 중심부 죽림면적만도 45㎢에 달하고 이곳에 분포하는 대나무 종류는 40속 332종으로 그중 중국 토속종은 58종입니다"
"또 1988년 중국 100대 경승지의 하나로 선정됐고요. 1994년에는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중국 40대 명승지로 지정되어 매년 7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뛰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촉남죽해는 매우 광활합니다. 오늘 하루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차로 이동해도 정문에서 후문까지 가는데 3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죽해안에는 학교도 있고 마을도 있습니다"
의빈시 510만 인구중 유일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최웅성 가이드의 촉남죽해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끝나갈 무렵 웅장한 촉남죽해가 우리를 맞이했지만 도로공사로 인해 정문 쪽 도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2시간 가량 차를 더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우회한 끝에 촉남죽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입장권을 끊기 위해 잠시 내린 후문에는 대나무로 외벽을 장식한 매표소가 눈길을 끌고 매표소 한 쪽에는 현지 가이드로 보이는 10~20대 소녀들이 컵라면으로 요기를 때우며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가이드를 자청,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도 생경스럽다.
담양보다 따뜻한 곳인지 몰라도 대밭 이곳 저곳에서는 대지를 힘차게 박차고 솟아오른 죽순들이 대나무들과 어우러져 한편의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칠채비폭에 다다랐다.
칠채비폭 입구에는 촉남죽해에서 나는 각종 버섯을 비롯 갓 채취한 죽순과 대나무를 태운 연기로 훈제한 돼지고기와 대나무로 만든 기념품과 장난감, 대통밥을 판매하기 위해 현지 주민들이 펼쳐놓은 좌판이 눈길을 끈다.
또한 스님, 부처, 귀신, 독수리 모양의 다양한 대뿌리 공예와 어린아이 몸통 만한 대나무를 활용해 만든 붓통을 만들기 위해 바삐 손을 놀리고 있는 공예인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보너스이며 크기부터 남다른 죽순은 기가 질릴 정도로 거대하다.
죽해의 산물들이 모여들어 낙차가 200여m에 달하는 칠채비폭은 맑은 날이면 떨어진 물방울들이 햇빛에 투영되어 무지개를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채 대나무와 어루어진 폭포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고 대나무의 정수가 응집된 죽해대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죽해대박물관은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전개되고 있었다. 입구에서 만난 직원을 설득하여 박물관에 들어가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죽해대박물관은 촉남죽해 전체 개요와 촉남죽해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 및 주요 관광자원 등을 모형과 사진을 통해 전시하고 있는 제1전시실, 주요 대나무종과 세계분포도를 사진과 도표로 전시하고 있는 제2전시실, 촉남죽해를 방문했던 주요 인사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또 대나무와 관련된 한시와 그림, 악기, 종이발명 이전에 사용하였다는 죽간, 대나무를 이용한 각종 산업 군사도구, 어로도구, 건축재료 및 대나무의 약재 효능을 전시한 공간, 찻잔과 죽통 등 일반 공예품과 대뿌리를 이용한 조각 등 장식품, 대 표피에 용과 구름을 조각하여 만든 구룡모통은 촉남죽해가 자랑하는 특산품이다는 것.
그리고 죽해대박물관을 계곡위에 건물을 지었는데 건물에 균열이 가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 손상된 것을 우려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키로 결정하여 철거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그나마 직원들이 보여준 박물관 안내 홍보물에서 박물관의 규모와 전시작품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대나무박물관에서 상심했던 마음은 인근에 위치한 망우곡에서 말끔히 씻어 낼 수 있었다. '근심을 잊는 계곡'이라는 뜻의 이 계곡은 이별의 고통을 겪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입구 매표소부터 관광기념품 판매소까지 모든 건물을 대나무를 원재료로 하여 98년과 99년에 지었는데 판매보다는 카드놀이에 정신이 팔린 상인들의 관리 소홀 인지 몰라도 여러 곳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아쉬움이 컸다.
대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는 이 계곡에는 희귀한 개구리가 사는데 개구리 울음이 비파 소리와 같다고 하여 이곳에서 생산되는 기념품 포장 케이스에는 개구리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는데 희귀 자원을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하는 중국인의 상술을 감지 할 수 있다.
촉남죽해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천보새와 선우동을 보기 위해 비취빛 대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대숲 오솔길에 접어들자 서늘함과 함께 청량감이 때 이른 더위와 피로를 씻어주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20여분 가량 죽림욕을 하고 대숲이 끝 나가는 절벽에 다다르자 길이 1500m의 좁다란 요새로 절벽의 벽면에 삼국지에 나오는 36개의 주요 장면을 조각으로 표현한 천보새를 따라 가다보니 불교와 도교의 양식이 혼재된 사찰의 선우동에 다다랐다.
선우동은 천애의 절벽 암반에 지어졌는데 많은 연인들이 사랑이 변하지 말라며 굵은 쇠사슬에 자물통을 채우고 열쇠는 천길 낭떠러지로 던져 버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죽녹원 '사랑이 변치 않는 길'에 접목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선우동 주변 찻집에서 바라본 촉남죽해는 가히 장관이었다. 많은 이들의 손때가 묻은 대나무 의자들이 반질반질 할 정도로 윤기가 나는 가운데 주택과 농경지, 대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자연의 웅대함을 느낄 수 있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약속의 땅, 경이로운 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가 없다.
또한 광활한 죽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도 자연스레 엿볼 수가 있었다. 대나무로 만든 원두막형 식당을 비롯 대나무로 만든 주차장 표지판, 대나무로 만든 관광 명소 안내소, 대나무로 만든 화장실 안내판, 대나무로 만든 가마, 대밭에서 생산되는 각종 이름 모를 버섯 등 대나무는 이들이 살아 숨쉬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경제 활동의 뿌리임을 말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오솔길을 따라 거닐며 죽순 껍질을 장난감 삼아 노니는 모습에서 竹馬故友의 어원을 상상할 수 있으며 농사일에 지친 몸을 기대는 대나무 의자는 그들에게 안식을 주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카드놀이를 하는 대나무 탁자는 놀이의 마당이 되어 주는 등 중국 주민들의 삶에 대나무는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본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하였습니다) /한명석 정종대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