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전국시대는 제후국들 간에 약육강식의 정복전쟁이 치열하였다. 당시 오나라의 병법가 손자는 결코 무력을 동원한 직접적인 전쟁을 우선시한 전략가는 아니었다.

손자는 대량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쟁 상대국 간에 어려운 상황을 풀어 나가도록 끝까지 사신과 첩자를 보내거나 외교적인 노력으로 사태를 풀고 전쟁을 막아내고자 노력하였다.

이것이 싸우지 않고 온전한 승리를 이루는 손자의 기본사상 不戰而勝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전해지는 그의 전략은 ‘적국을 온전히 두고서 굴복시키는 것’을 최상으로 한다.

그러나 전쟁을 치러야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兵者詭道也 손자는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교묘한 전략(謨)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꾀를 부려야 한다는 것이다.

싸움에도 순서가 있는 법, 먼저 계략으로 적을 굴복시키거나 외교를 통해 동맹을 끊어버리는 것이 우선이요, 병력을 동원해 적의 군대를 격파하는 것은 그 다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전쟁에 돌입하게 되면 주도권을 장악하여 싸워야 한다고 하였다. 善戰者는 致人而不致於人이라. 싸움에 능한 자는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면서 싸우되 절대로 상대방에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도권 장악을 위해 손자병법에서 아주 중요하게 언급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바로 꾀를 부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적으로부터 주도권을 쟁취하고 적의 취약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적의 허(虛)를 파악하고 나의 실(實)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를 위한 방법은 손자병법의 마지막 편 용간(用間)에 기록되어 있다. ‘간첩을 운용 한다’는 뜻의 용간편은 간첩에 의한 정보획득은 물론 역정보를 만들어 그것을 적에게 전달되게 하는 등의 기만작전을 포괄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情報戰(정보전)’으로 불리고 있으며, 정보전은 손자병법이 말하는 ‘지피지기’의 결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가 즐겨 읽었던 중국의 삼국지를 보면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적벽에서 크게 무찌른 적벽대전이 나온다. 전쟁 직전 수전(水戰)에 약한 조조는 적벽 일대의 지형에 밝고 수전에 능한 형주의 군사 채모와 장윤을 영입하여 수군의 전투력을 키워 나갔다. 공명의 전략에 연패하는 조조에게는 큰 힘이지만 대적하는 주유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이때 주유에게 조조의 참모이자 친구인 장간이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역정보전을 펼친다. 채모와 장윤이 자신과 내통하여 조조를 쳐부수기 위해 주고받았다는 '가짜 서신'을 만들어 이를 장간을 통해 흘려보내 조조로 하여금 채모와 장윤을 참수하도록 하였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수전(水戰)에 능한 명장을 참수한 조조는 뒤 늦은 후회를 하지만 결국 적벽대전에서 대 참패를 당한다. 바른 정보는 전쟁의 주도권을 갖게 하지만 불확실한 정보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래서 정보전은 적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보내고 유언비어, 흑색선전으로 적을 내분에 빠트려 스스로 망하도록 유도하는 전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많다. 임진왜란에서 왜군 장수 '가등청정(加藤淸正) 체포사건'이 있었다. 선조실록을 통해서 이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세 선봉장 중,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가등청정(加藤淸正)은 서로 공을 다투며 유독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소서행장이 가등청정을 제거하기 위해서 가등청정의 비밀행보를 조선에 비밀리에 알렸고, 이를 입수한 조정은 이순신 장군에게 출정하여 가등청정을 체포하라 명하였다. 명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확실한 정보라면 적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거짓정보라면 오히려 아군이 당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확실한 정보가 획득되기 전까지는 출정을 하지 않았다.

후세 학자들은 명을 거역한 이순신 장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린 일본 측 계략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당시 이 사건으로 이순신은 하옥되고 일본은 다시 전쟁의 주도권을 갖는다. 일본의 내간과 반간(反間 : 적의 첩보원을 포섭하여 역 이용하는 것), 사간(死間 :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간첩) 들의 역할이 성공을 거두었다고나 할까.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이성으로 주변국의 위협 속에 노출되어 왔다. 더구나 지금은 자유 민주주의와 3대 세습의 독재 체제와 대립상태에 있다. 손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반영한 듯 북한의 대남전략은 이미 큰 성공을 거두어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한미동맹을 파괴시키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손자의 병법은 멀리 한 채 어찌된 일인지 간첩을 잡아야 할 기구는 대폭 축소되고 법은 이완돼가고 있다.

북한이 내세운 민족공조라는 허구적 선전 문구에 현혹되어 우리의 정치는 적(敵)의 핵개발에 무감각해졌고 수십 년간 안보를 지켜왔던 한미동맹의 역할은 약화되어 가고 있다. 국가기밀 자료를 북에 넘기거나 친북반미 활동에 분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북한의 대남전략을 차단하고 그들의 주장을 거역하면 도발만을 부추길 것이라며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한다. 과연 우리에게 국가안보의 개념은 있는 것일까.

(위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