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 보건진료소는 주민들에게 있어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죽을 병이 아니면 감히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웬만한 질병은 진료소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시대가 바뀌어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병원문턱이 낮아지고 의료기술이 첨단을 걷고 있는 요즘이지만 아직도 보건진료소는 몸이 아픈 농촌 주민들의 소중한 안식처이다.

금성외추보건진료소. 아담한 건물 규모에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박영숙 소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상담 컨설턴트 역할도 수행.

쾌적한 환경의 물리치료실은 외추진료소를 찾는 마을주민들에게 최고 인기다.

▲금성외추보건진료소 박영숙 소장
금성면 외추리 마을 안쪽에 포근히 자리잡은 외추진료소는 아담한 규모에 건물 외관부터가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4년전에 신축됐다는 진료소에 들어서자 진찰실, 물리치료실, 휴게실 등이 한눈에 들어 왔다.

오후 5시를 훨씬 넘긴 늦은 시간인데도 물리치료실에는 동네 주민들로 한창이었다.

마침 환자 진료를 끝낸 박영숙 소장이 포근한 미소로 반갑게 기자를 맞이해 줬다.

“이곳에 근무한지는 얼마나 됐나요?”

“1983년, 이 건물 맞은편 구 진료소에서 첫 진료를 봤습니다. 그때는 의료시설도 변변치 않았고 길도 포장이 안돼 험했죠. 그렇지만 순박한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같이 한지 벌써 26년째입니다.”

옛날을 회상하는 박소장의 얼굴엔 당시의 애환과 애정이 스며 있었다.

외추진료소의 관할구역은 대곡 1,2,3구와 봉황리 3개 마을, 외추리 등 마을단위 9개 부락이다.

이 지역도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거의 떠나고 오래 전에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

박소장은 매주 월,수,목 오후가 되면 직접 자신의 차를 몰고 관할 지역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한다.

교통편이 여의치 않거나 연로하여 거동이 힘든 노인들을 직접 찾아 나서 건강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그녀가 승용차를 장만한 10여년 전부터 한주도 거르지 않고 지속해 왔다니 그 정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박소장은 진료소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애로사항이나 개인적인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상담 컨설턴트의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가족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나 시시콜콜한 신변잡담까지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1980년대~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 등 도회지에 나간 자녀들이 부모들이 일터에 나가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김없이 박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거나 안부를 부탁하기도 했다한다.

“저는 지금의 이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 비록 직업으로 이 일을 택하게 됐지만 정년을 맞을 때까지 이곳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라고 그녀의 소박한 바램을 전했다.

마침 물리치료를 마친 할머니 한분은 “여기 오면 이처럼 편할 수가 없제. 박소장이 없으면 어쩐지 허전하당께”

월산복정진료소 김정숙소장이 물리치료중인 지역주민들의 몸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복정진료소는 마을 주민들에게 사랑방처럼 포근한 느낌을 준다.

▲월산복정진료소 김정숙 소장
농한기철을 맞은 복정진료소는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동네 할머니들로 발딛을 틈이 없었다.

올해로 16년째 복정진료소를 지키고 있는 김정숙 소장은 물리치료와 환자진료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 평균 진료자수는 몇 명이나 됩니까?”

인터뷰를 청하기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 50명정도입니다. 지금처럼 농한기에는 물리치료를 위해 찾아 오는 사람이 훨씬 많지요”라며 김소장이 물리치료 환자를 돌보면서 짤막하게 대답했다.

“농촌 보건소의 역할이 종래의 치료위주에서 질병의 사전예방 등 건강증진정책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복정진료소의 경우는 어떤가요?”

“비록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노인층인 농촌 주민들은 의료비를 가장 부담스러워 하지요. 현재 진료비는 900원입니다.

이 비용으로 주사에서 약처방까지 감기, 신경통 등 어지간한 질병은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주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요”

김소장의 관할구역인 월계리, 오성리, 광암리 등에는 68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진료소에서 가까운 용면 주민들까지 이곳을 찾아 온다고 하니 “김소장, 혼자의 힘으로는 다소 벅차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요?”

“진료가 집중하는 요즘같은 농한기(12월~2월) 시즌에 많은 환자를 한꺼번에 접하다 보면 자칫 진료에 소홀한 점은 없는지 환자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작년에 부임한 담양보건소 염권철 소장님께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주고 지원을 해 줘서 큰 힘이 되고 있지요.

사실 이번 농한기때도 인력이 딸려 고심했는데 보건소의 배려로 한분이 의료지원을 나와 줘서 지역 주민들도 몹시 좋아하고 있습니다”

김소장은 인터뷰가 끝나기가 무섭게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주민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몸상태를 점검하며 무언가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기자는 문득 취재를 마치며 농촌 보건진료소장인 그녀들이 마치 1인 2역 아니 1인 3역의 슈퍼 우먼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 김관석 記者 kskim325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