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읍 천변리에서 대나무를 소재로 한 옻칠 다기(茶器) 등 창작아이디어 상품을 주력 생산하는 임경빈(49세)씨는 담양 죽세공예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선두주자이다.

60~70대 고령층이 대다수인 기존 죽세공예가들이 옛것을 고집하며 전통 죽제품 제작에 몰두해 왔다면 40대로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하는 임경빈씨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아이디어 공예품을 주로 만들어 왔다.

기자가 임씨의 작업 과정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의 작업실 겸 공방을 방문한 지난달 28일, 그는 관광상품 제작 틈틈이 전국 공예대전 출품을 목표로 죽공예품 창작아이디어에 골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적인 것을 선호하고, 먹고 살만 하면 새로운 것보다는 전통을 찾고, 또한 예술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지요. 저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것에 새로운 착상을 가미해 현대적 감각의 죽공예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실 한켠에는 지역 특산품 상가의 주문을 받아 최근 제작한 호루라기, 안마기, 악세사리, 주전자, 차통, 붓통 등 수십종의 아이디어 관광 소품으로 가득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1년여의 준비와 작업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내 놓은 ‘대나무 다기셋트’는 지난해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창작아이디어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공모전은 문광부의 주최로 16개 시도별 예선을 포함하여 8,350여 작품이 개발ㆍ출품될 정도의 규모나 권위에서 전국 최대 행사로 관광기념품의 상품화 및 판로개척, 글로벌 브랜드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대나무와 대뿌리를 이용하여 만든 그의 출품작은 대뿌리를 가공하여 대나무에 감아서 옻칠을 하여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리고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게 개발된 죽공예 명품이다.

기자가 작품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제작 과정에 대해 궁금증을 쏟아내자 잠시 작업을 멈추고 그의 또다른 작업장으로 안내했다.

“대나무 다기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큰 애로점는 대통에 금이 가는 것이죠. 이같은 단점 보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또 “편죽(片竹)이나 댓살을 절거나 엮어 만드는 일반 죽제품의 경우 3~4년생의 단단한 대나무를 써야 하지만 대나무 마디를 통째로 이용하는 다기(茶器) 제작의 경우 2년생 신죽을 써야 대나무에 금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통을 얼마나 얇고 매끄럽게 깍아 내느냐가 관건으로, 통상 대통 두께의 2/3이상을 깍아내고 정성스럽게 가공한 후 전통 옻칠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가 제품의 가격을 묻자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통상 3백만원 내외가 될 것”이라며 “완벽한 제품 생산을 위해 현재 막바지 보완작업을 거치고 있다”고 귀뜸했다.

대나무 다기 제작 과정을 일일이 보여 주며 작품 설명에 여념이 없는 임씨의 이마에 어느덧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임씨의 원래 고향은 남원이다. 그가 담양에 정착한 사연 또한 이채롭다. 70~80년대 대자리는 담양 죽제품 중에서도 가장 호황을 누리던 품목이었다. 대자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여년전 내심 대자리 유통을 크게 해볼 생각으로 담양에 왔는데 그때 나이가 29세였다.

그는 전국에 산재한 소매상에 담양 대자리를 공급하며 사업을 키워 나갔다. 천성이 부지런해 몇 년간 죽어라 발품을 팔아 전국을 누비며 착실히 돈도 모았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 들어 값싸고 편리한 합성수지 돗자리가 나오면서 급속도로 시장의 변화를 가져왔다.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대나무 돗자리의 수요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자 상인들은 자구책 마련을 위해 신제품 수지 돗자리에 손을 댔고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임씨도 이 대열에 편승했다.

한때 그도 담양에서 수지 돗자리를 취급해 상당한 돈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잘 나가던 돗자리 사업이 시장변화와 함께 부진을 거듭하고 새로 손을 댄 또 다른 사업도 자금난에 막히면서 그가 가진 대부분을 잃었다.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왔다. 비록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완전히 담양에 정착해 결혼도 하고 이곳에서 승부를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직접 죽공예품을 만들면서 자신도 미쳐 깨닫지 못했던 숨겨진 재능과 끼를 발견했다.

만든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때까지 새벽 1시든 2시든 잠자리에 들지 않을 정도로 독한 마음을 먹었다.

“고객이 원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은 어떤 것인지 항상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통 죽제품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현대인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매력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런 물건들이 돈이 되지요”
/ 김관석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