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방제림을 걸으며 집에 오는 데 생각이 많다.
지금은 관방제림이 관광자원이 돼 후손들을 벌어 먹이고 있으니 그저 조상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담양읍 형국이 본래는 ‘물 위에 뜬 배’와 같단다. 담양을 그린 고지도를 보면 정말 물 위에 뜬 배 모양이다. 잘 모르겠다면 위아래를 뒤집어 보라. 영락없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옛 우시장 쪽은 미나리꽝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홍수대비용 나대지에 미나리를 심었던 정도.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연화촌에서 시작한 관방제림은 지금 양각교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1972년 영산강개발1단계사업으로 반대편에도 둑도 생기고 목포 영산강하구언까지 둑이 연결되면서 지금은 어디에서도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만 해마다 발생하던 강물의 범람은 6·25전쟁 때까지도 담양 제1의 현안문제였다.

기록에는 조선시대 성이성 부사가 1648년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어디 그 때 처음 쌓았겠는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 살던 담양인데, 아마도 관방제림은 조그마한 둑부터 시작했을 것이고 성이성 부사 때 제대로 모양을 갖춘 튼실한 제방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치수사업이 비단 담양만의 문제는 아니었겠으나 이처럼 담양에 부임한 부사들과 이 땅에 살았던 담양의 선조들은 몇백년 전 그 시절에도 손과 삽으로 일일이 몸공 들여가며 둑을 쌓아 논을 지키고 집을 지키고 가족을 지켰다.

이와 함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합하는 조형물도 세웠으니 그것은 석당간과 사공석이다. 옛 읍지역을 배로 보고 홍기섭 부사는 1838년에는 천변리에 사공석을, 1839년에는 남산리에 석도(石棹=돌노, 석당간)를 세웠다.

홍기섭 부사의 기록에 의하면 이것(석도)이 언제부터 세워졌었는지 모르지만 그 원형을 복원해 세웠다고 하니 당시 ‘담양의 랜드마크’는 우리의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때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어머니의 손길과도 같은 것이었을 게다.

그런데 지금,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던 부사 성이성의 ‘리더십’은 어디로 가버렸나.
아니 사람들의 마음을 잇고 볼거리를 제공하며 주술적인 효과까지 거둔 부사 홍기섭의 ‘행정마인드’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트럭 하나 없이, 굴삭기 하나 없이 맨 손으로 수백년 동안 관방제림을 가꿔온 우리 담양이고 담양사람인데 그 ‘명품행정’은 어디가고 감사원징계가 역대기록을 갱신했다니 이게 정말 사실인가. 이런 향치(鄕恥)가 또 어디 있나. 군수 비리수사로 온 고을이 뒤숭숭한데, 엎친 데 덮친다더니 2008년은 향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해로 남게 됐다.

앞으로도 무능백태의 행정만 난무한다면 백년 뒤 지도에서는 ‘담양’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상황도 관방제림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다. 절차도 규정도 없는 행정난맥을 보인 데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고 굳이 수사도 안 끝난 군수사건 연결시켜 군수자질 운운하기도 싫다.

군수는 군수고 공무원은 공무원 아닌가.
책임을 묻는다면 道 감사에 녹다운 될 때까지 멀끔히 쳐다만 본 郡 감사계에 물어야 한다.

1992년 12월 부산초원복집사건 때 某인사가 “이번에 정권 넘겨주면 전부 영도다리에서 빠져죽자”라고 했다던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넋 내놓고 있던 郡 감사계는 관방제림에 삼배하고 향교다리에서 뛰어 내리는게 어떠한가.

세간에 “道감사는 예고편이고 진짜 블록버스터 상영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사람들이라도 살리려면 배가 흔들리지 않게 배꼬리에 돌이라도 달아야겠다. 몽깃돌.