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일
전남시군지역혁신협의회 의장
전 해남신문 편집국장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를 옹호하는 신문광고를 내자 네티즌들의 반박 광고가 줄 잇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혈세 12억원을 들여 광고한 것을 국민 수 만명이 모금운동을 통해 반박광고를 내는 희한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축산농가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농림수산식품부가 미국 축산수출업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점은 혼란스럽게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정부의 으뜸 덕목일진 데 작금의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이번 쇠고기 갈등은 국민건강권에서 비롯되었다. 국민건강권은 교역 상대국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지켜줘야 할 책무다. 국민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팔려는 미국을 욕하는 게 아니다. 교역 대상이 아닌 국민건강권을 국제 시장에다 팔아넘기려는 우리 정부의 발상을 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보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미국편에 서있다는 의구심에서 울분을 삭이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한글이나 고려역사를 교역 대상으로 삼을 수 없듯이 사회 유지의 근간을 이루는 농업·농촌 기능도 통상협상에서 신중해야 한다. 때문에 농업통상에선 먼저 교역 대상 범위를 설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즉, 비교역 기능(NTC)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농업은 무역을 통해 이룰 수 없는 식량안보, 환경보전, 지역사회유지, 전통보전 등 사회 유지를 위한 고유한 역할을 수반하기 때문에 이를 교역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역 기능의 범위는 각 나라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고, 통상협상의 유불리에 큰 영향을 주므로 고도의 전략과 끈질긴 노력이 요구된다. 가령 요번 쇠고기 협상 때 우리 쪽에서 국민건강권이라는 비교역 조건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더라면 지금의 혼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정부는 비교역 조건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오히려 쇠고기 협상을 통째로 받더라도 한미FTA라는 대어를 빨리 잡는 게 더 이익이라는 그릇된 생각뿐이었다. 우리 정부의 옅은 통상전략을 꾀 뚫어 보고 있던 미국이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미국은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한미FTA의 의회비준이 어려울 테고 곧 대선정국에 들어가면 이 의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테니까 먼저 한국 쇠고기 시장을 잡아먹을 계략이었다는 것이다.

세계 3위의 쇠고기 시장을 가진 우리 정부가 협상의 칼자루를 쥐고 국민건강권이라는 비교역 조건을 능히 잘 적용할 수 있었을 텐데 거꾸로 미국 계략에 말려 버린 것이다. 정부가 칼자루 쥐고 싸우기를 마다하고 애써 칼날을 쥐는 어리석음을 자행하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도록 위임 받은 정부의 기본 덕목마저 내 던진 셈이었다.

우리 정부는 한미 쇠고기 협상단 구성에서도 미국에 한풀 꺾이고 들어갔다. 미국은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데 비해 우리 쪽은 8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상식적으로 볼 때 수입국은 수출국보다 더 많은 고려사항을 따지기 위해 더 많은 수의 협상단을 꾸려야 할 것이지만 우린 그렇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통역사에 의존한 우리 측은 미국 측이 풀이 해주는 수의 용어를 따르기에 급급했고, 끝내 협상관련 미국 측 문서조차 오역하는 뼈저린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 협상단장은 농업·농촌에 무지한 외교관 출신 인사가 맡았다. 오늘날 농업통상에 있어 비교역 기능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협상의 성패를 가르는 데도 이에 대한 전문가가 없이 외교관 출신에게 협상의 키를 맡겼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거나 다름없었다.

우린 앞으로 한·EU, 한·중국, 한·일본 등 세계 각국들과의 FTA협상을 줄줄이 남겨 놓고 있다. EU, 일본 같은 상대국들은 비교역 기능에 대한 선수들로 협상단이 짜여 질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지금과 같은 자세로 농업통상협상에 임한다면 한국농업은 머지않아 고사되고 말 것이다.

비교역 기능은 통상협상의 첫 단추다. 우린 한미FTA에 이어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도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때문에 두 협상은 원천적으로 재 검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