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면 두정리의 마지막 죽세공예가 정판남(68세)씨를 방문하는 길에 나선 지난 21일, 지리한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가 싶더니 목하(目下) 본격적인 무더위를 예고하는 듯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마을회관 앞 당산나무 아래 모정에선 마을 어르신들이 한가로이 한낮의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 기자가 할머니 한분께 “마을에 죽세공예 하는 집이 몇이나 돼나요?”라고 묻자 “그거 안 만든지 벌써 오래야. 뼈빠지게 만들어 봤자 하루에 3~4만원 벌이도 않되는데 그런걸 누가 한당가. 다 옛날 예기제”
이러한 두정리에서 죽세공예품을 만드는 사람은 정판남(68세)씨가 거의 유일하다.

“요즘 장마철이라 작업이 수월치 않아. 자칫 소홀하면 댓살에 곰팡이가 피고 말지”

한국에 녹차 붐이 한창 일어나던 1990년대 초반, 전국 다인(茶人)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차도구를 넣어 다니는 차바구니를 개발한 정판남(68세)씨는 “요즘 한창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장마로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없다”며 고충을 털어 놓았다.

그가 하는 작업이 앉아서 다리에 힘을 주는 작업이기에 하체에 무리가 온 것일까? 20여년째 고관절로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는 차바구니 만드는 과정을 일일이 기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죽세공예품을 만들기 위한 대나무는 자란지 3년이 된 대나무를 사용해야 해. 가을일을 끝내고 대나무를 구입하는데 30~50다발을 사오지. 한번 사온 대나무는 다음해 가을까지 써. 구정이 지나고 나뭇잎이 나올 때와 꽃이 피는 봄에 구입한 대나무는 좀이 슬어 버리기 때문에 사용을 못해”

또한 비구니 크기에 따라서 대의 굵기를 결정하는데 큰 바구니를 만드는데 대의 굵기가 가늘면 실용적이지 못하고 바구니가 작은데 굵은 대를 사용하면 보기에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게 크게 돈이 돼서 하는 것은 아니야. 평생을 업으로 알고 대나무를 만지고 살았지만 아직까지 변변한 집한채 장만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힘이 닿는데 까지는 해 봐야지. 나마저 그만두면 두정리에선 죽세공예의 맥이 끊기고 말건데 그져 착찹할 뿐이라네”

담양에서 사각형의 죽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정판남씨 외에 몇사람 되지 않는다 한다.

“둥근 모양은 만들지만 사각형은 쉽지 않지. 전에는 사각형 도시락 통을 만드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중국산이 들어 오면서부터 수요가 떨어져 이제 만드는 사람이 없어”

옛날에는 두정리 사람들이 담양 돈을 다 긁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정리의 죽제품 생산은 활발하였다.

바구니를 비롯하여 휴지통, 소형 과일바구니, 꽃바구니 등 소품을 만들었는데 모두 일본으로 수출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하여 번 돈으로 자식들 대학 보내고 논도 장만하였다. 마을 분위기 자체가 모두 죽제품을 만드니 이웃에서 만드는 것을 보고 곁에서 놀다가 배우게 되는 등 많은 사람들이 만들게 되었다.

두정리가 한창 번성하던 시기에는 약 130세대가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80여호만 남아 있으며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거의가 노년세대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 어린애들도 찾아 보기 힘들어 초등학교도 폐교가 되고 몇 명 되지 않은 애들은 소재지에 있는 수북초등학교에 다닌다.

담양읍 만성리 2구에서 출생한 그는 집안이 가난하였던 15~6살 때부터 죽세공예품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일본강점기에는 바구니를 만들지 않았다. 바구니 만드는 일은 해방후 일본에서 배워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죽세공예품을 만들어 이웃 간에 나눠 쓰곤 했는데 그 후에 담양시장에 나가서 팔게 되고 돈이 되니까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위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정씨는 1967년 군복무를 마치자 마자 무작정 상경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죽제품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낚시구덕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낚시가게에 납품하였다.

마침 일본에서도 낚시 붐이 일면서 주문이 밀려 한때 1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 지속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플라스틱 구덕이 나오면서 대나무 구덕의 수요가 급감했다. 대나무 색깔을 넣어 모양도 대나무처럼 만든 플라스틱 구덕은 기계에서 찍어내기 때문에 대나무제품보다 훨씬 쌌다.

플라스틱 제품과 대나무 제품은 고기가 잡히는 것이 달랐다. 그리고 플라스틱 제품은 햇볕의 열을 받으면 물이 뜨뜻해지면서 잡아 놓은 물고기가 죽어버렸다. 그러자 2~3년이 지난 후에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제 대나무로 만든 고기 구덕의 수요가 늘어 나려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낚시를 금지하여 낚시 인구가 줄어들고 고기 구덕은 팔리지가 않았다.

그런던 중 1974년도에 고향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홀로되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낙향했다.

지난 세월을 기자에게 담담히 털어 놓는 정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지긋이 눈을 감더니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기술을 가르쳐 주려고 해도 배울려는 사람이 없어. 어렸을 적 애비 고생하는 걸 지척에서 지켜본 자식들은 이제 그만 대나무 일을 놓으라 하지”

/ 김관석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