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나는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꾼다는 이 詩를 좋아한다. 친구를 갖는다면 이런 친구를 갖고 싶었다.

중국의 사기에도 이런 친구의 우정이 나온다. 바로 刎頸之交다.
문경(刎頸)은 목을 벤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경(刎頸)지교는 목을 베어 줄 정도로 절친한 사귐을 뜻하는 용어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절친한 우정을 말한다. 이 말은 중국의 史記 염파린상여(廉頗藺相如) 傳에서 유래한 말이다.

때는 춘추 전국시대 말기, 秦나라와 趙나라를 비롯하여 戰國 7熊이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형국에서 秦나라가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 중에 목현이 있었는데 그 목현의 식객 중에 린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비록 식객이었지만 목현이 죄를 지어 죽임을 당할 처지에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조언을 해줄 정도로 지혜가 뛰어났다.

어느 날 조나라 혜문왕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가 가지고 있는 천하 名玉인 和氏之璧(초나라 화씨가 발견한 귀중한 보물)을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진나라 城 15개와 교환을 제의해 온 것이다. 강대국 진나라가 城을 줄 리는 없고 보물만 빼앗고 조나라 자존심을 꺾어 놓으려는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 신하 목현이 혜문왕에게 천거한 인물이 바로 린상여다. 린상여는 보물을 가지고 진나라로 건너가 진나라 소양왕과 담판을 벌려 보물을 지키고 소양왕의 음모를 무산시켰다.

사마천의 史記에는 린상여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치 있는 외교가 잘 나와 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능멸하려는 것을 역으로 강대국의 자존심을 이용하여 약소국의 요구를 관철시킨 것이다. 오늘 날 우리가 많이 쓰는 完璧이라는 말도 보물을 완전하게 조나라로 가지고 돌아왔다는 完璧歸趙에서 유래하였고 옥의 티라는 하자(瑕疵)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린상여는 조나라에서 上代夫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일 이후 진나라는 3년 동안 수시로 조나라를 침공하여 괴롭히다가 이번에는 국경지역에서 만나 화친을 맺자고 제의해 왔다. 진나라의 저의가 뻔한 것이지만 약소국으로서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나라 혜문왕을 수행한 린상여는 이번에도 진나라 소양왕의 기를 꺾어 놓고 망신을 주어 쫓아 보냈다. 이 공로로 린상여는 종일품 상경(上卿)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동안 강대국 틈에서 趙나라는 武人인 염파(廉頗)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어렵게 나라를 지켜나가고 있었는데 식객에 불과했던 린상여의 명성이 명장 염파보다 높게 된 것이다.

완벽귀조의 공로를 인정받은 인상여가 초고속으로 승진하게 되자 당시 상경으로 있던 조나라의 廉頗(염파)는 이를 못 마땅하게 여겼다. 숱한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자리에 오른 자신에 비해 입 밖에 놀린 것 없는 린상여가 너무 쉽게 승진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만나기만 하면 콧대를 꺾어 놓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고 이를 전해들은 린상여는 일부러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고 한다.

이런 린상여의 행동을 치사하게 생각한 그의 수하들이 그에게 실망하고 떠나려고 하였다. 이때 린상여가 그들에게 염파와 소양왕 중에 누가 더 무섭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는 너희들이 무서워하는 그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선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염파가 두려워서 피하겠느냐. 지금 조나라가 진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진나라 소양왕이 나와 염파가 조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데 둘이서 서로 싸우게 되면 바로 진나라가 쳐들어와서 조나라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린상여앞에 무릎을 꿇었고 염파 또한 린상여를 욕보이려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린상여를 찾아가 웃통을 벗고 태형을 들고 섬돌 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신을 벌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국가를 위해 생사를 같이하고 힘을 모을 것을 약속했는데 이것을 문경지교라고 한다. 린상여도 위대하지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깨끗이 사과를 하는 염파의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야말로 우리가 본받고 싶은 모습이다.

지금 나라는 여러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조그만 나라의 지도자는 어떻게 보면 外憂內患을 극복하기 위해 東奔西走하고 있다. 어려운 국내외 경제 여건에서도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장마와 염천 속에서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폐쇄 위기에 직면한 개성공단을 다시 살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인내를 가지고 회의를 이끌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납품비리와 원전의 고장으로 위기에 처한 전력 예비율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은 더위와 싸우고 있다.

죽창을 든 시위대와 법치주의 국가의 엄격한 법 집행 여부가 도전을 받고 있고 캠프 훈련 중에 익사한 고교생 가족들의 눈물이 이 사회를 적시고 있다. 그럼에도 이 나라 정치에는 린상여와 염파가 없다. 국가와 국민을 핑계대고 그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구차한 변명과 트집 잡기로 오늘도 짜증나는 뉴스를 보내고 있다. 문경지교와 지란지교로 이 나라 정치와 사회가 거듭날 수는 없는 것일까.(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