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5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7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가 ‘정치리더십과 미래비전’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촛불시위 무시하면 해결책도 안 보인다”

“1960년 UCLA에서 침팬지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조사연구를 한 적이 있다.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침팬지 중 지도자와 추종자 그룹의 생물학적 차이를 규명하는 조사연구였다. 채혈(採血)을 해보니 지도자 그룹에 속하는 침팬지에게서 WBC(백혈구)가 더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1970년에는 아이오와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했다. 우선 문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대응에 따라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하며 지도자 그룹과 추종자 그룹을 분류했다. 그런 다음 채혈을 해보니 역시 지도자 그룹에서 더 많은 WBC가 분비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니까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채혈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 WBC가 적은 사람이 정치를 하다가는 패가망신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학교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가 이렇게 강연의 서막을 열자 청중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리더십 발휘가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분야인 정치는 일정하게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김 교수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김 교수의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자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환경)이다. 특히 대통령에게 그것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리더십에 대한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는데, 이것을 깨뜨려야 한다. 우선 리더십을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자질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리더십은 상황과 자질이 상호 작용하면서 구축되는 것이다. 추종자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해 과제 해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일방적 지시, 명령, 통제로 상징되는 강한 권력과 카리스마가 있어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1987년 이후 등장한 5명의 대통령이 모두 실패했거나 실패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권력만 행사했을 뿐이다.”

민심은 왜 이명박 정부에 등 돌렸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 초기 지지율은 90%를 상회했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이르러선 8%까지 추락했다. 반면 레이건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에 인기가 낮았지만 후반기에 상황을 반전시켰다. 두 명 모두 임기 8년 중 6년이 ‘여소야대’라는 악조건의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말이다. 지도자의 다른 상황 인식과 대응이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이명박 정부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도 안 돼 대통령 지지도가 20% 대로 하락했고,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대통령이 세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100일 시기와 비교할 때 전례가 없는 기현상이다. 대선에서 531만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한 후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48.7%의 득표율로 약 1150만 표를 획득한 것을 감안한다면 대선 이후 다섯 달 만에 무려 500만 표 이상이 이탈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전대미문의 현상이 벌어졌을까. 무엇보다 먼저 역대 정권이 보여준 ‘실패의 법칙’에서 배워야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민심이 이반할 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김 교수는 △통치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 △선거 연합과 통치 연합 간의 부조화 △국민들의 ‘기대상승’에 대한 충족 미달 △국정 운영 철학의 방향성 결여 △국민 체감의 실용적 리더십 구축 실패 등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이것을 ‘민심 이반의 법칙’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자신이 처한 통치 환경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도취되었다. 통치 환경의 측면에서 볼 때 어느 정권이나 장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성공적인 집권을 위해서는 특히 약점과 위협의 요소를 철저히 파악하여 사전에 문제 여지를 해소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장점과 기회의 요소에만 집착하고 치중하는 우를 범했다. 우선 경제 회복은 일거에 개선될 수 없는 것임에도 이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엄청났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지역과 이념에 기반한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층은 취약했다.”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 때문에 38.8%의 지지를 보냈던 호남, 수도권 자영업자, 40~50대 등이 빠르게 지지 대열에서 이탈한 것도 이런 요인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김 교수는 선거 연합과 통치 연합 간의 부조화도 지적했다. 한나라당 내에 최초로 의미 있고 실체 있는 비주류(친박세력)가 탄생했지만 현 정부의 주류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민심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은 가장 취약했지만 경제 회복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에 선거에서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그것을 도덕성 문제에 대해 모두 용서 받은 것으로 인식한 것은 큰 착각이었다. MBC와 한국갤럽이 지난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가 가장 조심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청렴성’(25.7%)과 ‘독선’(24.3%)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강부자’와 ‘고소영’ 인사로 화답했다. ‘현 정부가 경제 문제와 관련해 가장 주력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책’(24.5%)이 ‘친기업 정책’(8.1%)을 압도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놓았다.”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10가지 방법

김 교수는 촛불시위에 대한 이해 부족도 꼬집었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쇠고기 협상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민심이 등을 돌린 매개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도리어 문제의 핵심은 이 대통령이 인사, 외교, 정치, 경제 등에서 실책을 거듭하며 스스로 신뢰와 권위를 상실했으며, 그 결과 국민들이 통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국 60주년을 맞은 한국은 근대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독특한 문화가 정착됐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작용했다. 이와 관련 1997년 노동법 파동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노동계는 대정부 투쟁에서 승리하는 최초의 경험을 했다. 이를 계기로 약자도 뭉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연인원 500만명이 집결했던 2002년 월드컵도 대중이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서원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학습 효과를 제공했다. 효순·미선, 노사모, 탄핵 당시 연출된 촛불시위는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경험은 대중의 정치참여 형태까지 ‘타율과 동원’에서 ‘자발과 능동’으로 바꿔 놓았다. 이러한 사회변동을 애써 무시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패착이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가 회생할 수 있는 길은 있는가? 이와 관련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은 ‘정치리더십 10계명’을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긍정의 리더십(긍정적인 역사의식과 철학을 가져라), 화합의 리더십(정치 과잉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국민 체감의 과학적 리더십(국민 요구 어젠다와 정치 어젠다 간의 조화를 이루어라), 설득의 리더십(신성한 권위를 유지하라), 섬김의 리더십(겸손을 최우선으로 하라), 분권의 리더십(권력분산 시대의 새로운 통치 원리를 구축하라), 소통의 리더십(정직과 배려가 살아 숨 쉬도록 하라), 위기관리의 리더십(위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라), 원칙의 리더십(원칙을 끝까지 지켜라), 통합의 리더십(선거를 치르듯이 통치를 하지 마라)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상대방을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소아적 정치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집권 초기에 얻어맞아서 다행’이라며 자위해서도 안 된다. 거기에는 시간만 흐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지도자로서의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이 없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여의도통신 정지환 기자

김형준 교수의 이력서

▲ 미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문교수
▲ 한국매니페스토운동실천본부 자문교수
▲ 서울시 정책자문단 위원
▲ 경실련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 한국선거학회 회장
▲ 한국정치학회 이사
저서: <노무현정부에서 참여정치의 신장과 한계>, <한국의 선거Ⅴ, 한국의 대통령리더십과 국가발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