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의 시계를 1,500년 전으로 돌려보자. 645년 6월 어느 날. 고구려와 전쟁 중인 당나라 지휘소가 있는 요동성에 당 태종을 필두로 한 수많은 장군들이 작전회의를 위해 모였다. 오늘 작전회의 주제는 고구려 백암성을 함락시킨 직후 다음 공격의 방향을 어디로 할 것인가 인데 문제는 안시성이었다. 그 성을 건너뛸 것인지 아니면 반드시 함락시키고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안시성은 험하고 안시성주 양만춘은 성품이 곧고 날카로우며 그 재주와 용기가 탁월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로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642년 반란으로 실권을 잡은 고구려 연개소문은 국방의 적임자 보다는 정치적으로 자기편에 속한 인물로 성주들을 교체했다. 그런데 성품이 곧은 안시성주 양만춘이 반기를 들었다. 연개소문은 노하여 중앙군을 이끌고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실패하고 할 수 없이 안시성주를 유임시켰다. 안시성이 굳건한 이유가 바로 양만춘에 있었던 것이다.

당 태종은 이 같은 고구려 정황을 보고받고 안시성을 직접 공격하지 말고 군사가 약하고 식량도 부족한 측방의 건안성을 공격하여 확보한다면 한다면 안시성은 당나라 수중으로 쉽게 넘어 올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양만춘이 지키는 안시성 공격에는 막대한 시간과 인적 물적 자원이 소모될 것이 불 보듯 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시성을 건너뛰어 건안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안시성이 고립돼 자연히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가는 길목에 있는 요동성과 백암성은 이미 함락됐고 건안성까지 탈취한다면 안시성은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고립된 안시성의 함락은 시간문제로 본 것이다.

당 태종은 손자병법 제2권 작전 편을 적용한 것이다. “굳은 성을 공격하면 전력이 소모되기 마련이고(攻城則力屈) 장기간 군대를 혹사시키면 물자도 부족해진다(久暴師則國用不足).” 어느 나라 군대든 장기간 전쟁을 하면 칼도 무디어지고 힘이 떨어진다. 그 틈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들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게 되고 결국 지모(智謀)가 뛰어 난 장수라도 사태 수습이나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손자의 가르침을 잘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당태종의 작전 구상에 당태종이 가장 신임하는 군부의 수장 이세적이 반대를 하였다.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으며 우리 군사들의 양식은 요동성에 있는데 지금 안시성을 건너뛰어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만약 고구려 군들이 우리들의 군량 운송로를 끊게 된다면 위험합니다. 먼저 안시성을 탈취한다면 건안성은 저절로 항복 할 것입니다.” 당 태종은 노련한 현장 지휘관인 이세적의 전략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공격의 방향을 안시성으로 결정하였다. 왜 이세적은 안시성을 건너뛰자는 당 태종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수많은 전투 경험과 병법서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춘 당 태종이었다. 하지만 황제 경력 20년은 신하들로 하여금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무디게 만들었다. 자신이 당나라 군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인 것을 몰랐다. 이전의 전투에서도 자신이 요동성을 공략하자 신성과 건안성을 공격하던 군사들이 모두 요동성으로 몰려왔다. 오로지 황제의 신변을 지킨다는 이유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신성과 건안성은 함락됐을 것이다. 최전선에서 뛰는 황제는 의도와는 달리 전쟁을 순수한 작전으로 몰아가지 못하게 했다. 항상 충성 경호문제가 우선이었다.

연개소문은 이러한 당나라 군대의 약점을 이용했다. 당 태종 한 명만 죽이면 만사가 해결되는 공격 목표가 너무나 명확한 전쟁이었다. 연개소문은 황제 한 사람을 노리고 15만 대군을 투입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요동성에서 병사들과 함께 전열을 정비한 당 태종은 운명의 안시성을 향해 출정했다. 연개소문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안시성은 완전한 하나의 독립국이었다. 당 태종도 연개소문도 이 점은 잘 알고 있었다.
황제의 수많은 깃발을 든 당나라 군대가 안시성 앞에 나타나자 안시성 군사들이 고슴도치같이 창을 들고 성위로 올라갔고 당태종을 겨냥한 공격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을 함락시키는 날 (안시)성의 남자건 여자건 모두 (땅에) 생매장하겠다는 이세적의 말에 안시성은 모든 성민들은 결사항전으로 뭉치게 했다.
그러나 안시성에 대한 당나라 군대의 공격이 시작 된지 하루 만에 연개소문의 고구려와 말갈 15만 대군이 안시성과 멀지 않은 곳에 집결을 완료하자 당나라 군대는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군대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잘 살펴봐야 한다. 나는 당태종처럼 군림하여 조직의 장애물이 되고 있지 않는지, 부하들이 창의적 사고와 열정으로 보필하는 것인지, 맹목적인 충성 경쟁으로 자기 보전만을 도모하는지 이쯤에서 철저한 자기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