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해돋누리 차세대 소리꾼의 소리하는 모습 (좌)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인 송순섭 명창은 ‘적벽가’ 보유자로 담양의 박동실 명창의 내림 족보이다.

송 명창에게서 소리를 배운 젊은 두 예인이 용흥리 저수지 아래의 고즈넉한 한옥에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간 끝에 미남미녀 윤세린(28), 윤해돋누리(27) 남매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담양이 낳은 천재 박동실 명창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으며, 박 명창은 6.25때 월북했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탄압과 함께 50여년 동안 기능보유자나 후계자 지정이 없이 세월이 흘러 현재는 박동실 소리의 맥이 거의 끊긴 상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낱 같은 서광이 용흥리에서 비치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윤세린·해돋누리 남매가 용흥리 자락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 윤세린 차세대 소리꾼의 소리하는 모습 (좌)

한편 윤세린 소리꾼은 조상현 명창에게 사사를 받았다. 또한 송순섭 명창에게도 사사를 받았고, 송순섭 명창은 박봉술 명창에게서, 박봉술 명창은 김채만 명창에게서 사사, 김채만 명창은 담양이 낳은 소리의 천재 박동실 명창에게서 적벽가 중 ‘삼고초려’를 사사받았다.

결국 담양이 낳은 소리의 천재 박 명창이 월북한 이후 그에게서 소리 한 대목이라도 익힌 제자들은 세상에 드러내놓고 제자임을 말할 수 없었고 박 명창은 그렇게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런데 잊혀진 박 명창의 ‘적벽가’ 한 대목이 수난의 시대를 넘어 용흥리 저수지 아래서 새벽 빛처럼 되살아나 울려퍼지고 있다.

윤세린·해돋누리는 친 남매 간으로 현재 도립국악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후학 양성과 함께 명창으로 가기위한 소리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판소리의 세계에서는 35세가 넘어야 명창에 도전할 수 있고 명창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문화부 장관상을 수없이 휩쓸고 많은 전국대회에서 셀 수 없이 대상의 영광을 안았지만 이들에겐 ‘명창’의 칭호 대신 ‘젊은 차세대 소리꾼’이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윤세린 차세대 소리꾼은 5살부터 소리를 배웠고 윤해돋누리 소리꾼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소리에 입문했다.

어린 나이에 소리의 세계에 들어선 데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부모 또한 소리세계에 몰입하는 인생을 살다가 자신들의 꿈을 접고 그 기대를 자식에게 걸면서부터 두 남매는 어린 나이인 초등학교 중학교때를 친구보다는 방송활동과 공연활동으로 바쁘게 보내면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경험하기도 했고 그럴수록 판소리는 뗄 수 없는 생활의 전부가 되기 시작했다고….

중학교 때 이미 임방울 판소리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던 ‘젊은 차세대 소리꾼’ 남매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소리를 해서 그런지 이제는 삶이 소리고, 소리가 삶이다”며 “자면서도 소리를 하고 세수를 할 때도 소리를 한다. 소리 빼고는 할 것을 모른다”며 예인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넌지시 던져 주었다.

윤 남매는 특히 “유네스코에 등록될 정도로 위대한 우리 소리가 유독 우리 나라에서만 천대받는 이유는 우리 소리는 정통을 무시한 몇몇 소리 협잡꾼들에 의해 왜곡된 소리를 일반 사람들이 정통 판소리로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위대하고 끝없는 가치를 지닌 우리 소리가 ‘소리꾼’이라고 자처하는 몇 사람의 소리꾼에 의해 폄하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때 자리를 함께 한 판소리 애호가는 “박 명창의 제자였던 이날치 선생의 비석이 수북면에 있고, 현재 전남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권 모 명창 등이 고향 주민을 생각해 사비를 들여 1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하는데도 담양군은 예술의 진정성을 망각한 채 눈앞의 향응을 쫓아 제 식구 돌보는 데는 관심도 없다”며 “군에서 하는 행사들을 보면 식상한 프로그램과 판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만 무대에 오르는 것 같아 한심스럽게 느껴진다”고 혀를 찼다.

그는 또 “버마의 승려들은 불경을 전수하는 데 책이나 인쇄물이 아닌 ‘외우기 기법’으로 불경내용을전수한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외우는 것이 글자보다 더 정확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며 “판소리도 선생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따라 그대로 전수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판소리에서 계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작년 명절에 공연에 가본 적이 있는데 무대에 서서 판소리를 한다는 사람이 관객에게 ‘어떤 소리를 듣고 싶냐’고 묻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며 “판소리는 전수받은 대목이 아니면 할 수 없는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관객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한편 판소리는 배우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지며, 사설의 전달이나 널음새, 던음 같은 요소들이 판소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월산면 월산리의 이병욱(13), 이한슬빛(15) 남매는 이런 전수과정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며 이미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실력파 소리꾼이다.

실제로 이병욱 학생은 작년 12월에 있은 ‘KBS전국 어린이 왕중왕 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이병욱, 이한슬빛 남매를 가르치는 일이 더없이 보람있다’는 윤세린·해돋누리 남매 선생은 얼마 전에 있은 ‘법성포 단오제’ 판소리 전국대회 특설 무대에서 조상현 명창과 나란히 공연을 해 담양 소리꾼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정화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