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그럼 우린 언제까지나 개발도 하지 말고 천천히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건 아니겠지”
설명을 위해 적절한 것을 찾아보자 의외로 답은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 전라도에만 있는 ‘확독’이 바로 답이었다. 주로 반찬이나 국거리의 국물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확독’은 나무절구와 달리 공이로 찧지 않고 맨질맨질하고 주먹만한 돌로 재료를 갈아낸다는데 특징이 있다. 물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돌을 깎아 만들며 돌로 만든 절구통이라 생각해도 될 듯하다.
지금도 전라도 가정이라면 집집마다 하나씩은 꼭 있는데 한 쪽 구석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한 곳이 많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네 어머니들은 들깨를 갈고 고추를 갈고 콩을 갈고 아무튼 맛을 내는 데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신념하나로 ‘믹서기와 도깨비방망이’를 제쳐두고 아직도 확독에 재료를 넣어 갈아 맛을 낸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눈치 챘을 것이지만 ‘슬로시티’란 바로 ‘도깨비방망이’를 놔두고 ‘확독’에 콩을 넣고 갈아 콩물국수를 만드는 것이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래 ‘슬로푸드’ 개념에서 발전한 ‘슬로시티’는 그 지방을 대표할 수 있는 ‘슬로푸드’ 하나쯤은 있어야 슬로시티로 지정되는데 수월하다.
그런데 이 ‘슬로시티’가 관광지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원천적으로 관광지와 슬로시티는 상반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않나. 외국에서는 모두 ‘슬로시티’가 성공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 과제를 풀어가야 하나.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이 과연 독인가 약인가?”

슬로시티

슬로시티운동은 1999년 10월 15일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오르비에토에 그레베 인 키안티市와 브라市, 포시타노市 등 슬로푸드 운동을 벌이고 있는 4개 도시의 시장들이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한 이후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며 ‘웰빙’추세와 함께 세계적인 트렌드로 입지를 굳혔다.
그동안 10개국 93개 도시가 슬로시티 국제연맹에 가입됐으며 작년 우리나라 가입으로 11개국 97개 도시로 확장됐다.
전남도는 슬로시티 지정을 위해 2006년 3월 슬로시티 국제연맹 창시자 파올로 사투르니니 시장을 초청해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작년 4월 슬로시티 유치 신청서를 국제연맹에 제출했으며 2007년 9월 7~8일(2일간) 실사를 거쳐 담양군 창평면과 장흥군 유치면, 신안군 증도면, 완도군 청산면이 최종 확정했다.
앞으로 전남도는 Slow city가 지정된 4개 지역을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 그 지역만의 브랜드로 육성시켜 주민소득과 웰빙문화를 접목시켜 나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슬로우 푸드

세계적 관심사인 슬로우 푸드(slow food)란 말은 그대로 패스트 푸드(fast food)에 반대되는 의미로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가 속도와 효율성을 최고시하는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음식이라면, 슬로우 푸드는 만드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성이 깃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자는 것이다. 빠르고 자극적인 맛을 내지만 수많은 성인병의 원인이 며 비만의 주범인 패스트 푸드를 배제하고, 인간이 먹는 음식 본연의 의미를 살려 사람을 살리는 먹자는 운동인 셈.
슬로우 푸드 운동가들은 우리의 전통 음식의 80퍼센트 이상이 발효 음식인 슬로우 푸드라고 조사한 바 있는데 장류(고추장, 된장, 청국장)을 비롯해 김치류, 젓갈류, 민속주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깃든 전통음식이나 재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화학비료나 유기합성농약 등 일체의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유기농산물, 즉 오가닉 푸드도 일종의 슬로우 푸드로 볼 수 있다.
슬로우 푸드 운동은 1986년 대표적인 패스트 푸드인 맥도날드 햄버거의 로마 진출에 반대하여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현재 40여 개 국에 7만 명의 회원을 가진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됐다. 1989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모임을 갖고 ‘슬로우 푸드 선언’을 승인하고 느림 그 자체의 상징인 달팽이를 심볼로 선정했다.

왜 ‘슬로시티’인가


언제인가부터 ‘빨리 빨리’라는 말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말이 돼버렸다. ‘빨리 빨리’ 일을 하면서도 정확하게 그것도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빨리 빨리’病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결국 안 좋은 이미지를 주기 시작했고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감내하게 했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빨리 달려가면 갈수록 삶이 여유로워지기는커녕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 당한다.”고 했다.
그러나 혹자는 IMF환란의 원인인 ‘일찍 터뜨린 샴페인’論을 지적하며 “우리나라가 아직은 천천히 살 때가 아니다”라고 말 하며 ‘일리 있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슬로시티’는 국가적 시대흐름을 느리고 천천히 하자는 것이 아닌 ‘속도전’에 내몰린 도시민들을 위해 그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순수한 음식을 제공하며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도록 휴식처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작년 한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휴가는 90%가 여름에 몰려 있다고 한다. 때문에 휴식을 위한 휴가가 아닌 ‘돈쓰기’ ‘생색내기’의 ‘사람구경하는 휴가’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관광지 제공이 아닌 ‘진정한 휴식처 제공’의 ‘슬로시티’야 말로 21세기가 원하는 관광트렌드임에 틀림없다.
이에 ‘슬로시티’로 지정된 4개 지역을 답사하고 현황과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 개선방안, 대안제시에 중점을 두고 풀어나가 본다.

1. 증도 -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짱둥어 다리에서 바라본 증도의 하늘

◇‘접근성’ 아직까지 ‘ZERO’


▲지신개선착장에서 만난 노점상 중국산 시계를 팔고 있었다. 멀리 건설중인 연도교의 교각이 보인다.

증도로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인 지신개선착장. 무안에서 이곳까지의 도로는 왕복 2차선 도로로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선착장까지의 도로변 경관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둘로 나눈다면 주택이나 창고 등 인위적인 것들의 느낌은 낡고 오래되 고풍의 맛을 풍긴다기보다 지저분하고 정리돼야 할 것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먼발치의 자연풍경만이 해안선의 느낌을 전달했으며 약간의 짠 냄새가 바닷가 옆에 있음을 알게 했다.
지신개선착장까지의 여정이 ‘보통’이었다면 지신개선착장의 풍경은 ‘낙제점’이었다. 시골의 투박한 전경이 그대로 투영되길 원했다면 의도한 데로 됐지만 콘크리트로 도배돼 밋밋하기 그지없던 그 곳은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원대한 꿈’을 가지 곳이라 하기에 ‘매우 빈약하다’는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선착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지도~증도간 연륙교 교각이 공사완공(완공 2010년 12월)을 암시하고 있어 곧 원활한 교통이 이루어 질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때문에 선착장의 쇠락함은 ‘용도 폐기’의 수순 밟기로 이해돼 더욱 삭막해 보였다.

▲ 증도 외에도 신안군 전체가 연도교와 연륙교 공사로 건설 붐이 일고 있다.

◇연륙교 - “슬로시티에 敵인가 동지인가”

“분명 여행목적지까지의 여정도 여행의 큰 부분이다. 그런데 증도까지의 별다른 콘텐츠가 없는 상황에서 연륙교 이용이 주는 得이 클까 失이 클까?”
결국, 답은 여행객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슬로시티’를 내걸고 여행객을 부르는 책임있는 행정주체라면 슬로시티 본연의 주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차는 섬 밖에 두고 오세요”를 권유해야 한다.
더욱이 관광객 입장에서 섬에 갖는 느낌이란 흔히 육지와 격리되어 섬만이 가지고 있는 정적인 분위기, 작고 예쁜 통통배, 갯벌, 모래사장 등을 연상할 터인데 배를 타지 않고 섬에 들어간다는 것은 ‘앙금 없는 찐빵’과 다름없다.
이런 차에 연륙교가 개통된다면 과연 ‘슬로시티’가 ‘슬로시티’로 존재할 수 있을까.
섬 안의 생활과 문화, 환경에 변화를 가져다 줄 연륙교는 섬 주민들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안군이 표방하는 ‘슬로시티 증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뱃시간과 버스가 선착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연계돼 있다. 섬에서 나온 주민들이 지도에서 장을 보고 와 트럭에는 열무와 무 등 각종 채소가 실려 있었다.

◇결국 또 ‘발상의 전환’

슬로시티의 개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안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 관광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면 “뭘 두고 슬로시티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불만만 듣게 될 것이다.
현재도 슬로시티로서의 내용은 하나도 없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슬로시티로 지정만 됐지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갯벌축제, 소금채취축제 등 갖가지 축제를 여름 휴가철을 맞아 내놓고 있는 증도는 벌써부터 ‘이렇게 할 바에야 뭐 하러 슬로시티를 표방하는지 모르겠다’는 관광객들의 의구심을 듣고 있다.


다른 지역의 일반 관광상품과 전혀 색다른 점이 없고 식당에서의 친절이나 숙박업소의 준비 또한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차타고 들어가는 섬’은 관광객에게 섬 특유의 정감을 표출할 수 없고 이러한 개념부재의 개발은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4곳 모두에 치명적 악영향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다시 ‘발상이 전환’이 귀결점. 주민들과 또 차량을 고집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연륙교를 놓더라도 ‘관광객을 위한 통통배’는 운영해야한다고 판단된다.
적어도 ‘슬로시티’를 표방하는 곳이라면 관광객들에게 슬로시티 개념에 부합하는 여행코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슬로시티 관광제공자의 의무이고, 슬로시티의 주제를 살리지 못한 슬로시티라면 슬로시티를 아무리 외치더라도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 때문이다.

◇소금 - 2% 부족하다

슬로시티가 본래 슬로푸드에서 개념 확대된 것이라 소금과 슬로푸드의 개념이 부합해 슬로시티로 지정됐을 것인데 이 소금, 소금이 약간 싱겁다. 아니 약간 약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실제 슬로시티를 찾은 관광객에게 소금 박물관 안에서 소금에 둘러 싸여 소금과 슬로시티의 연관관계를 장황하게 설명한들 쉽게 이해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슬로시티의 표현이야 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그런데 E리조트만 뺀다면 탁상행정이 낳은 ‘껍데기 관광상품’만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증도갯벌 생태전시관’
갯벌 옆에 생태전시관을 지어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갯벌의 생태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은 인정하나 E리조트 옆에 있어 리조트와 한 건물로 오인하기 쉽고 또 하룻밤 2인1실에 17만원하는 방값을 지불하면서 지내야 하는 리조트를 이용할 수 없는 관광객들은 리조트에 갈 일이 없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위치의 편협성은 리조트를 위한 행정의 배려가 아닌지 의구심을 낳게 하며 굳이 갯벌 옆에 갯벌생태전시관을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또 그런 전시관보다 파고라나 벤치 등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증설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짱둥어 다리

/서영준, 한얼 기자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