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 항상 필요로 했지만 수십년째 대나무를 다뤄왔던 지역 죽세공예인들 조차도 미처 생각해내고 만들지 못했던 ‘대나무안마봉’
첫 선을 보인 이래 웰빙시대에 걸맞는 ‘히트상품’으로 국내외에서 대단한 관심속에 인기를 끌었던 ‘대나무안마봉’을 만드는 이종필(45) 장인(丈人)을 만나 보았다.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 무정농공단지내 대자리 전문생산업체인 ‘추성산업’ 한켠에 자리잡은 작은 공방에서 만난 그는 대나무를 다루는 사람들 중에서는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본래 3D와 맥킨토시 등 첨단 컴퓨터 분야에 종사했던 터라 ‘전통’ 과는 거의 무관하거나 정반대쪽 전문가여야 맞는 일이었지만, 의외로 그가 대나무공예 장인으로 전통을 지켜가는 모습이 아주 특별해 보였다.

“본격적으로 대나무공예에 목숨 걸고 나선 것은 이제 겨우 8년차” 라고 밝힌 그는 객관적인 연륜과는 달리 대나무공예에 대한 깊은 조예와 열정, 그리고 새롭고 신선한 아이템은 수십년을 이 분야에 종사해 온 여느 장인들도 따라오지 못한 그 무언가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금새 알 수 있었다. 그와 한지붕 아래 한 베게를 베고 살고 있는 아내 전선희(41)씨 가문이 아주 오래전부터 대나무와 인연이 깊은 탓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의 고향은 경기도 시흥이고 처가도 인천이건만 그가 그리 연고도 없는 담양땅에서 대나무공예가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것은 ‘좋든 싫든’ 처가쪽 장인 어른 덕분이 크다고 했다.
손재주가 유난히 좋은 장인 어른이 이전에는 보통의 나무로 안마봉을 만들어 주위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했는데, 담양 전씨인 장인이 시제를 지내러 아주 오래전부터 담양에 자주 드나들곤 하다가 이 과정에서 장인께서 담양에 지천으로 널린 대나무로 안마봉을 만들게 된 것이 바로 ‘대나무안마봉’을 처음 만들게 된 동기라고 했다.

장인과 처가쪽 일을 틈나는 대로 조금씩 돕던 게 인연이 돼 IMF 이후 아예 아내와 함게 이 길로 나설 것을 결심하고 ‘대나무의 고장’ 담양으로 들어 온 것이 바로 8년여전이니, 이종필씨가 담양에 정착하게 된 바로 그 시점이다.

이후 그는 같은 컴퓨터 분야에 종사했던 아내 전선희씨와 함께 ‘대나무골 담양’에서 대나무공예에 열정을 쏟게되는데,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인간적인 어려움과 회의감도 느꼈다고 했다.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던 재정적 문제에서 부터 대나무 관련 종사자들과의 교감, 죽공예에 대한 고정관념, 고착화된 마인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속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착 초기 겪었던 숱한 어려움과 혼란을 극복하고 애초의 신념과 희망을 다시 갖게 만든 발판이 마련되는데 바로 아내 전선희씨의 작품이 지역의 대나무경진대회에서 큰 상을 받게 된 것.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아내가 지역의 죽공예전에서 ‘대상’ 이라는 큰 상을 받자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기도 해 한때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그런 일이 있던 얼마 후 결국 전국규모 공예대전에서도 입상, 순전한 ‘실력’임을 입증 할 수 있게 되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전통-첨단기법이 어울어진 竹공예 시도
전국규모 공예대전서 큰상 받으며 ‘인정’

그와 아내가 만들어내는 竹공예품들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느낌대로의 감(感)으로 만드는 게 아닌 전통기법에 근거한 철저한 연구와 오랜 시간의 준비과정을 통해 얻어낸 아이템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지극히 ‘전통적-과학적’ 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듯 싶다.
그가 “전통 竹공예도 과학” 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했다. 그가 만드는 대나무안마봉은 단순한 대나무봉을 붙여만든 안마도구가 아닌 봉의 크기와 길이, 타법 등에 따라 치료적 효과까지 감안한 건강기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과학이 접목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전통의 竹공예 제작기법에 과학적 효능을 가미한 것이 바로 '대나무안마봉‘ 이라 할 수 있다.

“죽공예품들이 아주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다양한 도구와 기술, 그리고 전통기법이 과학적으로 한치의 오차없이 접목되어야 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대나무안마봉만 하더라도 우선 보기엔 간단한 안마도구 처럼 보이지만 기다란 봉에 작은 봉을 맞추고 견고하게 고착시켜 건강도구로써 제역할을 하기까지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세심한 공정과 과학적 조합이 맞아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가 힘주어 말하는 ‘전통’ 과 ‘과학’ 의 접목은 그의 또다른 주력 죽공예품인 ‘찻상’에서 여실이 증명된다. 대나무로 만들어지는 찻상의 기본틀은 전통기법으로 제작되지만 대나무 표면에 새기는 각종 다양한 문양은 첨단과학이 동원된다. 즉, 컴퓨터를 활용한 레이저조각기를 이용해 세세하고 복잡한 문양까지 찻상을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전통기법인 낙죽을 활용한 문양을 가미하기도 한다. 작품에 따라 낙죽을 하기도, 레이저조각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전통기법과 첨단과학을 훌륭하게 조합한 최고의 작품이 만들어 지는 것인데 그 한 예가 바로 ‘나,너, 그리고 우리들’ 이라는 작품의 ‘3단 찻상’ 이다.
죽공예 동반자로써 함께 같은 길을 가고있는 그의 아내 전선희씨가 만든 작품에 접목한 기법이다. 이 역시 100%로 대나무로 만든 것이지만 새겨넣는 문양만 레이저조각기법을 활용한 작품.....아내는 이 작품으로 금년 전국공예대전에서 ‘입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찻상,차받침 등 다양한 茶공예품도 제작
담양죽세공예 맥 잇는 새 발판 마련되어야...

이종필 장인이 만드는 대나무 공예작품은 비단 ‘대나무안마봉’ 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찻상과 차(茶)받침, 茶걸망 등 다양한 茶도구를 비롯해 지금은 추억속의 물건이 돼버린 ‘30㎝ 대나무 자(尺)’ 등 몇가지 죽제품들이 있다. ‘대나무 자’ 는 30㎝짜리 보다는 한지나 한복 작업을 하는 藝人들이 쓰는 큰 자를 주로 많이 만들고 있다. 또한 소비자가 직접 주문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죽제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세세한 작업까지도 가능하게 해주는 다양한 첨단기계와 도구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다 우수한 작품성과 상품성을 접목한 죽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전통 죽세공예의 맥을 잇는 대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는 그는 “컴퓨터로 디자인하고 조각해 만드는 죽세공예품이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최고의 공예품으로 거듭난다면 이게 바로 사양화 되어가는 죽세공예의 맥을 다시 살리고 전승, 보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겠느냐”강조한다.
아울러“새로운 시도에 대한 곁눈질에 앞서 전통과 첨단 기법을 조화롭게 활용해 담양의 죽공예가 새롭게 자리매김 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하는 고가의 첨단 공예장비들과 대나무 원자재(안마봉은 왕대 3-4㎝가 주로 쓰임) 수급의 어려움, 생각보다 제값받기 쉽지않은 죽공예품 판로 등 재정적,여건적 고충속에서도 그가 여전히 죽공예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이제는 이 길이 꼭 가야만 하는 숙명처럼 다가온 신념이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광주의 하나 통합의원 전홍준 박사는 본인이 5년째 사용해 보고는 대체의학의 한 방안으로 대나무안마봉을 적극 활용중이다” 며 “대나무안마봉은 그저 안마를 하는 도구가 아니며 체질에 따라, 질병에 따라 각기 다른 때리는 타법이 있어서 웰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건강도구로 그 쓰임새가 아주 좋다”고 자신있게 자랑했다.

그는 앞으로 보다 큰 작업공방과 ‘대나무안마봉’을 활용한 건강체험센터를 갖는 게 소망이다. 개인 취향으로 차(茶)를 아주 좋아해 담양에서 나는 죽로차,대잎차,죽여차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차를 제공하면서 대나무안마봉으로 건강에 도움을 주는 건강체험교실 또는 건강체험테라피 등의 공간이 죽녹원 또는 대나무박물관 등에 마련된다면 얼마든지 군민과 관광객들에게 봉사할 생각에서다. / 장광호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