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조조가 제갈공명의 계책으로 철저하게 패배당한 박망파 전투를 예로 든바 있다. 당시 공명은 손자병법 地形, 行軍, 九變, 火攻편에서 여러 번 강조했던 원칙들을 잘 지켰고 반면 조조는 수적으로 우세한 전투력을 보유했음에도 자만심으로 대패(大敗)했다.

이번호에서는 임진왜란의 명량해전을 통하여 제갈공명보다 우수한 지략가 이순신 장군을 알아보고자 한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134척의 군함을 잃었고 원균도 매복한 왜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경상좌수사 배설만이 겨우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남해 쪽으로 후퇴하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패전 보고를 받은 조정은 모함으로 백의종군하고 있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해 수군을 수습하게 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복귀하자마자 패잔병을 수습하고 무기와 군량을 확보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민족의 생사와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다는 인식과 사명감을 고취했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겨우 12척밖에 남지 않은 배로는 해전에서 일본과 싸울 수가 없다고 판단한 조정은 바다를 포기하고 육군과 합류하여 싸우도록 종용하였지만 오히려 조정을 설득했다.

“임진년 이래 오륙년이 지나는 사이에 왜적이 감히 전라도와 충청도를 바로 점령하지 못한 것은 오직 우리 수군이 바닷목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오히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순신의 장계가 조정에서 받아들여지자 그는 일본군과 싸울 준비를 갖춰 나갔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좁은 통로를 이용하여 상대적 전투력의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곳은 견내량 해협과 명량해협이 있지만 견내량은 이미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이순신 장군은 천혜의 길목인 명량해협을 결전의 장소로 선택하였다. 명량은 남해에서 서해 항로로 이르는 길목으로 넓은 바다를 흐르던 물길이 좁은 해협으로 몰리면서 물살이 거세지는 곳이다.

특히 사리(大潮) 때에는 물살의 빠르기가 9~11노트나 돼 어떤 배라도 감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런 좁고 빠른 명량 수로 밑에 철쇄(鐵鎖)를 설치하고 강한 조류에 왜적선이 걸리게 해 배가 전복되고 적선끼리 서로 충돌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울돌목의 썰물과 밀물 그리고 지형을 이용한 것이다.

드디어 일본의 대 선단이 명량해협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명량해협은 그 폭이 좁아 실제로 한 번에 맞닿아 싸울 수 있는 배는 5~6척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왜선들도 한꺼번에 공격하기가 어려워 12척의 조선수군도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점차 조선수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조류의 방향이 바뀌고 빠른 속도로 바닷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왜 적선들이 뒤로 밀리기 시작하였고 암초와 수중철쇄에 걸린 일본 배들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때 언덕 양편에 있던 조선 화포군과 수군의 협격으로 왜선들은 저항조차 못하고 격침되고 말았다. 당시 일본 함선 330척 중 명량해협으로 진입한 130여척 중 31척이 완전 격침되고 90여 척이 대파되었다. 그러나 한척의 배도 손실이 없이 완전한 승리를 거둔 조선 수군의 기록적인 이 전투가 해전사상의 기적이라는 ‘명량해전’이다.

“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민다. 홀로 앉아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닭이 울어서야 어렴풋이 잠을 청했다(海月滿船 百憂攻中 獨坐輾轉 鷄鳴假寢).”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 장군의 글을 보면서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던 나라 사랑을 새삼 깨닫는다.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이날의 해전을 천행(天幸)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연이란 없는 법이다. 행운이라는 것은 준비된 자에게만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 제5 ‘병세’편에서는 “기책을 잘 발휘하는 자는 천지같이 무궁하고 강과 바다와 같이 마르지 않는다(善出奇者 無窮如天地 不竭如江海)”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해 끊임없이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 적을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직 위대한 장군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장군을 가졌던 우리나라는 참으로 행복한 나라였다.

“내가 넬슨과 비교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이순신과는 안 된다. 그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해군 제독이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이어 막강한 러시아함대까지 격파한 일본의 영웅 도오고 제독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