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수업 또 수업 … 하루 18시간 계속
18세 소년들의 강행군 … “방과후학교도 수업의 연장일 뿐”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지훈이의 기상시각은 아침 6시30분이다.

졸린 눈을 부비고 힘겹게 일어난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며 겨우 남은 졸음을 몰아낸다. 대충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는 시각이 7시20분이다. 학교에 도착하면 7시35분.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7시50분부터 아침조회가 약 20분간 이어진다. 조금은 지겨운 20분간의 아침조회 시간은 지훈이에겐 어제 못한 과제를 하는 시간이다. 과제를 20분간 ‘벼락치기’로 끝내는 것이다.

과제시간(조회시간)이 끝나면 1교시가 시작된다. 8시10분에 시작되는 지훈이의 1교시를 어른들은 ‘0교시’라 부른다. 이어지는 3시간의 수업을 끝내면 지훈이에겐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황금 같은 시간이다. 모자란 잠도 자고,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밀린(?) 장난도 친다.

점심시간을 지나 3시50분이면 공식적인 학교수업이 끝난다. 하지만 지훈이는 학교를 떠나지 못한다. 방과후학교가 남았기 때문이다. 지훈이는 방과후학교의 목적이 ▲다양한 프로그램운영으로 학교의 교육기능 보완 ▲학교를 통한 다양한 학습 및 보육을 통해 사교육비 부담 완화 ▲계층간ㆍ지역간 교육격차를 완화하여 실질적인 교육복지 구현 ▲방과후학교를 구심점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학교공동체 실현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냥 지훈이에게 방과후학교 수업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을 추가적으로 배우는 ‘수업의 연장’일 뿐이다. 흔히 말하는 ‘보충수업’인 것이다.

이렇게 ‘보충수업’도 마쳤지만 지훈이의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지 않는다. 5시 10분까지 학원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일단 학원 수업이 9시까지 이어진다. 이만하면 왠만한 직장인들도 집으로 향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지훈이에겐 아직 할 일들이 남아있다. 9시에 수학 수업이 끝나면 다시 언어영역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언어영역을 배우기 위해 다른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2시. 자정을 넘겨서야 지훈이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와 씻고 잠들면 밤 1시. 지훈이는 이런 생활을 2년째 반복하고 있다. 사실 중학교 시절부터 따지면 그 기간은 훨씬 길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하루가 친구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방과후학교를 선택하지 않은 석우(17)와 용정(17)이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석우는 방과후학교 대신 학교에서 실시하는 ‘야간자율학습’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석우 역시 야자를 마치면 집이 아닌 독서실로 향한다. 독서실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 시각은 12시. 지훈이의 일정과 비교해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용정이의 귀가시각은 지훈이와 석우 보다 더 늦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으로 향하면 12시가 돼서야 학원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남은 일정이 있다. 독서실에서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서실에서 하루 공부를 마무리하면 시계는 어느새 새벽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용정이가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드는 시각은 3시다. 다음날 기상시각이 6시25분인 용정이에게 3시간30분의 짧은 취침만이 허락된다.

웬만한 어른들도 버텨내기 힘들어 보이는 일정을 이들 세 친구는 매일같이 소화해내고 있었다.

이들에겐 어른들이 떠드는 사교육문제는 그저 강 건너 일이다. 교육부가 실시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이들의 힘든 하루일과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지훈이에게도, 참여하지 않는 용정이와 석우에게도 방과후학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방과후학교는 사교육문제 해결과 교육격차 해소, 교육서비스 제공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걸고, 올해 3천2백87억원의 예산을 밑천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직 채 성장을 마치지 않은 18살의 세 학생들에게 방과후학교는 충분한 휴식과 취침시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18시간이 넘는 그들의 강행군에 방과후학교는 그저 또 다른 수업의 연장일 뿐이었다.

“특기적성교육? 학부모들이 원치않아요”
방과후거점학교 개포중, 우열반 편성 교과목 중심으로 진행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강남에서 공교육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략과제로 ‘방과후 거점학교’를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공교육의 명품화를 모토로 운영되는 강남 일대의 방과후거점학교 프로그램은 학생·학부모가 희망하는 교사를 찾아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원하는 시간에 저렴한 수강료로 공부할 수 있는 맞춤식 학습 프로그램이다.

개포중학교 역시 올해 방과후거점학교로 선정됐다. 개포중학교 방과후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최윤옥 교사는 “(방과후) 거점학교는 사교육과 경쟁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기 때문에 학원 개강 시간과 맞춰서 진행한다”며 다른 방과후학교와 달리 수업이 6시부터 시작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식사와 짧은 휴식시간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사교육과 경쟁 … 바우처제도 자유수강권도

개포중학교 방과후학교는 오후 6시부터 시작돼 9시30분이 돼서야 끝난다. 기수별로 진행되는 수업은 한학기당 2기씩 수업을 받게 된다. 1기 당 21시간의 수업을 기본으로 하며 수강료는 6만원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이지만 일정부분 학부모의 부담은 필수다.

방과후학교는 철저한 ‘수익자부담’(국가나 공공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그 사업에서 이익을 받는 이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식) 원칙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다만 바우처 제도에 따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경우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자유수강권’으로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다. 개포중학교의 경우 자유수강권이 1년에 6백장씩 지원된다. 연 60명 정도의 학생들이 해택을 받을 수 있는 규모다.

매월 지원되는 3백만원의 별도 예산은 수업용품 구입비와 54명의 강사 강의료에 일부 쓰인다. 물론 강사료는 대부분 학생들의 수업료를 통해 충당된다. 수익자부담 원칙 때문이다.

수업형태를 살펴보면 평일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과학의 4개 과목을 ‘희망’ ‘보람’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나눠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강의 내용을 보면 ‘보충수업’에 가깝고, 진행방식은 ‘우열반’ 형태인 것이다.

‘보충수업 형태’와 ‘우열반편성’ 지적에 대해 최 교사는 “특기ㆍ적성 교육은 사실 수요자인 학부모가 원하지 않는다”며 “어차피 수요자 중심이라면 (입시위주의) 현실을 따라가야지 ‘학생들의 특기ㆍ적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말랑말랑한 소리”라고 주장했다.

이경복 강남교육장은 방과후 거점학교는 단위학교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중학교 학생들까지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연중 쉬지 않는 방과후 거점학교를 위해 온·오프라인 수강신청시스템을 계속 운영하여 학생ㆍ학부모가 언제 어디서나 수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원보다는 학교가 좋아요~!”
방과후거점학교 개포중 학생들

서울시 교육청 추천에 따라 방과후학교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개포중학교를 찾았다. 개포중학교는 오후 4시에 정규수업을 마치고, 6시부터 9시30분까지 방과후학교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업은 보통 20명 정도가 한 반을 이루고 있었다. 기자가 참관했던 교실에서는 시험을 앞두고 영어수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수업은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조는 학생은 볼 수 없었다.

6시40분. 쉬는시간 동안 학생들을 만났다.

올해 방과후학교 1기부터 수강중이라는 송가영(중3, 여)양은 “모든 수업이 다 재미있다. 특히 사회과학 수업은 언제나 만원”이라며 방과후학교 수업에 만족해 했다. “선생님이 수업을 재밌게 잘 가르쳐서”가 송양이 방과후학교에 만족하는 이유다.

송양은 현재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다. 학원 대신 방과후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교육비가 학원과 비교해서 많이 싸다”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익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당차다.

학원에 비해 방과후학교 수업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지난학기 성적이 전교 100등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송양은 “방과후학교를 안다니면 어차피 학원엘 가야하는데 학원보다 학교가 재밌고 더 좋다”고 대답했다. 송양은 “시험문제를 내는 선생님께서 직접 수업을 가르치는 거라 학원보다 훨씬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된다”며 방과후학교 수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송양은 다만 “방학때는 수업을 너무 일찍(오전 8시) 시작해서 싫다”며 어린 학생다운 불만을 털어놓았다. 송양은 친구에게도 방과후학교를 추천했다.

이시은(중3, 여)양은 송양의 추천으로 2기 수업부터 참석해 왔다. 이양은 방과후학교가 좋은 점을 “선생님이 재미있게 가르치셔서”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양은 송양과 다르게 학원을 아직 다니고 있다. 1곳의 학원을 다니는 이양 역시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고 성적이 전교 60등 정도가 올랐다고 한다. 다만 단점으로 “학교 끝나고 과제를 할 시간이 없어 늦게 잠드는게 문제”라고 대답했다.

이윤지(중3, 여)양 역시 “학원보다는 학교가 낫다”며 방과후학교를 다니면서 다니던 학원을 끊었다. “부모님들께서도 방과후학교에 대해 만족하신다”고 했다. 이양은 방과후학교 수업에 현직 선생님들이 많은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우열반 편성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별 상관 없다”며 “오히려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고, 선생님께서 우리 수준에 맞춰서 가르쳐 주신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박영서(중3, 여)양은 “방과후학교까지 마치고 집에가면 늦고 어두워지는데 학교 주변은 너무 위험하다”며 “위험만 없으면 방과후학교가 늦게 끝나도 수업을 듣고싶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방과후학교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체험을 해보고 싶어하는 요구도 잊지 않았다.

다양한 수업을 경험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왜 방과후교육에 대한 불만이 높지 않을까. 학생들은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어차피 방과후학교는 입시교육을 벗어날 수는 없어요”라고.

“아이들 위한 수천억 예산 잘 못 쓰이고 있어요”
학부모가 생각하는 방과후학교

“방과후학교 일단 취지는 참 좋다. 바람직하다. 하지만 실제 취지대로 운영되고있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방과후학교의 재정부분이 내실있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이 없고, 검토조차 안된 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은자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교육자치위원장은 현재 중학교 2학년, 3학년인 두 자녀를 둔 학부모다. 한명은 현재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고, 한명은 학원만 다니고 있다.

전 위원장은 방과후학교가 사교육비 절감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총체적으로 봤을땐 없다”고 대답했다. “사업 초기에는 그나마 초등학교는 특기적성교육이라 해서 예체능쪽 교육에 효과가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초등학교까지 교과목 중심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방과후학교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ㆍ고등학교의 경우 학부모들이 방과후학교를 신뢰하지 않아 사교육 대체효과 없다고 주장했다. “학원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보다 관심이 적다”는 그의 말이 방과후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정도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보육기능이라도 늘었으면…

전 위원장은 방과후학교의 문제에 대해 “일반 학교 수업과 차별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루종일 수업 듣는것도 지겨운 마당에 방과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또다시 수업을 연장해야 하는 것은 ‘보충수업’ 이 외에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부모들이 학교보다는 학원강사를 더 신뢰하는 현실에서 방과후학교가 활성화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나마 방과후학교의 장점이라면 ‘보육 효과’를 손꼽았다. 하지만 지금 수준의 학교보육은 너무 아쉽기만 하다. 초등학교의 경우 보통 2~3시면 수업을 마치게 되는데 부모들이 학생들을 데리러 오는 시각은 일러야 저녁 7~8시다. 학교가 5시간동안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기껏 1~2시간 정도에 그친다. 전 위원장은 이 부분을 아쉬워했다.

3천억원이 넘는 예산에 대해서는 “그 쓰임새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중인 자신의 경험상 학교는 ‘그 돈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제대로 쓸까하는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방과후학교 참여율을 어떻게 높일까’하는 고민만 한다고 꼬집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바우처제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무료수강증을 나눠주면 예민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자칫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해택받을만큼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절반이 넘어가면 학생들의 수치심이 많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 위원장은 “방과후학교는 정말 좋은 제도이지만 실효성에 문제가 생긴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며 “적극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여의도통신 장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