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전체적으로 대나무가 분포되어 있으나 죽물(竹物)하면 당연 담양을 꼽는다. 그 이유는 담양의 기후와 토질, 강우량에 알맞은 왕대, 솜대(분죽), 조릿대가 어느 지역보다 잘 자라기 때문이다.

또한 죽질이 강하고 탄력, 활력성(쪼개짐)이 좋아 조선 초기부터 대나무 명산지가 되었다. 온 마을이 분업으로 대를 잘라 쪼개는 집, 엮는 집, 낙죽하는 집들이 가업 또는 부업으로 대나무 공예품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담양의 죽물시장은 300년 이상의 전통이 있다. 장날인 2일과 7일 이른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각 마을에서 소쿠리, 바구니, 갓, 키 등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달구지에 싣고 나왔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죽제품을 도매하는 중간 상인들로 거래가 새벽부터 이루어져 6~7시면 성시를 이루고 정오 때면 파장이 되었다.

그런데 70년대 중반부터 산업화에 따른 PVC산업이 생활환경의 변화를 가져와 대나무공예 산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풍부한 원자재와 값싼 노동력의 수입제품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본지는 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고장 전통 죽공예의 명맥이 자칫 수년내에 끊길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 속에 바구니, 광주리, 소쿠리, 채반, 대자리 등 아슬아슬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고장 전통 죽제품 제작의 숨은 장인을 찾아 그 현주소를 진단해 보고 전승의 해법은 무엇인지 찾아 보고자 한다.

무정면 봉안리에서 수십년째 죽제품을 만들어 오고 있는 김갑수(69세)씨는 대바구니의 명인이다.

값싸고 편리한 플라스틱 제품이 홍수를 이루는 요즘이지만 자연성을 지닌 대나무는 인공의 화학제품이 따르지 못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어 김갑수씨가 만든 대나무 제품은 아직도 옛 것을 고집하는 애호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물론 그가 만드는 대나무 제품이 비단 바구니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바구니는 일반적으로 대를 둥글고 속이 깊게 만든 그릇으로 물건을 담는데 쓰이지만 대조각을 여러개 겹쳐서 만든 것으로 음식물을 담아 두거나 악세사리 소품 등 잃어 버리기 쉬운 물건을 담아 놓는데 유용한 광주리나 식료품을 담아 두거나 물로 씻은 식품을 담는데 사용하는 소쿠리 등 옛날 서민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대나무 그릇들이 그의 손을 거쳐 명품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농번기철인 요즘 김갑수씨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논밭에서 보낸다. 그가 철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반세기 가까이 천직으로 여기고 만들어 온 대바구니는 이미 농한기의 부업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나마 급격한 수요 감소로 읍내 죽제품 상가의 주문을 받아 틈틈히 작업을 하고 있다.

마침 김갑수씨의 응접실 겸 작업장을 찾은 6월 어느날. 해가 길어 거의 저녁 8시가 다 돼 논일을 마치고 귀가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수차에 걸쳐 전화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딱히 보여 줄것이 없다”며 정중하게 취재를 거절했던 그를 끈질기게 졸라(?) 겨우 승낙을 얻어 낸 터라 긴장감이 앞섰다.

김갑수씨는 구리빛 피부에 단단한 체구로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였다. 기자가 대뜸 건강의 비결을 묻자 “모르긴해도 평생 대나무를 만지고 산 덕분이 아닌가 싶제. 지금까지 이렇다할 병치레 한번 한적 없고 이것(대바구니) 만들어 집안 건사하고 자식들 모두 반듯하게 키워 냈으니 결코 밑진 장사는 아니였다고 볼 수 있제”

김씨는 지난 수십년의 세월이 아쉬운 듯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어느덧 눈시울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불과 3~40년 전만 해도 동네 전체가 대바구니를 만들었제. 그때는 만들기가 바쁘게 팔려 나갔지. 지금은 다 그만뒀어. 하루내내 뼈빠지게 만들어 봤자 기껏 4-5만원 벌이가 될까말까인데 누가 이런걸 할려고 하겠나. 그나마 매일 주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런 김갑수씨가 요즘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은 단한가지. 이제 마을에서 단 한사람 남은 자신마져 이 일을 그만두면 과연 이대로 대바구니의 명맥이 끊기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다.

“지금이야 크게 돈 되는 것 아니지만 아직은 힘이 남아 있으니 힘이 닿는데까지 해 볼 생각이지만 누가 요즘 세상에 이걸 배울려고 하겠나. 앞으로가 걱정일세”

기자는 김갑수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문득 지난 대나무축제 기간 중 대나무박물관에서 만난 한 관람객이 떠 올랐다.

“아이들에게 죽제품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싶은데 그건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나요? 대바구니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담양에 왔는데 어디에 물어 봐도 찾을 길 없내요” / 김관석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