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1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70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4일 조선호텔 1층 그랜드볼룸에서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 소장이 '테러리즘은 왜 일어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누가 빈 라덴을 '젊은 사자'로 키웠나?
"미국은 과연 오사마 빈 라덴에게 승리했는가, 패배했는가? 이런 물음과 관련해 미국의 언론인 조제프 나이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빈 라덴이야말로 9.11 이후 가장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가장 강력하게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인물이라고. 여러분은 그 분석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 오사마 빈 라덴은 빌 게이츠나 타이거 우즈처럼 유명해졌고, 알카에다는 마이크로소프트나 도요타만큼 강력한 조직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미국인에게 '제2의 진주만'으로 불리는 9.11테러사건 5주년이다(진주만 폭격으로 2천5백여 명이 사망했고, 9.11테러로 3천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테러리즘과 저항권>, <국제테러리즘 연구>의 저자이기도 한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 소장은 '21세기 테러리즘의 대명사'가 된 오사마 빈 라덴을 강연의 화두로 꺼냈다.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 집안에서 스물 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무하마드 아와드 빈 라덴에게는 22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오사마 빈 라덴의 어머니는 열 번째 부인이었다. 빈 라덴은 13세 때인 1970년 항공기 추락사건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부를 상속받았으며, 17세에 시리아 처녀와 조혼을 했다. 서방 언론은 그가 청년 시절 난잡한 생활로 부패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도리어 빈 라덴은 어릴 때부터 종교적 신심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그에게 커다란 삶의 변화가 생겼다. 1994년 이후 반정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사우디 왕가로부터 시민권을 박탈당한 뒤 가족과도 연락이 두절됐던 것이다."
'오사마'는 '젊은 사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평범했던 이슬람 청년이 현상금 2천5백만 달러의 수배자가 되어 세계 초강대국의 정부기관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 소장은 빈 라덴을 '젊은 사자'로 만든 것은 다음 아닌 미국이라고 말했다.
"빈 라덴은 198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던 소련과의 무장투쟁에 가담했다. 그는 그후 많은 투쟁자금과 건설장비를 모아 무자히딘(자유전사)을 지원했다. 그는 1989년 소련이 철수할 때까지 무자히딘 전사들과 싸웠다. 그런데 미국의 카터와 레이건 행정부 역시 무기와 자금을 뒤에서 은밀하게 댔다. 당시만 해도 빈 라덴과 미국은 '동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빈 라덴은 반미주의가 됐다. 걸프전쟁 때 사우디 왕가가 자신들의 안전 보장을 위해 미군을 불러들인 것이 첫 번째 계기가 됐다. 1998년 마침내 알카에다를 결성한 빈 라덴은 '대미항전'을 선언했다. 미국인 4백만명을 살해하고 중동과 동남아 일대에 '이슬람 신정제국(神政帝國)'을 세우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다면 '중동의 이슬람 영웅' 빈 라덴은 현재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미영 연합군이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이래 그의 행방은 거의 5년여 동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과연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2004년 2월 말 한때 체포가 임박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실제로 체포되지는 않았다. 2004년 12월 15일 미국 CIA가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파키스탄 서북부 산악지대에 빈 라덴이 숨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역시 아직 잡지는 못하고 있다.
빈 라덴은 파키스탄 부족민들과 외국 출신 조직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이 지역에서 미국을 공격할 알카에다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있을 것으로 CIA는 믿고 있다. 빈 라덴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한때 아프가니스탄 군벌들을 거액으로 매수했지만 그들은 돈만 먹고 체포 작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전통적으로 이교도들과는 아예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군벌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거물이 된 악마' 빈 라덴은 키가 190㎝나 될 정도로 장신이다. 이런 장신은 숨으려고 해도 쉽게 눈에 뜨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변장을 해도 이동하다 보면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는 머리카락 하나 안 보인 채 꼭꼭 숨어 있다.
"빈 라덴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험준한 산맥의 굴속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거 몽골의 징기스칸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지만 깊고 험준한 산맥에 흩어져 있는 굴속까지 점령하지는 못했다. 물론 빈 라덴을 체포하고 알카에다 조직을 붕괴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필사적으로 추적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설사 빈 라덴을 아프가니스탄의 깊은 굴속에서 붙잡아 끌어낸다고 해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났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우두머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는 점조직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늘을 없애지 않는 한 독버섯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지환 기자
여영무 소장의 이력서
▲ 고려대 법학과 졸업 ▲ 고려대 국제법 석사 ▲ 미 인디애나대 대학원 신문학 수료 ▲ 미 조지워싱턴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수료 ▲ 고려대 국제법 박사 ▲ 동아일보 정경부 차장, 조사부, 지방부 부장, 논설위원 ▲ 동아일보 통일연구소 소장 ▲ 동아시아연구회 부회장 ▲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 ▲ 대한국제법학회 부회장 ▲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회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