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정책, 화해협력 기초까지 흔들까 우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8년 전 남과 북, 그리고 세계의 이목이 평양에 쏠린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발표한 ‘6.15 공동선언’의 첫 조항이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나서 남북은 8년간 수많은 당국자 간 교류, 민간교류를 가져왔고 남북경협, 개성공단 등 경제 분야에 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왔다. 또 지난 2007년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쌍방이 노력할 것’이라는 합의 내용은 사실상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첫 걸음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이명박 정권 남북관계 '악화일로'

그러나 6.15 공동선언 8주년을 맞는 2008년 6월의 남북관계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통일 관계 주무부처 관계자들의 대북정책 강경론을 의미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비핵개방 3000'은 선 핵 폐기 후 경제 협력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선 핵 폐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북한이 핵 폐기의 결단을 내리면 북한에 400억 달러 상당의 국제협력자금을 투입하고, 향후 10년 뒤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 주 골자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대북정책도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천명한데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등 기존 정권에서의 대북 방침이 '한반도 비핵화'와 '경제 협력'을 병행한 것이라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선 핵폐기'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북한에 대한 조건부 협력을 요구한 것이어서 강경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의 대북 강경론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각 구성 당시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가 국회 인사 청문회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적(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는 언급을 해 북한 군부를 자극했다. 또, 김하중 통일부 장관도 "북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말해 결국 북한 당국으로부터 개성에 있는 남북경협 사무소의 남한 당국자 철수가 요구되는 등 당국 간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다.

북한은 남북경협 사무소에서 남한 당국자가 철수한 바로 다음날 서해상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 영해에 돌아치고 있는 남조선군 전투함선들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행위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급기야 4월1일자 북한 로동신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역도' '괴뢰'라고 비난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두 정상회담 공동선언 무시로 남북관계 악화"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행된 것에 대해 "김정일 총비서의 실제 합의 사항인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의 이행 의지가 높은 북으로서는 두 공동선언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들이 남북관계 경색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대북 경협 추진 4원칙으로 ▲ 북핵 문제의 진전 ▲ 경제성 ▲ 제정부담 능력과 가치 ▲ 국민적 합의를 제시하면서 '우선 할 것' '나중에 할 것' '못할 것'을 구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실질적으로 10.4 공동선언을 선택적으로 이행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어 북한의 반발을 가져왔다.

또, 지난 3월 말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합의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의 합의 내용을 무시한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통일신보'를 통해 "남조선의 친미 극우보수세력들이 역사적 10.4 선언까지 걸고 들면서 전면적 재검토를 해야 한다느니 온당치 못한 잡소리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렇듯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최근 이명박 정부는 신임 통일교육원장으로 6.15 공동선언을 이적문서로 규정한 홍관희 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내정했다. 통일관련 시민사회단체를 비롯,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6.15 공동선언 8주년이 돌아왔다. 올해 6.15공동선언 8주년 행사는 금강산에서 개최된다. 1박 2일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위원회' 주관으로 공동위원장 회의와 공동사진전시회, 등산, 연회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남북 정상이 만나 합의한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은 당시 국민여론조사에서 각각 96%, 74%의 찬성입장을 받았다. 유엔 총회에서도 역시 6.15공동선언 지지결의서를 채택한 바 있어 두 정상의 합의는 '세계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셈이다.

8년이 지난 지금, 당국자간의 모든 회담이 중단되고, 미사일이 발사되고, 경협사무실에 남측 책상을 뺀 상황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300명의 남측 민간 대표단들의 어깨는 무겁기 그지없다. /여의도통신 권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