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립(方笠)은 삿갓의 일종으로 대나무로 만든 모자이며 주로 비가 올 때 우장으로 쓰거나 여름철 햇빛을 가리기 위해 썼다. 가는 대오리를 엮어 겉으로 하고 가장 자리를 사화변형하여 삿갓보다는 얌전하게 제작한 것인데 양쪽에 끈을 달아 턱에서 매도록 되어 있다. 드라마 사극에서 흔히 보듯 사람을 피할 때에는 이를 기울여서 얼굴과 몸을 가렸다.

전설에는 기자(箕子)가 나라를 잃고 동양으로 올 때 하늘이 보기 싫어서 만들어 쓰고 왔다고 하며 옛날 신라와 백제에서 사용했다 하여 나제립(羅濟笠)이라는 별칭으로 통한다.

방립의 모양은 꼭지를 뾰족하게 짠 다음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넓게 한다. 사람의 얼굴을 가릴 정도가 되면 마무리로 갱기를 한다. 그러나 방립에서 마무리는 삿갓을 썼을때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는 미사리(머리에 걸려 얹히는 둥근 테두리)를 꼭지 밑에 받쳐야 완성이 된다. 삿갓은 주로 농촌에서 비가 올 때나 햇빛 가리개로 썼기 때문에 농립(農笠)이라고 한다.

또한 승려나 방랑객이 주로 썼다. 부녀자의 경우도 외출할 때 썼는데 부인용은 크기가 작다. 방랑객으로 삿갓을 즐겨 썼던 이는 조선후기 풍자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을 들 수 있다. 삿갓은 요즘에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담양읍 백동리에서 십수년째 죽세공예에 종사해 온 여규범(57세)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나무모자의 명인이다.

때가 때인지라 그의 명성을 알고 전국 각지에서 쇄도하는 주문을 미쳐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일에 치여 산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 들른 지난 7일, 억수같은 장마비에도 아랑곳없이 부인과 함께 공예품 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그가 최근 만들어 낸 죽세공예품으로 가득한 4~5평 남짓 그의 공방이자 작업장을 둘러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손재주가 이처럼 정교하고 뛰어날 수 있을까”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작품 하나하나에 장인의 숨결과 열정이 깊게 배어 나 있었다.

그의 장기인 방립을 비롯하여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세종대왕에서 젊은 세종이 저자거리에 나설 때 썼던 품격높은 대나무갓 등 다양한 대나무모자와 등갓, 차바구니, 찬합, 대나무제기, 대나무가방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죽세공예품들이 그의 작업장 한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차례 취재요청 끝에 어렵사리 여규범씨를 찾은 이날은 마침 방립을 만드는 날. 기자는 방립 제작과정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마치 대올로 천을 짜듯 한올한올 촘촘히 엮어가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그의 손놀림을 따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빴다.

여규범 씨가 방립과 여타의 대나무 공예 일을 하게 된 것은 젊어서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를 하고 고향인 담양으로 돌아와서이다.

어려서 어른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밑천이었던 그는 우리의 생활속에서 사라져 가는 대나무문화를 재현하고 창작하면서 대나무공예의 맥을 지켜 나가고 있다.

여 씨는 주로 등, 바구니, 기타 여러 가지 죽제품을 제작하는데 특히 방립을 비롯한 대나무모자에서 누구보다 탁월한 솜씨를 자랑한다.

방립을 만드는 과정은 먼저 2~3년생 대나무를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채취하는데 봄이나 여름에 채취하면 대나무에 물이 올라 곰팡이가 나게 된다. 예전에는 자기의 대밭에서 나는 대나무를 썼으나 요즘은 대부분 대나무는 죽물시장에서 사서 쓰게 된다.

한때는 대나무밭을 생금밭이라 했을 정도로 수익성이 높았다. 요즘에는 수요층이 급격히 줄어 대나무밭이 감소 추세이다.

방립을 만들기 위해서는 댓살(대올)을 떠야 하는데 다른 제품을 만들 때보다는 대올이 가늘어 1~2mm 정도로 마치 국수처럼 보인다.

처음 시작 부분을 회공 짠다(전다)고 하는데 동그라미를 그리듯 엮어가 10개의 날대를 가운데 중심을 두고 서로 어긋나게 놓고 대올로 짜는 작업으로 회공을 짜 놓으면 바닥은 26Cm가 된다.

회공 짜기가 끝나면 10개의 날대는 20개가 되고 20개의 날대를 하나씩 가르게 되면 40개가 된다. 중간에 날대를 하나씩 더 넣어 가르면 80개의 날대가 되는데 절어 갈때는 공간이 촘촘해 지도록 따궁질을 한다.

작업은 틀에 끼워 놓고 절어 가는데 절 때는 두 개씩의 대올을 가지고 서로 어긋나게 엮어서 절어 나간다. 길이 30Cm가 되게 절고 나면 갱기를 하는데 갱기 작업이 끝나면 머리받침을 넣고 마무리를 하게 된다.

하루에 완성할 수 있는 방립의 양은 아무리 손이 빨라도 3~4개 정도가 고작이다. / 김관석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