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적은 군사로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적 전투력의 우위로 싸우라고 했으며 그 예로 박망파 전투를 언급했다. 이 박망파 전투는 요즘 젊은이들의 삼국지 컴퓨터 게임에서 아주 중요한 전쟁 국면으로 다루고 있어 게임 마니아들의 전투기술은 제갈공명보다 한 수 위에 있다고나 할까.

한편 이 박망파 전투는 판소리 적벽가에서도 다루고 있을 정도로 삼국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다 아는 전투다. 다만 분석의 시각만 다를 뿐이다.

때는 후한 말기,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던 유비는 조조에게 대패(大敗)해 근거지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형주 자사 유표에게 의탁해 신야성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마휘가 추천한 제갈량을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군사(軍師)로 모시게 된다.

한편 조조는 북방이 모두 평정되자 승상인 자신이 전권(全權)을 행사하며 자신의 친위세력들로 조정을 장악하고 남쪽으로 진군할 준비를 했다. 그리하여 조조는 부하 하후돈을 도독으로 삼고 우금,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대군을 주어 신야를 정벌하도록 명했다. 이때 유비의 군은 겨우 수천에 불과했다.
　
공명의 전략은 수적으로는 17 : 1, 절대적으로 열세한 전투력을 박망파의 좁은 지형과 갈대숲을 이용하는 계략으로 1 : 1,000 즉 일기(一騎)당천(當千)의 전투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철저하게 상대적 전투력의 비율을 높이는 전략이다. 구체적인 공명의 작전계획을 보면, 관우와 장비는 각각 군사 1,000명으로 박망파 왼쪽과 뒤쪽 산골에 매복하고, 또 관우의 양자 관평과 유비의 양자 유봉에게도 군사 500명을 주어 박망파 뒤 양쪽에 매복케 했다. 그리고 남은 군사 500명은 신야성을 지키도록 했다. 전 군대를 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이 같이 군사를 쪼개자 관우, 장비를 비롯한 많은 장수들이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이제 막 군사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공명의 능력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조조의 대군은 자그마치 10만이다. 먼저 조조의 맹장 하후돈과 유비군의 장수 조자룡이 맞섰다. 수세에 몰린 조자룡의 군대는 박망파로 불리는 좁고 험한 길로 도망가기 시작했고 하후돈의 군대는 이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공명의 유인전술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밤 안으로 신야성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맹세코 군사를 물리지 않겠다.” 하후돈은 자신감 있게 앞으로 밀고 나아갔다.
밤이 되고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 캄캄해졌다. 낮에 불던 바람은 밤이 되어 더욱 거세게 불었다. 파죽지세로 전진을 계속하던 하후돈의 군사들은 좁고 주변은 모두 마른 갈대밭인 박망파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이때 이상 사태를 판단한 하후돈 도독이 진군의 속도를 늦추고자 하였으나 큰 물길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하후돈의 군사들이 달리던 고삐를 늦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유비군이 함성과 함께 마른 갈대숲을 이용한 화공작전이 시작되었다. 강한 바람과 불길 속에서 조조의 대군은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밟고 밟히어 죽어 나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유비군의 조자룡이 반격을 가하고 자룡의 공격을 피해 도망을 치니 이번에는 관운장이 길을 막는다. 조조의 대군은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불길을 뚫고 필마단기로 달아났다.
삼국지연의에는 다음날 하후돈이 장수와 군사들을 모아 돌아갔으나 군사를 태반이나 잃고 마초, 군량까지 다 타버려 남은 것이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조조의 군대는 이 전투에서 3만 이상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손자는 구변(九變)에서 이렇게 말한다. 절지무류(絶地無留)며 위지즉모(圍地則謀)하며 도유소불유(途有所不由)하며 즉 메마른 곳에서는 머물지 말며 삥 둘러싸인 곳에서는 즉각 계책을 세우며 길이라도 가서는 안 될 길이 있다. 또 행군(行軍)편에서도 산이 험하여 감옥 같은 지형, 숲이 울창한 지형은 반드시 빨리 지나가든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였다. 지형(地形)편에서도 可以往 難以返을 曰 掛니 掛形者는 敵無備어든 出而勝之하고 敵若有備하여 出而不勝이면 難以返이니 不利하다. 그러므로 갈수는 있으나 돌아오기 어려운 곳은 적이 나를 이롭게 하더라도 나가지 말고 오히려 적을 나오도록 하여 공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화공(火攻)편에서는 極基火力(극기화력)하여 可從而從之(가종이종지)하라, 즉 불길이 치열할 때 공격할 만하면 공격하라고 하였다.
공명은 8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손자의 전략을 잘 이용하여 상대적 전투력의 우위를 만들어 냈고 조조군은 손자가 地形, 行軍, 九變, 火攻편에서 여러 번 강조했던 원칙들을 지키지 못해 수적으로 우세한 전투력을 보유했음에도 대패(大敗)했다.
어떻게 상대적 전투력의 우위를 만들어 내느냐가 승리의 비결이며 이렇게 부대를 이끄는 자가 곧 최고의 명장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