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에 관한 기록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국가정보원에서 정리한 노대통령과 김정일과의 대화록은 국정원에서 이미 그 문서를 공개하여 NLL에 관하여 두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정치권은 이 역사적 사실의 실체를 두고 싸우는 것일까? 그것은 공개된 대화록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남북 관계를 볼 때 노대통령의 NLL언급은 너무 앞서간 느낌이 들면서 영토포기라는 오해도 낳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그것으로 정치 생명까지 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본의 실체를 보자고 했지만 당시 기록물들을 찾을 수 없고 만약 찾아낸다 하드래도 그 역시 이후 해결이 어려운 것이라 대화록을 공개한 국정원이 집중타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기록물은 2007년 제정되어 노대통령과 이대통령이 법의 적용을 받아 기록물을 이관하여 보관하고 있다. 이 기록물 중에서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기록물은 국회의원 2/3의 동의를 받아 열람할 수 있는데 이번 NLL관련 문건은 어렵게 국회의 동의를 얻어 열람하려고 하니 기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서 기록물을 이관하지 않았거나 없애버렸다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어떤 분들은 노대통령이 뭐라고 했건 NLL은 여전히 우리의 영토선으로 존재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 두자고 얘기를 하고 어떤 분들은 이것은 헌법 66조 2항의 책임을 저버린 행위로 묵과할 수 없다고 얘기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1997년 유네스코에서 인류 기록문화 유산으로 등재한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역사기록의 소중함을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에 대한 역사적 통치 사실과 통치에 대한 평가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실록은 국가 최고 통치자가 국정을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 통치자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는 물론 통치자의 성향과 모든 행적을 사관들이 냉철하게 평가하고 기록하였다.

통치자들은 이런 역사의 평가가 두려워 말과 행동을 조심하였고 실록의 기록들은 후세에 경종을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서 군주는 역사를 두려워하면서 신중하게 통치를 했고 이를 기록하는 사관은 비록 계급은 낮았지만 역사의 사실을 기록하는 일에 명예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중국의 사마천은 오로지 바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궁형(宮刑)(불알 까기)의 치욕을 견디어 냈다.

연산군 때 사관 김일손은 죽은 스승의 ‘조의제문’을 성종실록에 실으려다가 화를 입어 가문이 멸절되었다. 반면에 이복동생까지 죽여야 했던 태종은 자신뿐 아니라 조선 개국에서 피를 흘렸던 역사가 후세에 기록되어 남기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그래서 사관들이 왕을 귀찮게 밀착 기록하는 것을 그만두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임금은 구중궁궐에 있어 경계하는 뜻이 날로 풀리고 게으른 마음이 날로 생기게 됩니다. 사필(史筆)은 시정(時政)의 좋고 나쁜 것과 행동의 잘잘못을 기록하고 만세에 전하는데 아무도 이를 고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오직 하늘과 사필(史筆)을 두려워해야 합니다.’라고 임금을 설득한다.

그래서 실록을 보면 당대의 왕의 치적은 물론 보좌하는 신하들의 면면까지를 잘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사를 근거와 사례를 들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성군으로 여기는 세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기록이 궁금하여 열람을 요청했지만 맹사성을 비롯한 신하들은 사관에 대한 보복과 왕권을 이용하여 실록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끝내 거부하였다.

또한 실록을 집필한 모든 사관들도 실록의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공개하지 않았고 실록에 참고가 되었던 사관들의 개인 사초(史草)는 깨끗하게 폐기되었다. 그리고 실록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조선 태종 때 태조실록을 편찬할 당시 모든 사관들은 사초를 바쳐야 했고 누락자는 전조(前朝)의 판지(判旨)에 의하여 자손을 금고(禁錮)하고 은(銀)20냥을 물어야 했다. 이런 노력과 희생을 무릅쓴 사관의 노력으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체계를 정착시켰다.

조선과 지금의 차이는 역사를 바로 쓰고 관리하는 사관제도가 없다. NLL관련 평양 회담을 기록한 사관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의 NLL기록의 존재 여부와 NLL포기에 대한 단어 유무를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책임 사관이 있고 제 역할을 했다면 검찰조사는 간단한 것이다. 또 국회 담당 사관이 있다면 당연히 국회의원들의 막말까지도 역사서에 고스란히 기록되기 때문에 다소 언어 순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인지 국회 속기록이 존재함에도 막말은 도를 넘어 서고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는 조선 말기 사색당파 싸움과 세도(勢道)정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말로는 국민과 평화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당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상대를 모략하고 헐뜯고 비방하고 죽이고 있다. 이런 삼류의 정치인들에게 국가를 맡긴 결과 조선은 일본의 속국으로 비극을 맞았다.

손자는 그 나라의 상태는 7計로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 지도자의 정치수준을 말하는 主孰有道, 신하들의 정치수준을 말하는 將孰有能, 국가의 준법수준을 말하는 法令孰行 등이다. 조선 연산군 시대 왕과 신하들의 정치수준은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켰고 오늘의 NLL싸움은 500년 전의 그 사화 싸움과 너무나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제 이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선택의 키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더 이상 국민의 이름으로 이전투구하지 않도록 이왕 시작하였으니 국민들이 강한 여론으로 뜻을 모아 마무리도 투명하게 종결지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