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제7편 軍爭에는 이런 말이 있다. 不知諸侯之謀者, 不能豫交 제후들의 모략을 알지 못하면 그들과 미리 외교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 말은 전쟁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인데 인접 나라뿐 아니라 싸울 지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고 있다.

원래 전쟁이란 정치의 연장선에 불과한 것이어서 정치가 있는 곳은 곧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는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단체가 유리하도록 협상을 이끌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와 모략, 흥정이 이루어진다. 언론에 비치는 모습과 이면의 정치 모습이 다르듯 평시의 전쟁이란 총칼이 사용되지 않은 협상의 정치 전쟁이다. 실제 국가 간의 군사력을 이용한 전쟁이란 것도 결국 이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의 최후 수단에 불과하다. 협상에는 항상 勢가 우세한 측이 유리하게 협상을 진행시켜 나간다. 세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강국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지만 경제라는 것은 항상 총칼을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전제에서 성립하는 것이어서 결국 세라는 것은 군사력의 강약과 직결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차 대전이후 세계는 두 개의 세력에 의한 협상을 통해 긴장과 평화를 유지하여 왔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舊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는 친구와 적 사이를 오고가면서 유리한 협상의 자리를 차지하여 왔다. 지금은 소련의 붕괴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듯이 중국이 미국의 협상 상대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만큼 세계의 중심은 동아시아로 그 축이 옮겨 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이 전쟁 이전의 심각한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영토와 과거사 문제로 부딪히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는 영토와 과거사 문제로 부딪히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여 국제적으로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서기를 시도하고 있고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脣亡齒寒의 입장에서 북한을 지지해왔던 중국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위조달러를 만들고 마약을 거래하고 무기수출 등으로 달러를 벌었던 북한의 모든 외화 획득 노력이 중국의 제재 동참으로 어렵게 되었다. 형제의 나라 중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의 대북 제재 정책에 북한의 경제는 붕괴상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북한은 외교 압박의 수단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에 대한 핵무기 공격의 위협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남한에게는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 고위급 회담의 파행, 탈북자 처형 위협 등으로 협상의 우세를 점하려 하고 있어 정상적인 협상의 틀로서는 동아시아 한반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왜 북한은 주변의 강대국이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핵무기라는 것이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호모사피엔스(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전쟁무기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 최고라는 점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전혀 쓸모가 없는 무기이기도 하다. 핵무기가 최초로 사용된 1945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보듯이 이 무기가 사용되는 순간 전쟁당사자 모두가 확실하게 공멸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인류 공멸의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두 개의 강대국을 중심으로 핵무기를 이용한 억지력을 행사하여 협상을 이끌어 나갔다.

세계는 나라별로 자기나라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익이 되는 협상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보유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이왕 핵무기를 가진 나라는 어쩔 수 없지만 이후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강대국이 중심이 되어 이를 저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강대국은 자기 나라에게 세를 불려주는 여러 나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협상의 위치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전쟁이 날 듯 하면서도 인류공멸의 핵무기 때문에 협상으로 매사를 풀어 나가고 있고 그래서 세계대전이 예방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바로 협상의 세를 확보하는데 핵무기의 효과만큼 확실한 수단이 없음을 인식했다.

그래서 어려운 경제여건을 개선하고 김정은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세습체제를 인정해주도록 핵무기를 이용한 협상의 주도권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 핵무기의 포기는 곧 체제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벼랑 끝까지 가보자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핵무기의 인정은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북한과 나눠 가져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형평성의 문제를 들고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이를 막을 명분을 잃게 되어 동아시아에서 영토분쟁과 함께 세계 전쟁으로의 발전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 최선이고 최상의 협상 무기는 핵무기라는 전쟁 방식이 적용되고 있어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는 국가, 막으려고 하는 국가가 지금 동아시아 한반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