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상영되었던 영화들이 케이블 티비를 타고 재방되는 영화들이 많다. 그런데 오늘은 얼마 전에 중국 티비에서 방영했던 墨攻이라는 영화가 갑자기 떠오른다. 이 영화는 중국이 여러 나라로 분할되어 서로 전쟁을 벌이다가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제의 천하 통일로 인해 마무리되는 春秋戰國時代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라가 강해지면 약한 이웃 나라를 넘겨보고 힘이 약하면 여지없이 강대국의 먹잇감이 되던 약육강식의 시대, 백성들은 농사를 지어 군량미를 바쳐야 했고 전쟁이 나면 병사나 짐꾼으로 동원되어 무참하게 희생되곤 했던 그런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가 바로 춘추전국의 시대다.

이 시대의 전쟁은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모의와 야합이 판을 치고 의리마저 저버리는 권모술수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친구도 속이고 어제의 친구도 오늘은 적이 되어 싸웠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도 70만 대군의 원소군과 싸울 때 면전에서는 친구였지만 뒤에서는 비수를 들이대는 전술을 썼다. 이와 같이 이 시대의 전쟁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인간성이 상실된 척박한 춘추전국시대에 孔子·孟子 등 제자백가들이 등장하여 백성들에게 仁(사랑)을 가르치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겠는가. 이때 공자의 사랑(仁)을 차별적 사랑이라며 인간을 사랑하려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고 공자의 인의 사상에 반대론을 펼치며 등장한 인물이 바로 墨子다. 묵자의 논리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검은색의 옷을 입고 침략당한 나라를 찾아가 힘을 보탰다. 당시 적이 넘겨보지 못하는 강한 국력으로 전쟁을 예방하고 싸우기 전에 이겨놓고 싸우는 不戰勝 사상을 주장하던 孫子의 출현도 바로 이 시대다.
당시의 묵자는 지금으로 치면 민중을 대변하고 통치자의 정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좌파적 성향을 띤 사상가라 할 수 있다. 묵자는 非攻사상으로 침략 전쟁을 비판한다. 어떤 약소국이든 차별하지 않고 이들을 위협하는 강대국에 맞서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非攻 즉 남을 먼저 공격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전투에만 참가했다. 그래서 진나라에 의해 천하가 통일 되자 묵자의 추종자들도 조용히 사라졌다.

영화는 당시 양성이라는 한 城에서 있었던 전투를 다루고 있다. 조나라의 10만 대군이 연나라를 치러가는 길목에 있는 인구 4천명의 양성을 공격한다. 양성은 약한 나라를 돕는 묵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때 지원되는 병력은 혁리라는 장수 한명 뿐이다. 그렇지만 혁리는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성내 백성들과 힘을 합해 양성을 지켜내고 백성들의 신임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자신의 지략으로 함정에 빠져 무참히 죽어가는 수많은 조나라 군사들을 보면서 또 양성이 항복한 조나라의 병사들까지 무참하게 살해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잔혹함에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내나라 백성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적국의 병사 생명도 똑 같은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묵가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은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는 단순한 논리에서 살상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전쟁에서 불필요한 동정은 오히려 전쟁을 그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세계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전쟁 개념은 손자의 사전 예방 사상과 묵자의 평화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를 이용한 화학전, 2차 세계 대전에서 잔인한 유태인 학살, 일본의 옥쇄작전, 미국의 원자폭탄의 사용 등으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무시된 역사의 반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엔은 제네바 협약으로 전투 현장에서의 인간 존엄성 문제를 아주 중요하고 우선적인 문제로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바로 묵자의 평화와 非攻, 兼愛의 사상이 전투 현장에서 적용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가 북한을 예측 불허의 위험 국가로 분류하고 공동 제재로 나가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러한 묵자 사상의 실현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서울 면적의 4배에 해당하는 지역의 모든 숨 쉬는 생명체를 순식간에 몰살할 수 있는 화학탄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핵무기 보다 더 잔혹한 무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세계 모든 나라는 북한의 화학탄과 핵무기가 전 세계 테러리스트에 의해 판매되어 대량 살상 무기화 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 墨攻에서 혁리는 양성의 백성을 구하고 백성들의 심임을 얻지만 정치적인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다. 혁리의 浮上은 양성의 지도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정치적인 적이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나라로부터 양성을 구한 혁리는 도리어 양성으로부터 추방당하고 함께 싸우고 그를 따르던 양성의 백성들은 정치인들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학살된다. 약소국으로 침략을 받던 과거를 금방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정치적 싸움 속에 백성들 역시 혁리를 잊어버린다. 묵가의 사상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으로 이 세상이 완전한 평화를 맞을 수 없다는 냉혹한 인간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어렵게 독립한 가난한 나라가, 북한 김일성의 남침으로 공산화되기 직전에 유엔의 도움으로 구원되었고, 박대통령의 경제발전 정책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지만 우리는 그때의 고마운 인물들을 몰아내고 그 시절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도 역시 양성의 한 백성이고 그런 정치인들과 살고 있는 범부에 지나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