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의 증손자 왕손 이서(李緖)의 몽한각
潭陽땅에서‘낙지가’지으며 여생을 마친 곳
秋城공자 칭하며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한 삶

하늘이 도와주신 우리 동방 명산도 많네
서울은 도읍터라 셀 수 없는 명산이 있고
(중략)
전라도 지리산은 푸르고도 푸르네
호남의 천리강산 53고을 이루어서
별처럼 벌여있어 담양고을 추월산은
천만년 되어가도 15면이 주룡이네
오가는 원님들은 일이 없어 베개만 높일 뿐이요
왕덕(王德)은 백성들에게 미치어 善政 뿐이네
(중략)
대밭에서 탄금하던 왕유도 고인이오
냇가에서 탐화하던 정이는 현사로다
뜻 다하지 못하고 정 다하지 못하니 이 내 사업 누가 알랴
중장통의 낙지론을 내 또한 사숙 하리라(樂志歌 중에서...)

불우헌 정극인의 ‘상춘곡’과 함께 한문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이서(李緖, 양녕대군 증손자, 태종 5세손)의 낙지가(樂志歌) 일부이다.

이 歌詞를 지은 이서(李緖, 1484-)는 조선의 왕손(王孫)으로서 중형 이과의 왕위 추대사건에 연루되어 무고로 담양 영양현(지금의 대덕면)에 유배 되었는데 이후에도 궁(宮)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권력투쟁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초야에 묻혀 ‘낙지가(樂志歌)’를 지어 읊으려 담양 대덕에서 일생을 마감했다. 그후 후손들은 곧고 맑은 품성을 기리기 위해 이 곳에 몽한각(夢漢閣)을 세우고 제실(祭室)로 사용하고 있다.

대덕면 매산리에 소재한 몽한각은 1974년에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54호로 지정, 지금도 매년 음력 7월 7일 이면 후손들이 찾아와 왕손답지 않게 반골 기질이 강했던 그를 추모해 오고있다.

중종2년(1507년) 창평으로 유배되어 14년동안 귀양살이를 한 뒤 자유인이 된 이서는 귀경하지 않고 담양의 산수와 벗하면서 일생을 마쳤는데, 이곳 담양땅 대덕에서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연속에서 욕심없는 삶을 살고자 했던 정서를 담아 표출한 가사가 바로 ‘낙지가’ 이다. 이는 세속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처사로 살았던 중국의 중장통(仲長統)을 흠모하면서 ‘낙지론(樂志論)’ 이라는 그의 글을 즐긴 나머지 이에 담긴 몰아일체의 삶을 모방하여 가사를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백성들과의 평안한 삶을 읊은 낙지가는 조선 중기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곳이 담양지역 이었고 대부분의 歌詞가 한글로 쓰여진 장문의 詩라는 점에 반해 한문으로 쓰여진 담양지역 최초의 漢文歌詞란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조선왕조의 정원이 비원에 가면 석축을 쌓은 화단에 앵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앵두나무가 상징하는 ‘우애(友愛)’ 라는 측면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면서 왕족들은 서로가 왕권을 잡기위해 골육상잔의 비극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조선 초기 왕자의 난은 형제간의 우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이며, 이후 조선사회가 진행되면서 권력집단간의 대립 속에 왕손들은 그런 정쟁에 쉬이 휩싸여 그 몸을 보존하기 힘들었다. 담양의 몽한각은 그런 왕족들의 싸움과 깊은 관련을 갖고있다.

이서는 태종의 고손이며 양녕대군의 증손으로 중종 2년 중형 이과의 옥사사건에 연루돼 담양으로 귀양을 오게됐다. 그후 그는 10여년의 귀양살이가 풀렸음에도 구차한 서울살이를 택하지 않고 조용히 은거, 시가를 읊고 학문을 연마하면서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가 지은 낙지가(樂志歌)를 보면 당시 그의 심정을 읽을 수가 있다.

그 후 후손들은 그의 시에 나온 말을 따서 재실을 몽한각(夢漢閣) 이라 이름했다.

이 몽한각은 양녕대군의 후손인 당시 담양부사 이동야(李東野)와 창평현령 이훈징(李薰徵이) 등이 담양에서 관직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이 서(李緖) 公의 제실이 없음을 알고 순조 3년(1803년)에 현재의 몽한각을 건축하였다. 1916년 지붕번와를 중수하였고 1979년 다시 보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몽한각의 건축적 특색은 양쪽 익간(翼間)의 전면부에서 보이는 퇴칸의 처리이다. 즉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식의 건물에서 보이는 외목도리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몽한각은 배산과 전경이 수려한 위치에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두단의 높은 축대를 쌓고 두벌대의 기단위에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전후좌우 반퇴집으로 쪽마루를 4방에 돌린 아주 특이한 형식을 하고있다.

한편 이곳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영위하다 생을 마감한 이서의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근동에 일가를 이루게 되는데, 세계 최초로 비날론을 발명한 우리나라 최고의 공학박사 이승기를 비롯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한기 등이 이서의 후손들이다.

무엇하나 부러울 게 없었던 조선의 왕손(王孫) 이 서(李緖).

그는 왕실의 영화로운 생활을 팽개치고 이곳 담양에서 14년 동안 은거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형제들간의 피 튀기는 정쟁에서 벗어나 백성들과 안빈낙도를 즐기며 생을 마감했던 그의 행적은 오늘날 가볍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고 있다. /장광호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