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60%를 넘어섰다. 박대통령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요즘 세상살이와 정치가 얼마나 약속을 空約으로 얼룩져 있으면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을까. 그리고 약속이 신뢰가 되어 우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제주도 대문 정낭은 긴 나무 3개로 집주인의 현재 상태를 표시한다. 2개가 걸쳐 있으면 집주인이 멀리 출타중이라는 것인데 도둑이 봤을 때는 도둑질하기 좋은 상태이고 친한 친구에게는 모처럼 찾아 왔는데 미안하다는 표시다. 이것은 우리 집에 도둑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신뢰가 요즘은 시골도 개가 묶어져 있고 CCTV가 있고 자물쇠가 단단하게 채워져 있다. 잘 사는 집은 담장이 높고 이중 삼중으로 도둑에 대비하고 있다. 보이스 피싱이 무섭고 무차별적인 다단계 판매원의 전화가 귀찮아 모르는 전화는 받지를 않는다. 문자를 미리 보내 승인을 받아야 전화 통화가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정치는 신뢰를 잃어 버렸고 마지막으로 대통령이라도 신뢰의 대상으로 삼고 싶은 것이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이런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신뢰로 풀어야 한다는 신뢰 프로세스를 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우리가 북한에게 보여준 신뢰처럼 북한도 우리가 믿을 만한 확실한 신뢰를 보내 준다면 남북 간의 교역과 소통은 같은 동포로서 북한에게 엄청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의 경우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쇄를 결정하였다가 이제는 슬그머니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을 민간차원이 아닌 북한 당국이 제시해 주는 신뢰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지원을 하고 그렇게 지원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가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손을 내밀라고 하니 참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최고 존엄이 통치하는 나라가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용서를 구하거나 치사하게 구걸을 할 수 없는 그들의 절대 지존 중심의 딱한 정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남북관계에서 신뢰 프로세스로 서로가 상생하는 Win-Win의 전략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謀攻篇)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제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백 번을 싸워서 백 번을 다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요, 싸우지 않고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단체나 개인이나 모두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성공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전쟁과 같이 승리가 최선이며 2등은 패배라는 극단적인 전략으로 생존을 추구해 왔다.

제로섬게임처럼 상대가 이겨서 얻은 이익만큼 나는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에 누가 더 많이 이익을 얻느냐를 놓고 경쟁자와 총력으로 싸우는 레드오션(Red Ocean)전략을 사용해왔다. 그렇지만 경쟁자를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경쟁에서 자유로워지고 이를 통해 경쟁이 없는 새로운 공간과 수요를 창출하는 블루오션 전략은 구상할 수 없는 것일까. 남북관계는 제로섬게임의 레드오션 전략에서 상생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제로섬게임에서 흔히 이런 사례를 예로 든다. 밀림의 제왕 사자가 어느 날 농부의 딸을 사모하게 되었다. 사자는 농부에게 딸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농부는 사자에게 잡아먹지 않겠다는 신뢰의 표시로 발톱과 이빨을 제거하면 딸을 주겠다고 했다. 만약 사자가 결혼을 위해 발톱과 이빨을 뽑았다면 농부는 딸을 보잘 것 없는 사자에게 시집을 보내겠는가. 사자는 이것을 알고 있는데 발톱과 이빨을 먼저 뽑을 것인가. 당연히 먼저 딸을 주면 발톱과 이빨을 뽑겠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이 게임은 농부의 딸과 사자는 결혼 할 수 없다. 이처럼 제로섬 게임은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의 합계가 영(零)으로 결론이 나는 게임이다. 그래서 농부는 사자가 죽기를 기다렸지만 사자는 죽어도 제왕자리를 대물림하고 있다. 이제 동네에서는 수시로 사람을 해치는 사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 달래자는 측과 사자를 굶겨 스스로 먹을 것을 구걸하도록 하자는 측이 사자를 앞에 두고 서로 싸우고 있다.

사자가 사는 정글 속에 만든 개성공단이라는 사파리는 사자에게 고기 덩어리를 공급하는 곳이라서 굶어 배고픈 사자는 다시 들어오라고 하지만 이제는 아주 튼튼한 울타리부터 설치하자고 하니 사자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그 사이 사자는 정글을 뚫고 나올 수 있는 결정적인 핵무기를 만들었고 이제는 도시민까지도 정글 속의 사자를 걱정하게 되었다.

지금도 사자는 배를 골아가며 더욱 발톱을 매섭게 갈고 있다. 이제는 변종 발톱으로 한방에 모두를 날려버릴 무서운 발톱을 가졌다. 그러나 사자는 심히 배고프다. 그렇다고 밀림의 제왕이 구걸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 레드오션 전략이든 블루오션 전략이든 그런 사자에게 신뢰를 구하고 대화를 청한다는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