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55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7월 3일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에서 민경조 코오롱그룹 부회장이 ‘고전의 숲에서 리더십을 찾다’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왕은 바꿔라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조직이 형성되고, 조직이 형성되면 자연히 리더가 탄생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가 바로 리더십(Leadership)이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십이 바람직한 리더십일까? 자신을 “논어를 읽고 또 읽는 사람”(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1천회 이상 읽었다고 한다)으로 소개한 민경조 코오롱그룹 부회장은 요순시대의 통치조직을 사례로 들었다.

“고대중국에서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요순시대의 통치조직은 어떤 형태를 취했을까? 설원(說苑) 군도편(君道篇)에 따르면, ‘요(堯) 임금은 3공(公), 9경(卿), 27대부(大夫), 81원사(元士)로 구성되는 피라미드 조직을 통해 철저한 위임정치(委任政治)를 했다’고 한다. 요 임금 스스로는 구체적인 업무를 하나도 담당하지 않았지만 사도(司徒), 사마(司馬), 사공(司空), 전주(田疇), 악정(樂正), 공사(工師), 질종(秩宗), 대리(代理), 구금(?禽) 등 9개의 분야에 각각 9명의 사람을 임명해 9가지 성취를 이루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을 아는 것은 왕도(王道)이고, ‘일’을 아는 것은 신도(臣道)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나아가 ‘이런 구법(舊法)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천하는 잘 다스려지게 마련’이라고 설원 군도편은 역설하고 있다.”

여기서 9개의 분야 중 사도는 교육을 맡은 관직이다. 아울러 사마는 군무(軍務), 사공은 토지와 민사, 전주는 농업을 담당하는 관직이다. 그리고 악정과 공사는 각각 악관(樂官)과 공인(工人)의 우두머리이며, 질종은 예를 관장하는 우두머리 즉 예관(禮官)이다. 또한 대리와 구금은 각각 천자의 업무를 관장하는 관직과 짐승을 몰아내는 일을 관장하는 관직이다.

“비록 설화에 나오는 인물이긴 하지만 요 임금이 벌써 4000년 전부터 나라를 다스리면서 분야별 전문가를 임명해 위임통치를 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래서 후세의 사가들이 바람직한 통치형태를 인위적으로 제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요 임금의 신하 중 한 명으로 왕위까지 이은 순(舜) 임금도 비슷한 고사를 가지고 있다. ‘애쓰지 않고도 잘 다스린 사람은 순 임금이라 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였겠나?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쪽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을 따름이었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已矣).’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순 임금의 리더십 역시 강력한 직할통치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순시대는 왜 태평성대로 불렸나?

순 임금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남쪽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민 부회장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 신뢰가 없었다면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아가 “그것은 임금이 솔선하고 성실한 자세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신뢰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논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지도자의 처신이 바르면 명령을 하지 않아도 이행하지만 지도자의 처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자로편(子路篇)에 나오는 이 구절이야말로 리더의 솔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장 잘 말해주는 표현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해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시사적이다. 여기서 앞의 단어는 명사(임금), 뒤의 단어는 동사(임금답다)이다. 역할분담을 통해서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분업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신하가 할 일을 임금이 챙기면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될지 몰라도 결코 현명한 군주는 될 수 없다.”

민 부회장은 ‘분업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두 개의 명제를 동원하기도 했다. 첫 번째 명제는 “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 중 빗변이 아무리 길어도 남은 두 변의 합보다 짧다”는 수학의 원리였다. 두 번째 명제는 “능력의 차이가 현격한 변호사와 여직원이 한 사무실에서 공존하는 것은 비교우위 생산비의 법칙 때문이다”라는 경제의 원리였다. 다음은 그의 부연 설명이다.

“혼자의 힘보다는 조직의 힘이 더 강하다. 따라서 한 조직의 지도자가 모든 일을 혼자서 움켜쥐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경제적 시각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생산성의 저하나 원가의 낭비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런 지도자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은 시키는 일만 하게 되고 실패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수평적 분업은 물론이고 수직적 분업이 필요한 것은 우리 개개인에게 주어진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 하루에 24시간을 초과할 수는 없다. 뛰어난 법률지식을 갖추고 있는 변호사가 타이핑과 청소까지 하겠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위임통치 혹은 위임경영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민 부회장은 ‘신뢰’야말로 효율적인 역할분담의 기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것이 가정이나 동네 같은 작은 조직이든 기업이나 국가 같은 큰 조직이든, 신뢰는 무한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을 인용했다. 이 고사는 다음과 같다.

“자공이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子貢問政). 공자가 말씀하셨다(子曰). ‘정치는 먹을 것을 풍족케 하고(足食), 군비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民信之矣).’ 자공이 다시 물었다(子貢曰). ‘부득이하여 꼭 한 가지를 버려야만 한다면(必不得已而去)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리시겠습니까(於斯三者 何先)?’ 공자가 답했다(曰). ‘군비를 버려야 한다(去兵).’ 자공이 다시 물었다(子貢曰). ‘부득이하여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必不得已而去), 남은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리시겠습니까(於斯二者 何先)?’ 공자가 답했다(曰).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去食).’ 예로부터 누구에게나 죽음은 있었다(自古皆有死). 그러나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나라는 설 수가 없는 것이다(民無信不立).”

신뢰 혹은 믿음의 반대 방향에 있는 것이 불신 혹은 의심이다. “의심스러우면 그 사람을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그 사람을 의심하지 말고 맡겨라(疑人莫用 用人勿疑).” 민 부회장은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誠心篇)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국시대 진(秦)나라 재상 감무(甘茂)의 고사를 소개했다.

복자천의 리더십, 무마기의 리더십

“진나라 무왕(武王)이 재상 감무에게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함락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전쟁 패배의 책임만 뒤집어쓸 공산이 컸다. 감무는 무왕에게 ‘효자 증참(曾參)과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증참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자가 살인을 했습니다. 베틀에 앉아서 이 소식을 들은 증참의 어머니는 아들을 믿었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이나 같은 소식을 듣자 결국에는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습니다. 저의 어짊은 증참의 효심만 못하고, 임금의 믿음은 증참의 어머니만 못합니다. 신은 대왕께서 베틀을 내던질까 두렵습니다.’ 무왕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세상은 이것을 식양지서(息壤之誓)라 부른다.”

감무는 임금의 맹세를 받아내고 전장으로 나갔지만 초반 전황이 부진했다. 예상대로 비방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소환당하고 말았다. 무왕은 감무가 식양지서를 상기시키고서야 신뢰를 지키지 못한 자신의 과오를 뉘우쳤다. 다시 전장에 나간 감무는 한나라의 성을 함락시키고 개선했다. 신뢰와 그에 기반한 위임이 결코 말처럼 간단치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설원 정리편(政理篇)에 나오는 고사 하나만 더 소개한다. 복자천은 선보의 땅을 다스리면서 다만 거문고만 탔을 뿐이지만 그 땅이 잘 다스려졌다. 무마기가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까지 일했을 때도 그 땅은 다스려졌다. 그러자 무마기가 그 이유를 물었고, 복자천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사람에게 일을 맡겼고, 그대는 힘에게 일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복자천의 리더십이다. ‘제후가 국가를 위태롭게 하면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諸侯危社稷則變置)’는 맹자의 민본주의도 더불어 가슴에 새겨둘 일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민경조 부회장의 이력서

▲ 서울대 상학과 졸업
▲ 서울대 경영학 석사
▲ 1977년 (주)코오롱 입사
▲ 코오롱그룹 회장비서실 부장
▲ 코오롱건설 전무, 총괄부사장, 사장
▲ 코오롱엔지니어링 총괄부사장
▲ 코오롱개발 총괄부사장, 사장
▲ 월드와이드넷 사장
▲ 코오롱스포렉스 사장
▲ 그린나래 사장

상훈: 은탑산업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